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아라, 아니 놓을 테냐."
"글쎄, 참으셔요. 이러면 성재가 얼마나 슬퍼하겠어요."
"성재가 슬퍼해! 제 부모의 누워 죽을 집 한간까지 팔아 먹 는 놈이, 그 불효한 놈이, 으흐!"
하고 몸부림을 한다.
"어서 놓아. 저게 다 무엇이냐. 저 번쩍번쩍하는 것이 다 무엇이어. 저것이 내 돈을 다 먹었구나. 내가 손발이 다 닳 도록 빌어 놓은 돈을 저것이 다 먹었어! 내 저 원수. 엣, 저 것을 말짱 깨물어서 먹고 말란다. 먹고 죽을란다─"
"아버지, 좀 참으셔요."
"이년, 가만 있거라. 자식도 다 귀찮다."
"여보, 이러면 정말 집이 망하고 말겠소."
하고 부인은 참서를 껴안아 앉히려 한다.
참서는 원래 건강치 못한 데다가 오랫동안 심화로 늙었고 또 소주를 과음하여서 기운이 지쳤던 터이라 그만 기운 없 이 펄썩 주저앉는다. 그 청년이,
"너무 염려 말으셔요. 제희가 다 무사하게 하겠습니다. 어 서 들어가 누워 계십시오."
그러나, 이 말에는 대답이 없고 참서는, '응'하면서 앞으로 푹 쓰러진다. 부인이 깜짝 놀라서 쳐들 적에는 벌써 눈을 뒤집고 숨이 끊어졌다. 청년은 참서를 반듯이 눕히면서,
"여보, 냉수, 냉소."
하였다.
부인은.
"이게 웬 일이요─"
하고 푹 쓰러질 뿐이다. 성순은 울면서 대야에 냉수를 떠 들고 나온다.
청년은 입에 냉수를 물어 참서의 얼굴과 가슴에 뿜고, 성 순을 시켜 옆구리를 비비게 하였다. 그러나 성순은 눈물이 가리워 잡히지 못하는 것을 보고,
"여보시오, 성순씨, 지금 여자가 그처럼 정신이 약해서 무 엇한단 말이요. 눈물을 거두고 힘껏 하시오."
하고 명령을 한다.
청년은 입으로 뿜는 것이 부족한 듯하여 나중에는 대야에 남은 냉수를 얼굴과 가슴에 푹 쏟았다. 양장판 위에는 사방 으로 길을 지어 물이 흘러간다.
그래도 듣지 아니하므로, 그 청년은 저고리를 벗어 버리고 참서의 배 위에 올라앉아서 중학교 생리학 시간에 어렴풋이 들어 두었던 인공 호흡법을 실행하였다. 손을 제일 늑골에 대어서 쇄골(鎖骨)까지 올려 흔들 때에 살 없는 참서의 흉부 는 마치 해골을 만지는 것 같다.
부인은 정신 없이 쓰러졌다가 벌떡 일어나서 참서의 창백 한 얼굴을 보더니 그 얼굴에 자기 얼굴을 대고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한다. 그 울음 소리를 따라 성순은 소리 없던 울 음도 차차 소리를 낸다. 그 청년도 가끔 주먹으로 눈물을 씻으면서 열심히 인공 호흡을 실행하였다. 그러나, 심장이 이미 마비하여 버린 참서의 몸은 식어가고 점점 굳어 갈 뿐 이였다.
그 청년은,
"하인 불러서 곧 가서 광교 백의사 오라고 이르시오."
성순이가 나간 뒤에야 그 청년도 비로소 실내의 어두움을 깨닫고 전등의 나사를 틀었다. 방안에 전광이 가득 차차 창 백한 김참서의 얼굴이 눈을 부릅뜨고 볼때에 그 청년은 소 름이 쪽 끼쳤다. 부인은 눈물을 거두고 하염없이 앉았다. 그 청년이 참서의 곁에 가서 손으로 눈을 감기려 할 때에 부인 은 청년의 팦을 물리치며,
"그냥 두시오. 성재나 들어오거든 한번 보기나 하게. 이제 보면 다시는 못 볼 터이니깐."
"성훈(性勳)은 어디 갔어요?"
"어디 집에 붙어 있답디까. 어디를 다니는지 밤낮 밖에만 나아가지. 그것도 아버지 애를 끝끝내 태우다가 임종도 못 보고. 맏며느리는 가난한 살림이 싫다고 친정에만 가 있고, 작은며느리는 철없는 성훈이가 친정으로 쫓아 보내고. 그러 다가 이렇게 되니 이것이 웬 일이요. 전생에 무슨 죄악이 과분하여서 이렇게도 팔자가 기구하겠소."
하고 다시 울기를 시작한다. 청년도 다시 위로할 말이 없 었다. 일생을 고생으로만 지내다가 노경에나 좀 낙을 볼까 하였던 것이 운명은 그것도 허하지 아니하였다. 전반생을 돈을 모으기 위하여 살았고, 후반생은 자녀에게 안락을 주 기 위하여 살았다. 그는 돈을 모으려 하여 성공하였ㄷ. 자녀 를 기르려 하여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자녀에게 안락 을 주고 자기의 여생도 안락 속에 보내기로 성공할 줄을 확 신하였으나 그것이 실패되매 그는 이 귀찮은 세상을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