이러한 말을 들으니 민에게는 전을 동정하는 마음이 더 간 절하여진다. 일변 전에게 관한 말도 더 듣고 일변 이러한 말로 성재의 슬픔을 잊어버리게 하려고 새로 궐련을 피워 물며,
"그러나 마침애 미쳤구려. 미친 것이 도리어 행복일는지 모 르지요. 상시에 자유롭지 못한 세상이 광중(狂中)에야 자유 로 아니 되겠어요?"
하고 웃었다.
성재도 빙그레 웃는다. 민은 성재의 웃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민은 성재의 이 기쁨을 아무쪼록 오래 유지하 고 싶었다.
그래서,
"그러면 오랫동안 고생과 실망이 모이고 모여서 미치는 원 인이 되었나 보지요."
그러나 성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민의 말은 들은 체 만 체 하고 우두커니 팔각목종을 쳐다보고 있더니 또 빙긋이 웃으면서,
"나도 전군과 같이 미치지 아니할는지요. 어째 미칠 것만 같소. 칠년 동안이나 실패만 하고 가산은 온통 집핼을 당하 고, 종일 돈 변통하러 다니다가 늙으신 부친께서는 불시에 돌아가시고...... 아니 부친게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내 손 으로 내 손으로 부친을 죽인 심이지요. 노친을 편안하시게 보양도 못하고 도리어 밤 낮 걱정만 하시게 하다가 마침내 내 손으로 죽이기까지 하였으니......"하고 푹 고개를 숙인다.
안에서는 또 울음 소리가 나온다.
육십이나 넘도록 해로하다가 그 지아비가 죽었다고 무엇이 그리 슬프리오마는 성재의 모친의 생각에는 김참서가 죽는 날이면 온통 살림을 할 수 없이 될 것 같다. 아무리 재산이 패하여도 참서만 생존하면 마음이 든든하겠지마는 참서까지 죽으면 다시 아무 희망도 없는 듯하였다. 그래서 소병풍을 볼수록에 슬픔이 북받쳐 오른다. 그러나 며느리들과 딸을 보아서 마음대로 울지도 못하고 흑흑 느끼는 그네를 도리어 위로하였다. 이웃에서 조상 왔던 손들도 다 돌아가고 이제 는 친척 이삼 인이 대청에 앉아서 담배를 피울 뿐 널따란 집 조객들을 공궤(供饋)하지요. 그리하면 조객들도 오래 유 하련마는 그것조차 못하는 것이 어떻게 서러운지 몰랐다.
삼년 전 성훈의 혼례 적에 성대하던 연락(宴樂)이 있던 것을 생각하고, 금일의 적막을 생각할 때에 마치 천지가 바뀌는 듯하였다.
그래도 김참서는 자기가 일생에 애써서 얻어 높은 큰집 아 랫목에 누울 수 있었다. 만일 사오 일만 지체하여 죽었던들 이 집 아랫목에도 누울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만해도 행복 일는지 모른다.
성재는 극히 친군한 사람 이외에는 부고도 하지 아니하고 극히 간단하게 질소(質素)하게 그 부친도 장례를 지냈다. 장 례를 지낸 지 삼일 만에 성재는 퇴거 명령을 기다리지 아니 하고, 그 집안을 떠나서 변군(卞君)의 주선으로 얻은 계동 (桂洞) 막바지 조그마한 초가집으로 이사하였고, 자기가 처 분할 수 없는 세간 중에도 여간 한 것은 다 팔아서 양식을 장만하고 실험 기구만 전부를 옮겨 갔다. 그 때에 성재는 함사과에게 이러한 편지를 하였다.
'여(余) 귀하에게 대한 채무를 변상할 능력이 없으므로 귀 하가 퇴거를 명하기 전에 미리 퇴거하나이다. 황금밖에 의 리를 모르는 귀하의 복력(福力)이 만년 천년 하기를 바라나 이다.
실로 계동으로 반이(搬移)한 날의 광경은 참으로 비참하였 다. 늙은 성재의 모친은 눈물을 머금고 그래도 성재를 보아 서 웃는 낯을 지었으나, 철없는 성재의 아내는 마치 어린아 이 모양으로 소리를 내 울며,
"나는 아무데도 안 갈 테야요. 계동은 안 갈테야요."
하고 떼를 쓰다가 초상 상주인 몸으로 마침내 어린것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달아나고 말았으며, 성재는 본체 만체 하 고 하염없이 빙그레 웃었다. 성순과 성훈의 부인만 아무 말 없이 그 모친을 따라 계동으로 갔다. 성훈은 부친이 돌아간 익일에야 어슬렁어슬렁 집에 돌아왔으나 가족 중에는 누구 하나 그를 주의하는 자도 없었따. 그러나 성훈은 저 혼자 눈이 붉게 되도록 울었으며, 장례날에도 상복을 입고 성재 의 뒤를 따라갔고, 하관할 때에는 바로 소리를 내어 울었다.
그러나 계동으로 반이하는 날에는 성훈은 조반도 아니 먹고 어디로 나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