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 나도향

Chapter 8: 八

그날 저녁 영숙의 집 공기는 매우 엄숙하여 졌다.

시시덕거리는 하인들의 얼굴들은 주인이 오자, 성난 사람 들처럼 입들을 다물고, 소리를 높이어 이야기 하던 안잠자 기는 무슨 말 한마디 하려도 뒷구멍으로 수근거린다. 영숙 의 어머니는 담뱃대만을 들고서 멀거니 앉아 있고 영숙의 얼굴에는 숨길수 없는 괴로운 빛이 시들픈 웃음과 함께 떠 돈다.

건넌방 아랫목에 영숙의 남편이 다리를 뻗고 누워 있고, 영숙은 그 옆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잡짓장을 뒤적어리고 있다. 영숙의 가슴은 답답한 기운으로 내리 눌리듯 한데, 영 숙의 남편은 무슨 큰일을 생각하는 것처럼 침중한 얼굴에 둥근 눈만 껌벅어리고 있었다. 영숙은 다만 가벼운 기침으 로 무거운 침묵을 깨뜨리려 하였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영 숙의 남편은 더 참을 수 없어서 말을 꺼내는 것처럼

『여보,』

하고, 영숙을 불렀다. 영숙은 고개를 돌리어

『네.』

하고, 자기 남편을 볼 때, 남편의 얼굴은 거짓말한 사람 모 양으로 여전히 엄연할 뿐이었다. 영숙은 한참이나 보고 있다가

『왜 그러세요?』

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방바닥에 있는 잡지 그림만 내려 다 보았다.

『당신이 나의 마음을 얼마나 알아주는지, 나는 언제든지 한번 물어보리라고 벼르었으면서도 여태까지 물어보지를 못 하였는데, 얼마나 영숙은 나를 생각해쥬?』

하며, 고개를 이쪽으로 돌린다. 영숙은 퍽이나 부끄럽게 대 답하기가 어렵다는 듯이, 다만 웃음만 웃고 아무 말이 없을 뿐이다.

『대답을 좀 해봐요.』

하고, 철수는 영숙의 얼굴을 뚫어지듯이 본다.

『무슨 대답을 해요?』

『내가 말한데 대하여 말야?』

『그런 말씀을 지금 나에게 물어보실 것이 무엇얘요?』

『아니, 나는 말로서 그 대답이 듣고 싶으니까 말요.』

『대답하나 아니하나 벌써부터 아시겠지요.』

『무엇을?』

『무엇이 무엇얘요?』

하고, 매무시를 잠깐 고쳐 매다가 암상스러운 얼굴에도 참 지 못해서 나오는 웃음이 입 가장자리에 새여 나온다.

철수는 무참하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어 돌아누우면서,

『나는 모르겠소. 물어보는 내가 잘못이지.』

하니까, 영숙은 다시 철수의 어깨를 끌어 잡아다니며

『왜, 돌아드러누셔요. 내가 그렇게도 보기 싫으세요. 보기 싫은 사람의 집에를 무엇하러 오셨어요?』

철수는 열이 난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듯이 돌아 누웠다. 영숙은 강짜나 올리는 듯이,

『왜, 말씀을 않으시지요. 대답 좀 하십쇼. 사람의 말이 말 같이 않습니까? 』

철수는 팔꿈치로 지근덕어리는 영숙의 팔을 뿌리치며,

『듣기 싫어, 내가 대답을 아니했어?』

하고, 흘긴 눈으로 영숙을 본다.

『그러면, 누가 말대답을 아니한 사람이 있어요?』

『그는 모르겠소. 그러나 저러나, 오늘은 내가 소문을 들으 니까 좋은 소문이 들립디다. 날더러 보기 싫여한다 합디다 마는, 영숙이야말로 내가 그렇게 보고싶지는 않으리다.』

하며, 다시 너하고는 말하지 않겠다는 듯이 고개를 돌린다.

영숙의 가슴은 뜨끔하였다. 새파란 기운이 날 듯 하던 그의 목소리는 어디로인지 쑥 들어가 버린 듯 하였다. 그러나,

『소문이 무슨 소문얘요?』

하고, 철수를 떡덩어리 반죽하듯 꽉꽉 주무르며 말을 한다.

『대답하셔요. 왜 말을 안 하셔요. 그 소문이란 무슨 소문 얘요?』

하고, 재쳐 묻기는 하나, 으례 언제든지 한번 있고야 말 이 일이 갑작스럽게도 아무 준비가 없을 때, 철수에게서 먼저 시작된 것이 영숙에게는 의외일뿐 아니라, 기선(機先)을 눌 린 것 같아서 그녀에게는 더욱 견딜수 없는 부끄러움과 억 지가 생기게 되었다.

