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 · 이광수

Chapter 11: 2

대문을 들어서면 네모난 마당이 있고 마당 한편 구석에는 국화가 수십 떨기 심겼으며 그 중에 다섯 여섯 떨기는 황금 색 꽃을 발하였다.

이전 행랑이던 것을 뒷간을 만들고, 뒷간 앞에는 새로운 목재로 일본식 손 씻는 물그릇 올려 놓는 돌을 만들었으나, 물그릇은 반이나 깨어져서 그 밑에 굴러있다.

깨끗이 쓸어 놓은 마당 건너편에는 툇마루 달린 남향 방이 있고, 그 곁에 사 간방이나 되는 대청이 있다. 대청에는 새 로 유리문을 하여 달고, 양식으로 탁자와 의자를 놓았으며, 어약해중천(魚躍海中天)이라든지 추성각(秋聲閣)아러둔자 하 는 고물전에 나오는 액(額)이 무수히 걸렸고, 그 중에는 위 백제운운(爲栢齊云云)이라 한 당시 명가의 액도 걸렸다. 백 제(佰薺)는 아마 그의 당호(堂號)인가 보다.

성재는 이 응접실에 들어가 의자 하나를 점령하고 사환 아 이에게 명함을 들여보냈다. 응접실 서쪽에 있는 사무원실에 는 오륙 인 시골 사람인 듯한 자가 근심스러운 듯이 물러앉 았고 벽에 걸린 전화가 연이어 운다. '네, 그래요' 하는 말 과, '영감께서는 지금 안에 계십니다'하는 말이 들린다.

성재는 '영감께서는'하는 말에 이 일우 군의 금일의 득의 (得意)와 칠팔 년 전 동경 유학 시대와를 비교 아니할 수 없 었다.

'돈 있거든 한 일 원'하던 이 이일우군과 해강(海岡)이니 소 호(小湖)니 하고, 당대 명성이 쟁쟁한 양반네가 '위백제 인 형'이라 하고 서한을 하여 주는 이 일우 군을 같은 사람이라 고 보기는 참 어렵다.

이군뿐 아니라 성재의 동기생들은 대개는 훌륭한 신사가 되었다. 혹은 중등 정도 학교의 교장이 되며, 혹은 은행의 지배인이니 취체역이니 하고 서슬이 푸르며, 혹은 판검사, 혹은 변호사 하고 조선에 있어서는 일류 인물로 자기 임하 고 남도 허하게 되었다. 길에 나서면 반드시 인력거를 타고, 차를 타면 반드시 백표는 실로 성재밖에 없을 것이다. 동경 서 학교에 다닐 때는 최연소자되는 자기에게 수학 문제도 묻고, 화문 영역(和文英譯)이며 작문 같은 것도 의뢰하던 그 네들은 지금 와서는 모두 다 번쩍하는 신사가 되었다.

성재는 평생 자기를 비(飛)하면 충전하려 하여 불비(不飛) 하고 명(鳴)하면 경인(驚人)하려 하여 불명(不鳴)하는 자로 자임(自任)하고 도리어 한때의 영화에 현혹하려 하는 그네를 홍곡(鴻鵠)을 모르는 연작(燕雀)으로 여겨 일종 경멸하는 뜻 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칠 년간이나 연하여 실패 또 실패를 당하고 금일 에 와서는 마침내 노부모와 어린 처자 있는 집까지 가차압 을 당하고 나니 미상불 기운이 꺽이기도 한다.

성재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면서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얘, 인력거 불러라."

하며 나오는 주인의 소리가 들린다. 확실히 그것은 이일우 군의 음성이언마는 못 만난 지 육칠 년에 그 움성조차 변하 였다. '돈 있거든 한 일 원'하던 음성과 '얘, 인력거 불러라' 하는 음성과는 대단한 차이가 있다. 연석에 기대어 앉아서 소화 불량한 배를 슬슬 내려 쓸면서 길게 '이리 오너라'하는 음성이다. 문이 열리며 순흑색 세비로에 줄 있는 넥타이를 맨 일우가,

"아, 이거 누구요?"

하며 들어와 손을 내민다. 성재도 웃고 일어나면서 일우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손은 손바닥을 마주대었을 뿐이요 꼭 쥐지는 아니하였다.

"그런데, 이게 얼마 만이요?"

하고 일우가 의자에 앉으며 궐련갑의 뚜껑을 열며,

"자, 한 대 피우시오."

"내가 담배를 먹나요."

"아 참, 안 잡수셨지. 그렇지마는 학생 시대에는 아니 먹어 도 지금도 안 자셔요. 하하하."

하고 자기만 부도(敷島) 한 개를 골라 물고 불을 붙여 길게 한모금 빨아서 휘 내뿜는다. 성재는 전보다 뚱뚱 하여진 몸 과 과음한 듯한 일우의 눈을 보면서,

"참, 많이 축하합니다. 이처럼 성공을 하셔서."

"성공이 무슨 성공이요. 내야 버린 사람이지요."

"천만에......"

"직업이 직업이니까 그저 술 먹고, 가끔 계집도 희롱하 고...... 내 생활이 이러하외다. 그런데 김형께서는 무슨 발명 을 하신다는데 어찌 되었지요."

"발명! 발명이 무슨 발명이요."

하고 픽 웃는다.

"어디 한번 큰 발명을 하시오."

하고 초인종을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