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살림이 싫다 하여 친정에 가 있던 성재의 부인도 머리를 풀고 울며 돌아오고, 성훈에게 쫓겨 갔던 그의 부인 도 그 모양으로 돌아와서 소(素)병풍을 두른다. 미망인을 중 앙에 두고 두 며느리와 한 딸이 둘러 앉아서 치맛자락을 얼 굴에 대고 우는 양을 문 밖에서 보는 성재도 새삼스럽게 슬 픈 마음이 나서 한참이나 울었다. 문 밖에 모여 선 얼마 아 니 되는 친척들도 눈물을 흘리지 아니하나 다 얼굴은 찌푸 렸다.
방이라는 방에는 모두 불이 켜지고, 거기는 이삼 인씩, 혹 사오 인씩 모여 앉아서 장례지낼 일을 의논하는 이도 있고, 김참서의 일생을 말하는 이도 있으며, 어떤 방에서는 김참 서의 별세와는 아무 상관 없는 세상 이야기를 하고는 웃는 소리가 안방에까지 들렸다.
부엌에도 행랑 여인들이 모여서 말 없이 혹은 솥에 물을 붇기도 하고, 혹은 불도 때고, 혹은 혹은 분주히 여러 사람 들 사이로, 컴컴한 마당을 지나서 부엌과 고간 사이로 왕래 도 한다.
성재의 실험실에는 청년 세 사람이 탁자를 새에 두고 둘러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그 청년에게 김참서 임종의 상태를 듣는다. 그 청년의 눈에는 아직도 아까 놀란 빛이 덜어지지 아니하여, 김참서의 누웠던 자리를 가리키며,
"바로 여기외다. 여기 이렇게 눕더니만 그만 숨이 끊기겠지 요."
얼굴 좁고 평생 방긋방긋 웃어가지고 있는 전 경(全敬)이 가,
"어디가 아프단 말도 없이?"
"아프단 말을 할 새가 있어야지요. 마치 드는 칼로 생명 줄 을 싹 베는 모양으로 뚝 끊어지고 말아요. 사람의 생명이 그렇게 쉽게 끊어진담─"
전 경이가 더 빙긋거리며,
"왜 쉽게 끊어졌어요? 육십여 년이나 닳아지다 닳아지다 다 닳아져 끊어졌는데."
이 말에 세 사람은 일제히 웃었다.
"참, 사람의 생명이란 믿을 수가 없어."
하고 지금까지 잠자코 앉았던 변 영일(卞英一)이가 김참서 의 눙서떤 자리라는 데를 슬쩍 보며 말한다.
"지금사 깨달았소? 철학자의 깨달음이 하기만야(何其晩也) 요.
함은 전 경의 말.
"글쎄, 그 광경을 보고 나니깐 산 것 같지 않구려. 한참 인 공 호흡을 시키다가 그것도 효력이 없어서 일어나서는 가만 히 제 가슴에 손을 대어 보았지요─ 아직도 내 심장이 뛰는 가 하고."
"응 아직도 뛰어요."
"그래서 안심이 되었소?"
"안심이 어찌 되어요? 이것이 언제까지나 뛰겠는고, 금시 에 서지나 아니할까...... 마치 시계를 땅에 떨어뜨리면 그만 서는 모양으로, 그렇게 서면 어찌하나. 그다음에는 어찌 되 는고, 다른 세상이 또 있는지 아주 스로지고 마는지...... 그 런 생각이 나요. 그리고는 몸에 땀이 쭉 흐르겠지요."
하고 소름이 끼치는 것같이 한번 몸을 흠칫해 보인다.
"글쎄. 사후에 또 생명이 있을까. 어지 철학자, 우리 범인 에게 그 해결을 주소서."
"전군은 잠시도 그 버릇을 못 떼겠소, 그렇게 사람을 조롱 하는 버릇을."
"죽어야."
하고 그 청년(그청년)이 웃는다.
"암, 그야말로 심장이 서야, 하하하."
"그러면 금시로 전군의 심장이 서기를 바라오. 인도를 위하 여."
"그것은 심하구려."
하고 머리를 북북 긁으며,
"그런데, 김참서의 생명은 어디로 갔을까. 아직 이 방안에 있을까?"
"안반에 들어갔겠지."
"옳지 시체를 따라서."
"한번 싫어서 벗어 내버린 몸뚱이를 무엇하러 따라 다녀?
벌써 저 멀리로 갔을 것이요. 천당에 갔거나 그렇지 아니하 면 지옥에 갔꺼나, 그렇지 아니하면 지금 여행 중이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지금 행리(行李)를 수습하는 중이거나."
이 때에 안방에서 또 울음 소리가 나온다.
"쉬─"
하고 세 사람은 말을 끊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