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 · 이광수

Chapter 14: 2

과연 그 꽃에는 향기가 없었다. 그 다음에 그 청년은 조그 마한 백지 뭉텅이를 들고 풀려 하더니,

"아니, 이것은 보실 필요가 없어요."

하고 양복 호주머니에다가 집어 넣는다. 성순은 호기심이 나서,

"그게 무엇입니까? 보여 주셔요......"

"아니─"

"자, 보여 주셔요."

"보여 드릴까, 웬걸 일후에 드리지요."

"내게 보낸 선물을 왜 안 주셔요─"

하고 어리광을 부린다. 서로 부끄러워서 피하던 눈과 눈이 가끔 서로 마주친다.

"그러면 보여 드릴까."

"자─ 내십시오."

하고 성순은 그 청년의 양복 소매를 조금 잡아 당겼다. 그 리고는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였다. 그 청년은 성순이가 그 처럼 대담하게 자기의 소매를 당기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러면 보여 드리지요."

하고 그것을 내어 성순에게 준다. 성순은 그것을 받아들고 반쯤 몸을 돌리면서 분주히 종이를 편다. 그 청년은 곁눈으 로 슬슬 성순의 손을 보면서 담배를 피운다. 꽁꽁 산 것을 다 ㅍ루고 나니 나오는 것이 도토리 한 통, 그 청년은

"하하, 속으셨지요. 그것이야요, 그것."

성순은 그것을 들고 어쩔 줄 모르는 듯,

"이게 무엇이야요?"

"이게 상수리나무라는 크고 굳은 나무의 열매야요. 도토리 라는 것이야요. 하하하."

하고 쾌활하게 웃지마는, 성순은 웬 심펑을 모르고 그것을 손바닥에 굴려 본다.

"자세히 설명을 해 드려요?"

"네, 무엇이야요?"

"그것은 땅에다 심으면 명년 봄에는 노란 움이 나오지요."

"그러고는?"

"나와 가지곤 조금씩 조금씩 자라지요."

"또 그다음에는?"

"자꾸 자라지요!"

"또, 그 다음에는?"

"또 자꾸 자라지요."

"에그, 그만두십시오. 나는 정말 무슨 뜻이 있다고."

하고 그것을 내어 던지련다. 그 청년은 큰 변이나 나는 것 처럼 두 팔을 번쩍 들면서,

"아니, 아니, 아니, 뜻이 있지요. 뜻이 있지요."

"글세 자꾸 자라서는 어떻게 되어요?"

"자꾸 자라서는 커다란 나무가 되지요. 내가 이번 금강산에 서 보았는데."

하고 팔을 벌리면서, 이렇게 세 아름 되는 나무가 있어요─ 이 것이 자라면 그 러한 큰 나무가 되지요."

"그 다음에는?"

"그다음에는? 이러한 도토리를 많이 맺지요."

"또, 그 다음에는?"

"그다음에는 그 도토리들이 다 땅에 들어가서 움이 나서, 자라서, 자라서 자꾸 자라서 또 그와 같은 큰 나무가 되지 요."

"또, 그 다음에는?"

"그다음에는 또 그렇지요."

"이제는 그뿐이야요?"

"네, 그뿐이지요. 그게 재밌지 않아요."

"그것 참 재미 있읍니다."

"과연, 재미 있지요? 우리가 꼭 그 재미로 사는데─ 선생이 나 제나 성순씨께서도."

"어째 그 재미로 살아요?"

"그것을 모르셔요?"

하고 이윽히 성순의 눈을 보더니,

"제가 지금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왜 제가 그림을 그리나요?"

"그리고 싶어서."

"또?"

"전람회에 출품하려고."

"또?"

"에그 모르겠읍니다."

"그러니깐 아직 유치하시단 말이야요."

"물론 제야 유치합지요."

"아차! 실례했읍니다. 세상에는 성순씨보다 더 유치한 사람 도 많은데."

성순은 좀 격분해서 입술을 깨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