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 나도향

Chapter 7: 七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갔다. 푸른 빛이 가지가지마다 철철 흐르는 하던 녹음도 이제는 쌀쌀한 바람을 받아 빛이 여위였고, 몸이 마르게 되었다. 슬어지는 듯한 벌레의 숨모 는 소리가 나무 틈에서 난다.

바람이 한번 불면 하늘과 땅에 모든 수분(水分)이 번개치듯 쭉쭉 말라들어, 구름은 걷히고, 이슬은 마른다. 또 다시 가 을이 왔다.

춘우는 여름 옷을 벗고 가을 옷으로 바꾸어 입었다. 그리 고, 집에서 나오기는 아침 여섯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조급 한 마음으로 총총히 걸음을 걸어서 계동 박창하의 집으로 향하여 갈 때, 그의 마음은 영숙을 보게 되리라는 희망으로 가득 찼었다. 그저께 만나본 영숙을 오늘 만나는 것이 퍽 오랜 것 같고 잊어버릴 것 같았다.

춘우가 박창하의 집에 들어서 사랑 문을 열었을 때, 방안 에는 아무도 없고, 창하가 보던 책이 방바닥에 펴 놓은 채 아무렇게나 허틀어져 있었다. 옷 거는 못에는 모자도 없고, 옷도 없었다. 쓸쓸하기 그지 않았다.

그러나, 어떻든 구두를 끄르고 방으로 들어갔다. 모자를 벗 어던지고 두 다리를 뻗고서, 우연히 책상 위를 보니까, 거기 에는 연필로 아무렇게나 갈긴 글발이 있었다.

그것은 창하의 편지였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주기를 바라네.』

춘우는 한 옆으로 비스듬이 누워서 천정을 바라보며, 창하 오기를 기다리었다. 시계가 일곱시를 치고, 삼십분이 넘어도 창하는 오지 않았다. 춘우의 마음은 조여오기 시작하였다.

석쇠 위에 얹어 놓은 간어이 모양으로 오그라들기 시작한 다. 창하를 만나고 싶은 그것보다도 창하를 만나야 영숙의 기별을 알수 있으며, 영숙을 만날 수 있음이었다.

춘우는 일어나서 또 다시 문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캄캄한 길거리로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창하를 기다리었다. 동리 집에서 은은히 들리는 시계소리가 아홉 번을 운다. 그는 계 동 넓은 길로 모자도 쓰지 않고, 다섯 번을 오르락 내리락 하여 보았다. 그래도 창하의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다시 창하의 집 사랑으로 들어가서 방바닥 위에 사지를 쫙 펴고 죽은 사람처럼 있었다. 그러고 눈을 감고서, 나는 죽은 사람 이라는 생각을 하여 보았다. 캄캄한 무덤 속에 누워 있다고 상상해 보았다. 구데기와 땅두더쥐가 자기 몸을 파먹고, 척 척한 샘물이 자기 얼굴에 떨어진다고 생각해 보았다. 그리 고, 자기가 사랑하는 예쁜 영숙도 자기와 같이 이렇게 죽은 사람이 언젠가는 한번 그렇게 되고야 말 것이리라 .사람은 누구든 어느 때인가는 한번 죽는다 하는 생각을 할 때, 그 의 가슴에서는 불같이 뜨거운 힘이 생기는 듯 하였다. 사람 은 언제든지 죽는다. 죽기 전에 힘있게 살아보자, 무슨 짓이 든지 하여 보자, 무서울 것이 없다, 하는 생각이 나며, 피가 끓고 새 힘이 나는 듯 하였다.

영숙은 영원히 내 물건을 만들고야 말터이다. 영숙은 내것 이다 하고 입속으로 중얼거릴 때, 영숙은 영원한 자기 것이 된 것 같고,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즐거웠다. 세상의 명예와 지위와 부귀를 내던지드라도 영숙은 내던질 수 없다는 것 이, 그 때 춘우의 가슴 속에서 또 다시 한번 일어나는 뜨거 운 결심이었다.

춘우는 잠간 잠이 들었다. 어느 틈엔지 모르게 몽롱한 가 운데로 스미어 들어버렸다. 안개 끼인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고, 시계 소리가 꿈 속에 듣는 것인지 생시에 듣는 것인 지 모르겠더니, 깜박 정신이 없었다.

몇 시가 되었는지 모른다. 누구인지 춘우의 옆에 와서 부 르는 사람이 있었다.