철수는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그것은 들어서 무엇하료. 내 입으로 말하기는 싫소. 나는 이제야 나의 몸이 불쌍한 것을 알았소.』

『무엇이 불쌍해요? 왜 말을 못하셔요?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얘요?』

『불쌍하지 불쌍해.』

『무엇이 불쌍해요? 당신은 남부럽지 않은 재산이 있지요.

또 아내가 있지요. 자녀가 있지요. 무엇이 불쌍해요.』

『그렇겠지. 남들은 날더러 팔자 좋은 사람이라 하겠지. 그 렇지만, 나같이 불쌍한 사람이 없어, 나는 재산이 있기 때문 에 불행해. 아내가 나를 믿어주지 않는다. 나의 마음보다도 나의 재산을 위하여 나를 위하는 사람 뿐이야. 만일 나에게 재산이 없어진다 하면, 나를 따라 올 사람은 하나도 없을 터이지. 나도 내 가하고 싶어서 영숙을 이렇게 내버려둔 것 은 아니요. 영숙은 언제든지 어머니께 시집 잘못 보내 주었 다고 원망하는 말을 내가 한두번 들은 바가 아니오. 그말을 들을 적마다 나는 참으로 섭섭한 마음이 생기고 당신이 야 속합디다. 나도 당신의 마음 속에 있는 비애를 모르는 바가 아니요.』

영숙의 마음은 변동이 생기었다. 그의 머리 속에는 춘우가 보이었다가 다시 눈 앞에 있는 자기 남편이 보이었다. 영숙 의 마음 속에는 춘우도 그립지 않은 바가 아니지만, 지금 자기에게 애원 비슷하게, 원망 비슷하게 말을 하는 자기 남 편이 한편으로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가슴에 서 인정이 일어날 때 의리가 생겨나는 듯 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자기와 같이 살고 어여쁜 딸을 낳고, 또는 자기 어 머니와 자기를 살리는 자기 남편을 자기가 배반하는 것은?

하는 생각이 날 때, 그녀의 가슴에는 괴로움이 있었다. 춘우 의 따뜻한 사랑을 내버릴까? 자기 남편을 의리로 말미암아 쫓을까? 여기에 비로소 영숙은 두 남자를 저울질하게 되었 다. 영숙은 어느 편이든지 저울 추가 기울어지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제가 불만족하게 하여 드린 것이 무엇얘요?』

영숙은 말을 낮추어서 애원하는 듯 하기도 하고, 또는 위 로하는 듯한 어조로 말을 하였다.

『당신이 나에게 불만족을 준 것은 하나도 없소. 도리어 내가 당신에게 불만족을 준 것이 말할 수 없이 많지.』

『무엇이 그리 많아요?』

『무엇이라고 꼭 말을 하리까?』

『하셔요.』

『내가 첫째로 당신에게 나의 사랑의 전부를 주지 못하는 것이 나에게는 더 말할 수 없이 죄악이요. 내가 나 한몸뚱 이로서 여러 여자를 데리고 산다는 것이 절대로 죄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오, 내가 내 몸에서 나 자식들을 볼적마다 도리어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많소. 그러나 사랑 은 언제든지 하나인 것이요. 결코 둘이 아니오. 오늘에 나는 형식으로는 두 여자를 데리고 살지만, 나의 참사랑 이가는 곳은 한 군데밖에 없는 것이요. 당신은 남의 첩 된 것을 언 제든지 불만족으로 생각하고 비관까지 하나 봅디다만, 사랑 이라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형식을 초월한 것이요. 무엇이 든지 좋소. 어떠한 지위도 좋을 것이요.』

영숙은 그 말을 듣더니, 얼굴이 조금 불그레하여지며

『저는 조금도 그것을 부끄러워 하는 것이 아네요. 그렇지 요, 당신이 나를 어떠한 지위에 두시든지 나는 완전한 사랑 이 받고 싶어요.』

『완전한 사랑?』

철수는 한참이나 가만히 생각하고 있더니,

『그렇겠지. 누구든지 완전한 사랑을 받고 싶겠지? 그러나, 당신은 참으로 나에게 완전한 사랑을 주는 사람이요? 당신 은 참으로 당신의 모든 것을 다하여 나를 사랑하오?』

영숙은 대답하기를 주저하였다. 참으로 말하려면, 자기가 자기 남편을 참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다. 영숙이 자기 남편을 사랑한다는 것보다는 정리로써 그를 따르고 의 리로써 그에게 일생을 바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숙은 그 자리에서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는 없어서

『그러면 나의 사랑을 의심한다는 말씀이지요?』

하고, 도리어 자기 남편을 반박하였다. 철수는 시들스럽다 는 듯이 한번 픽 웃으면서,

『의심하지는 않소. 결코 의심하지는 않소. 그러나 나는 당 신에게 조금도 불만하게 한 일이 없는 것을 나는 단언할 수 가 있다는 말은 하고 싶소!』

『불만족하게 한 일이 없다구요? 흥! 좋은 말씀입니다. 그 렇지만 나는 당신에게 그런 말씀을 할 수는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