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재의 실험실 문 밖에 어떤 여행 양복 입고 가방 든 청년 이 인력거에서 내려 문을 두드린다.
"선생 계시우?"
하고는 유리창으로 엿본다.
'웬 일인가?'하면서 또 두드린다. 얼마 만에 안에서 통통통 발자국 소리가 들릴 때에 청년은 귀를 기울이고, 열심히 그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시월 해가 짧아서 벌써 가등에 불이 켜지고 오싹오싹하는 찬바람이 휙휙 불어 지나간다.
딸랑 하고 문고리 벗기는 소리가 나더니 실험실 밖 대문으 로 통한 문이 열리며 성순의 얼굴이 보인다. 그 청년은 검 은 중절모를 벗어 들고 공순히 인사하고 성선도 잠간 고개 를 숙여 인사한 뒤에,
"들어오시지요."
하였다.
그 사람도 반갑지마는 이렇게 근심 많고 고적한 때에는 더 욱 반가왔다. 그 청년은 한 결음 문안에 들어서면서,
"선생, 안계셔요?"
"네, 아침 아홉 시에 나가셔서 아직 아니 오십니다. 어디를 갔는지......"
"오늘은 노는 날도 아닌데 용하게 출타를 하셨군."
하고 주저하는 모양이더니,
"올라가 기다릴까. 괜찮습니까?"
하고 허가를 기다리는 듯이 성순을 본다.
"네, 올라오셔요. 지금 오시는 길이야요?"
"그저께 금강산 떠나서 석왕사(釋王寺) 구경하고 지금 남대 문 와 내렸어요. 단풍이 어찌 좋은지."
하면서 구두를 벗는다.
성순은 곁에 놓인 무거운 가방을 들고 앞서 방으로 들어가 고 그 청년도 성순의 뒤를 따라 들어가서 한번 실내를 쭉 둘러보더니 탁자 위에 황갈색 액체의 시험관을 들어 보면 서,
"어때요, 그동안 좀 성공이 되었읍니까?"
"네, 매우 성적이 좋다고 그러던데요."
"그것, 참 기쁜 말이올시다. 저도 이번 금강산 가서 어떻게 그림도 많이 그리고 글도 많이 지었는지...... 그림은 하물로 부쳤지요. 이따가 찾아 오겠읍니다. 보시거든 잘 그렸다고 칭찬이나 해 줍시오."
하고 성재의 의자에 앉으려다가 다시 일어나면서,
"아차! 성순씨한테 좋은 선물을 가져왔는데요."
하고 즈꾸로 싼 가방을 열더니 화구 상자, 원고지, 후건, 치분 같은 것을 집어 내고 맨 밑에서 백지로 싼 네모난 뭉 텅이를 하나 내어 성순에게 주면서,
"이것이 선물이야요."
하고 웃는다. 성순은 그 중량을 보는 듯이 두어 번 들었다 놓았다 한다.
"펴보리까?"
한다.
"보셔요. 이리 줍시오, 제가 펴지요."
하고 성순의 손에서 그 뭉텅이를 빼앗아서 탁자 위에 놓고 얽어맨 끈을 끄른다. 서너 겹 싼 것을 제치니 그 속에서는 단풍 잎사귀, 고산 식물, 동해에서 나는 조개, 회엽서(繪葉 書), 자기가 그린 폭포와 산의 스케치 같은 것이 나오고 맨 나중에는 역시 백지로 꽁꽁 싼 것이 하나이 나온다. 청년이 일일이 설명하기를 시작한다.
처음에 단풍 잎사귀를 들고,
"이것은 바로 유점사(楡岾寺) 뒤에서 딴 것이외다. 하루 아 침에 나아가 보니까 저편 절벽 위에 단풍이 어떻게 좋은지 모르겠어요. 사방이 다 단풍이지마는 그 중에 그 절벽 위의 단풍은 특별히 좋아요. 그런데 길이 있읍니까. 천신 만고로 위험을 무릅쓰고 이걸 따 왔지요. 한움큼 땄다가 다 내어 버리고 꼭 이것두 잎사귀만 가져왔지요.
하고 핏밫 같은 단풍 잎사귀를 들어 성순에게 주며,
"평지에는 도저히 이러한 단풍은 없읍니다. 이것은 꼭 심산 에 가야만 구경하는 것이야요."
성순은 그것을 받아 들고 이리 뒤적 저리 뒤적 재미있게 본다.
다음에는 고산 식물에 앉은뱅이 같은 것을 들고,
"이것은 해발 팔천 킬로 이상에서 난 것이야요. 오월에야 봄을 만났다가 팔월에 가을 만나는 불쌍한 식물이야요. 이 놈은 여름의 더움이라고는 구경을 못하지요. 찬바람 속에 났다가 찬바람 속에 죽는 가엾은 신세지요. 그러면서도 이 렇게 고운 꽃을 피웁니다그려."
하고 자색 꽃을 만지면서,
"자─ 어떻습니까. 꽤 곱지요!"
"네, 참 고와요."
하고 코에 대어 본다.
"향기는 없어요. 향기는 없어요."
하고 성순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