『춘우!』

밤 기운에 적신 목소리가 춘우의 꿈 기운에 잠긴 몽롱한 정신을 반쯤 깨었다. 다시 한번

『춘우 자나.』

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춘우는 벌떡 일어났다.

『응, 창하.』

그리고 사면을 둘러 볼 때, 창하는

『웬 잠을 그렇게 자나. 매우 기달렸지?』

하며 반갑지 않은 얼굴로 춘우를 볼 때의 창하의 눈에는 즐겁지 않은 소식을 가지고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춘우는 눈을 비비며

『고만 깜박 잠이 들었어!』

하고, 우선 영숙의 소식을 물으려 하였으나, 창하의 입에서 먼저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창하는 옷을 벗고,

『몇 시에 왔나?』

하고, 자리에 앉는다.

『여섯시에.』

『무엇야? 여섯시!』

하고, 창하는 놀래면서 시계를 바라 보더니,

『벌써 저렇게 되었나. 열한시 이십분일세. 이건 아주 미안 하이 그려.』

춘우는 참다 못하여,

『관철동에 가 보았나?』

하고, 고개를 들었다.

『갔었어!』

『만나보았나?』

『보았어.』

『내가 한 말을 전하였나?』

『전했지.』

『그러니까 무엇이라던가?』

『오늘은 할 수가 없는 형편이네.』

『왜?』

춘우의 눈에는 의아스러운 빛이 돌았다.

『오늘 자기 남편이 시골서 오기 때문에 올 수가 없다고 하더군.』

『남편 왔어?』

『응.』

『그래, 자네도 만나 보았나?』

『그래서, 지금에야 왔다네. 저녁을 먹고 가라고 붙잡아서, 그대로 올 수가 있던가. 그런데 저녁을 어떻게 늦게 했는지 먹은지가 얼마 되지 않아.』

춘우의 가슴에서는 쓸데없는 질투의 마음이 칼날로 자기 전신을 어이는 듯 하였다. 즐겁게 지나던 두달 동안의 꿈같 은 행복은 순간에 끊어지고 말았다. 악착스런 운명은 춘우 와 영숙의 정성껏 꾸며 놓은 사랑의 생활을 짓밟고야 말려 한다. 잔잔한 바다에 비친 달빛을 한덩이 검은 구름이 가리 어 버리고 듯하고도 뜻하지 못한 맹렬한 폭풍우는 지금에 어디서든지 닥쳐올 것이다. 물결이 솟고 배가 깨지고, 굳세 고 무서운 소리가 들린 연후에야 다시 고요하여 질 것이다.

춘우와 영숙은 그 수선스럽고 처참한 가운데를 꿰뚫고 나가 지 않고는 평화로운 저쪽 언덕에 올라 설수가 없을 것이다.

저쪽 언덕의 평화로운 나라를 찾아가지 못하면 깨지고 조각 이 나는 파멸을 당할 수밖에 없는 거룻배다. 종이로 만들어 바다에 띄워 놓은 배와 같이, 지금에 이르러 무서운 꼴을 당할 때는 오고야 말았다. 춘우는 한참이나 말이 없이 앉아 있을 때, 창하는 친구를 위하여 충고를 한다는 어조로 등대 같이 번득거리는 두 눈에 광채를 내며,

『자네는 지금 자네 일생의 크나큰 분기점에 서 있네. 지 금 자네의 한번 마음 먹는 것과 한번 발길을 내놓는 것이 자네의 일생에 총 결산을 할 때, 반 이상의 원인을 만들어 놓은 것일세.』

하며, 침중한 얼굴로 말을 하였다.

『아네, 모든 것을 아네.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알고, 내가 해야할 것도 아네. 나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도 나, 다 벌써 부터 알고 있네, 그러나, 나는 한가지 나의 마음으로 알고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네……』

『알겠네. 그것은 애인을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나 똑같은 심리이겠지! 그러나, 자네에게 장차 닥치어 올 운명이 결코 행복스럽지 못할 것을 나는 지금 단언까지 할 수 있는 것일 세. 자네는 비 같이 쏟아지는 눈물을 흘리고, 바닷물을 마시 고 고래 같이 술을 마시고도 자네의 조그마한 가슴 속은 타 고 또 타고 해서 맨 나중에는 차디찬 잿덩어리가 되고야 자 네 얼굴에 웃음이 있을 것일세. 그러나 나는 자네의 그 웃 음을 보기를 원하지 않네.』

