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 · 이광수

Chapter 19: 3

"민군, 여기 계셔요. 내 따라가 보고 오리다."

"그러면 나도 가 보지요."

"아니, 그러다가 김군이 나오면 어째요? 김군이 오늘 저녁 에는 퍽 흥분한 모양인데 그러다가 무슨 일이 있을지 알겠 소. 나 혼자 얼른 가 보고 올 것이니 여기 계시오."

하고 뒤에 나아간다. 민은 하릴없이 혼자 떨어져 탁자에 기대어 앉았다.

담배를 내어 불을 붙여 담배 연기를 바라보고 모든 것을 잊어버리려 하였으나 그러할수록 아까 김참서가 거꾸러져 운명하던 자리가 보이고, 아직도 번쩍번쩍하는 물이 보이며 그리고는 그 자리에 김참서가 눈을 부릅뜨고 누운 양이 보 이고, 자기가 그 시체에 올라앉아 시체의 좌우 옆구리를 비 비던 양이 보인다. 민은 벌떡 일어나서 크게 기침을 한 뒤 에 방향을 돌려 거기를 등지고 앉았다. 그러나 김참서는 여 전히 그 자리에 누워서,

"얘 민아, 내 옆구리를 주물러라─"

하는 것 같고 그가 벌떡 일어나 아까 전군이 말하던 모양 으로 자기의 뒷통수를 꾹 내려누른 듯하여 민은 다시 벌떡 일어나 위엄을 갖추고 그 자리를 노려보았다.

생생하던 사람이 갑자기 죽는 것과, 갑자기 미치는 것을 본 민은 자기도 금시에 죽는 듯하고 금시에 미치는 듯하였 따. 그래서 민은 무서운 생각을 이길 양으로 일어나 실내로 왔다갔다하며 동경 유학시에 배운 속가(俗歌)도 중얼거려 보 고, 찬미가도 읊어 보다가 그것도 효력이 없어서 마침내 안 으로 통한 전령(電鈴)을 눌렀다.

(하하, 우습다. 내가 왜 이러나.) 하고 다시 위의를 갖추고 손으로 테이블을 두드리고 앉았 을 때에 문이 열리며 쾌활한 어멈이 고개를 디밀어 보더니,

"청주서방님 혼자 계셔요?"

"그림자까지 들이 있네."

"두 분은 어디 가셨어요?"

"한 사람은 미텨 나가고, 한 사람은 미친 사람 잡으러 나가 고......"

"전서방님이 미쳤다네."

"에그머니."

하고 문에서 물러선다.

"여보게, 안에 손님 많이 계신가?"

"몇 분 안 계셔요. 그런데 전서방님이 어떻게 되었어요?""

미쳤어...... 그렇거든 서방님 좀 나오시라게."

"상주님이 어디를 나와요? 전서방님이 미치셨어요?"

"그래, 미쳤다네...... 급한 일이 있다고 얼른 나오시라고 그 러게."

"무슨 급한 일이야요?"

"그것은 알아서 무엇하게, 얼른 좀."

어멈은 화를 내는 듯이 문을 와락 닫고 들어간다.

이윽고 성재가 기운 없는 얼굴로 들어온다. ㅁㄴ은 다만 성재의 얼굴만 보고 아무 말이 없었다. 성재는 들어와서 탁 자 앞에 놓인 자기의 의자에 앉더니,

"다들 어디 갔소?"

"전군이 미쳤어요."

"전군이?"

"그저 갑자기 미쳐요. 나하고 변군하고 셋이 이야기를 하다 가 갑자기 헛소리를 하고 몸을 떨지요. 한참이나 그렇더니 무슨 일이 있다고 그러면서 어디로 달아나고 말았어요."

"그래. 변군은 전군 따라갔구려?"

"네. 내 그런 변은 처음 보았소."

"전군도 그만 미치고 말았구려."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전군의 집에 그러한 유전이 있어요. 아마 그 조부가 미쳐 서 한강에 빠져 죽었지요. 그리고 그 고모도 한분 미쳤읍니 다. 지금은 벌서 죽었지마는 우리도 그가 머리를 풀고 울고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는 것요. 참 불쌍한 사람이지."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나요?"

"옛날은 꽤 넉넉하게 지냈다는데 그 조부가 미치기에 아주 망한 심이지요. 그리구 그 부친은 조사(早死)하고 어머니는 어디로 갔읍니다. 그래서 한참은 어머니 찾으러 간다고 야 단을 했지요. 하더니 그만미쳤구려."

하고 매우 애석하는 빛을 보인다. 민도 더욱 애석하게 여 겨 그가 미쳐 나가던 문을 한번 더 바라보았다. 그러나 더 욱 이상한 것은 성재의 너무 침착한 태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