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환에게 차와 과자를 명하고,
"왜 어느 학교 일이나 좀 보시지요. 몇 학교에 화학 시간이 나 가르치면 돈 십 원이나 수입이 될 터이데."
성재는 이 말이 매우 불쾌하였다. 그러나 안색엔 내지도 아니하고,
"어디서 오라는 데도 있지마는 갈 마음도 없고, 또 붙든 일 이 있으니까 그것을 버릴 수도 없고......"
"그러면 모르겠소마는 만일 어느 학교에 가실 생각이 있으 시거든 저라도 힘껏은 주선하여 드리지요."
하고 불쌍한 듯이 성재를 본다. 성재는 그 말이 더욱 불쾌 하였다. 자기는 상당한 자기의 실력을 믿을 대에 남이 자기 를 한 무능력자로 인정하여 주는 것보다 불쾌한 것이 더 없 을 것이다.
진실로 일우는 성재를 불쌍히 여긴다. 될 수 있으면 건져 주리라 하는 정성도 있다. 그뿐더러 자기의 권력을 보이기 위하여서라도 성재에게 어느 중학교 화학 교사의 직업이나 얻어 주고 싶었다. 만일 성재가 법률 지식이 좀 있었던들 자기의 사무원으로 써 주겠노라고 하였을지도 모르겠다. 성 재는 한번 더 불쾌감을 참고,
"고맙소이다마는 이제 다시 교사되기도 무엇하고, 그냥 지 나갈랍니다."
일우도 성재의 안색에 좀 듣기 싫어하는 빛이 있음을 보고 다시 권하려고도 아니 하였으나 속으로는 '주제 넘은 것, 이 제 어떻게 살아가나 보자'하고 비웃었다.
사환이 차를 가지고 나왔다. 하얀 고뿌에 가배차(枷排茶)를 넣고 집시에는 각사탕(角砂糖) 두 개씩을 놓았으며 칠한 과 자분에는 일본 과자가 담기고 과자 위에는 이쑤시개 두 개 를 꽂았다. 조선 집에 양식 탁자, 의자도 우습지마는 가배차 에 일본 과자도 우습고, 그것보다도 미투리 신은 화학자와 세비로 입은 변호사와의 대조가 더욱 우스웠다. 성재는 차 를 두어 모금 마신 뒤에,
"그런데 좀 청할 말이 있어서 왔지요."
"네. 무슨 말이요."
하고 일우는 한 손으로 차를 저으며 한 손으로 시계를 내 어본다.
"노형이 저 함사과의 가차압 사건을 맡으셨어요?"
"응, 응, 네. 그랬지요. 그런데?"
"그런데 좀 연기하여 주실 수 없겠소?"
"응?"
"얼마 동안 좀 연기하여 주셨으면 좋겠단 말이요."
"응, 그러나 그것은 나는 모르지요. 나는 함사과의 대리니 까."
"그런들 좀 변통이 없겠어요."
"그것은 함사과한테 가서 말씀을 하시지요."
"그래, 함사과한테를 갔더니 노형께 가서 말을 해보라고, 이 사건은 노형께 전임을 하였노라고 그럽디다그려. 그래 서......"
"그것은 어려운 걸요. 대관절 기한이 벌써 일삭이나 지났다 던데요."
"네, 한 이십여 일 지났지요."
"그러니, 채권자가 가만히 있겠읍니까."
"그러나, 함사과는 우리 세의(世誼)......"
"허허. 지금 세의가 어디 있소."
"그러면 노형은 친구의 정이고 채권은 채권이요."
"그러니까, 내 청을 못 듣겠단 말씀이구려."
"아니 그런 것도 아니지마는...... 나는 대리인이니까."
하고 이쑤시개에 과자를 꿰어 주며,
"자 과자나 자시오─"
성재는 좀 분격하여,
"과자 먹을 생각도 없소. 그러니까, 내 청은 못 들으신단 말씀이구려."
하고 재차 묻는다.
"아직도 가차압이요. 강제 집행은 아니니까 어떻게 힘을 써 보시구려. 함사과뿐 아니라 다른 채권자들도 이번 가차압한 것을 보면 가만히 있는지 아니하리다. 속히 손을 쓰셔야 할 거요."
이 때에 사무원이 공손이 들어와서,
"재판소에서 전화가 왔읍니다."
"응, 나오라고?"
"네, 송변호사께서 개정 시간이 되었다고."
"응, 지금 간다고 그러오. 그리고 인력거 왔소."
"네, 벌써 와 기다립니다."
"그러면 김형, 나는 재판소에 일이 있으니까...... 가끔 놀러 오시지요."
하고 사환에게 모자를 받아 들고 휙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