『자네의 청춘도 벌써 다 가고 말았는가? 청춘에는 어디까 지든지 청춘으로 지내야 할 것이다. 뱃속에서 갖나온 어린 애를 보고서, 그애가 늙어 죽은 뒤에 땅 속에 묻힌 백골을 생각하는 철학자 모양으로 자네는 너무 늙고 영리하여졌네.』

『아니, 나도 청춘을 아끼네. 다시 돌아오지 못할 청춘을 아끼지 않고 어떻게 하겠나. 될 수만 있으면 청년이나 만년 이나 청춘대로 살고 싶으이, 그렇지만, 맵고 날카로운 세상 은 나를 벌써 늙게 하였네. 아름다운 여자를 볼 때, 나의 가 슴이 타오르기는 고사하고, 그 분바르고 연지 칠한 피부와 살 속에 묻힌 앙상한 뼈다귀가 먼저 들여다 보이는 것을 어 찌하나. 여자의 웃음이 그 붉은 입술 위에 벌어질 때, 나는 그 웃음 때문에 가슴이 무너지어 버린 수없는 청춘남자를 불쌍히 여길 수밖에 없네. 나는 결코 여자를 사랑할 수가 없어.』

『그러면 자네는 이 세상에 엄연한 사실로 존재한 사랑을 부인하나?』

『아니지 그렇지 않지. 나의 친구인 자네도 지금 사랑으로 써 행복을 느끼고, 그것 때문에 속을 조이고 있지 않은가?

세상에 사랑은 있지, 그것은 부인하지 못하지. 그렇지만 현 대에 생존한 모든 인류가 사랑을 할 수 없을 만치 병적(病 的)으로 되어 버리었다는 말일세. 지금의 이 세상을 깨뜨려 부수기 전에 결코 사람들이 사랑을 하지 못하지. 현대 사람 들은 너무 참지 못할 고민과 비애를 지내 왔네. 너무 약아 지었네. 너무 의심이 많으이, 너무 자기를 위하게 되었네.

그렇지, 하늘에 비행기가 나르고 땅으로 기차가 달음질하고, 물속으로 잠항정이 다니고, 우리가 열흘에 다니던 길을 편 안히 앉아서 하루 안에 간다는 것이 반드시 생활조건(生活 條件)이 아닐 것일세.』

춘우는 감동한 듯한 눈으로 한참이나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다가,

『오늘 밤에 내 가슴 속에 있는 것과는 자네 말하는 것이 너무 거리가 멀으이. 나는 나의 할 것이 있으니까, 사랑하는 자기 희생(自己犧牲)이야. 자기를 희생할 수 없는 사랑은 결 코 사랑이 아니니까……』

창하는 껄걸 웃으며,

『하여 보게. 해보다 그만두지는 말게. 나도 자네를 위하여 힘있는 데 까지는 다 해 보겠네. 나는 자네와 영숙의 사랑 을 완전히 이룰 수가 있다 하면 「갈릴리」바다로 예수가 걸어간 것 보다도 더 이상의 기적(奇蹟)을 행한 줄로 알 것 일세.』

춘우는 간원하듯이

『창하.』

하고, 잠깐 가까이 앉으며,

『자네는 참으로 나를 위하여 힘써 주겠나?』

하고, 손을 쥘 듯 하였다.

『조력 하지, 나는 그 기적이 보고 싶네. 만일 그 기적이 내 눈앞에 나타난다 하면, 나는 이 세상이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것을 깨닫겠네. 무슨 광명을 찾아내겠네.』

『그러면, 나는 한가지 힘을 더 얻겠네. 나는 모든 것을 내 버리고 자네가 말하는 그 기적을 꼭 실현해 보겠네……아니 지 기적이 아니자, 으레히 될 일이지.』

『나는 자네에게 말하여 두네. 첫째로 자네는 자네 가정을 떠나고, 둘째로 자네는 자네 몸을 제단 위에 올려 놓게.』

『알았네.』

『그러고, 자네는 주고서 받기를 원하지 말게. 만일 자네가 완전히 나의 지금 한 말을 실행할 수가 있다 하면 자네에게 는 그래도 무엇이 남을 터이니까……자네가 지나간 두어달 을 꿈 속에 지나 왔지만, 그 꿈을 깨게 된 때가 온 오늘에 자네는 참으로 세상을 알 수가 있을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