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숙은 자기 집에 돌아왔다. 문간을 들어서는 영숙은 아까 자기 집에서 나갈 때의 그 영숙이가 아니라, 참으로 행복을 가슴에 실고서 돌아온 영숙이었다. 영숙의 눈에도 자기 집 이 아까 나갈 때의 그 집 같지가 않고 모든 것이 변하여 보 이었다.
마루에 불이 켜 있고, 장독대에는 대림질한 빨래가 널려 있으며, 하인은 대뜰 위에서 불을 붙이고 있었다.
『마님 계시냐?』
영숙은 마당 한 가운데 서서, 하인에게 말을 붙인 그의 가 슴은 이상하게도 물결치었다.
『예.』
하고, 하인은 대답을 한 후, 다시 불을 두어번 붙이더니
『안방에서 주무셔요.』
하였다. 영숙은 공연히 죄지은 사람 같았다. 집에 있는 사 람들이 자기의 죄를 미리 아는 것처럼 그들의 눈이 자기를 책망하는 듯 하여 모든 사람을 바로 볼 수가 없었다.
방으로 들어갈 때도 전같이 큰소리를 할수가 없었다. 어머 니를 부르고 싶었으나, 어머니가 일어나면, 자기에게 꾸지람 이 나릴 것 같았다. 옷걸이에 옷을 벗어 걸고, 버선을 바꾸 어 신은 후, 다시 건너방으로 건너갔을 때, 그의 눈앞에는 평화롭게 잠이 들은 청아가 자기를 기다리는 듯이 누워 있 었다.
영숙은 한참이나 청아를 내려다 보다가 그 옆으로 가까이 가 앉았다. 나팔나팔한 머리에 예쁜 입을 다물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서 쌕쌕 코고는 자기 딸을 볼 때, 영숙은 여태까 지의 모든 거북한 생각을 잊어버릴 수가 있었다.
영숙은 자기 입을 청아의 따끈따끈한 뺨에 문질렀다. 새큰 한 젖냄새가 코에 스미어 들고 부드러운 살은 자기의 마음 까지 녹히어 주는 듯하였다. 세상의 모든 평화를 모아다가 작은 얼굴에 부어놓은 듯한 것을 볼 때, 영숙은 자기가 다 시 옛날의 소녀시대로 돌아간 듯하였다. 영숙은 자기 딸에 게서 얼굴을 떼고 방안을 돌려다 볼 때, 그의 눈에는 문갑 위에 놓인 자기 남편의 사진이 보이었다. 영숙은 깜짝 놀래 었다. 자기 남편은 자기를 보고서 꾸짖는 것처럼 엄한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 같았다. 영숙은 청아를 내려다 볼적의 평 화롭던 마음이 다시 괴로워 지었다. 그는 그 사진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리었으나, 저쪽 미닫이틀 위에는 또 남 편의 초상화가 보이었다. 자기 남편의 초상화는 또 자기를 꾸짖는 듯 하였다.
『너는 나를 배반하였지?』
영숙은 일어섰다. 그러고 안방으로 건너갔다.
자기 어머니는 쭈굴쭈굴 이맛살이 잡힌데다가 팔을 비고 누워서 잠이 들었다. 그는 코를 골았다. 까맣게 삭은 이가 입술 밖으로 내밀었다. 허리 매무시는 쭈굴쭈굴한 허리에 아무렇게나 걸리어 있고, 엄지발톱이 빠진 발을 새우 같이 꼬부리고 있었다. 가끔가끔 떨리는 한숨을 쉬기도 하고, 고 개를 장판 위에 부디칠 것처럼 꼬빡꼬빡 하였다. 영숙은 벼 개를 들어 자기 어머니의 머리에 얹어 주었다. 그리고는 한 참이나 들여다 볼 때, 그는 자기의 어머니가 말할 수 없이 원망스러웠다. 자기를 돈에 팔아 그것으로 먹고 입고 지내 고 또 자기를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을 생각할 때, 그는 자기 어머니가 미웠다.
조금 있다가, 어머니는 눈을 떴다. 핏기 있는 눈망울을 광 채 나게 뜨고서 한참 있더니 손으로 입을 씻으며,
『언제 왔니?』
할 때, 영숙은 자기 어머니 목소리에서 생각하던 바와는 다르게 자애로움을 느끼었다.
『온 지 얼마 안돼요.』
어머니는 잠에 취한 듯이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몇시나 되었니, 어서 건너가서 자려므나.』
하는 어머니의 말을 들을 때 자기 가슴은 따뜻한 봄 볕에 눈 슬 듯이 녹는 듯 하였다.
어머니는 다시 잠이 들었는지 아무 말이 없는데, 영숙은 다른 때와 달리 근지러운 자애를 깨닫고, 다만
『네.』
하고서, 건넌방으로 다시 건너가서, 펴 놓은 자리에 누웠 다. 방안은 쓸쓸하였다. 초가을에 나무 잎을 부스스 떨어뜨 리는 것 같이 적적하였다. 옷걸이, 반닫이, 머리맡의 문갑이 전기불 빛에 차디찬 기운이 도는 듯이 번덕거리었다.
모기장을 치었다. 물 속에 켜 놓은 듯한 불빛이 영숙의 얼 굴에 풀물을 들여놓은 듯 하였다. 영숙은 침침한 것이 싫었 다. 무엇으로 자기 가슴을 누르는 듯하여 고개를 모기장 바 깥으로 내놓고, 신문지를 들고서 소설을 읽고, 잡지를 보았 으나, 한마디도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눈 앞에 는 녹음이 우거진 청량리가 보이고 뿌연 달빛이 눈 앞에 어 리이니, 춘우가 보이었다. 그러고 자기가 춘우의 가슴에 고 개를 기대로 있었던 것이 생각나며.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던 소리가 제 입에서 나가 서 제 귀에 들리는 듯 할 때, 그의 눈을 얼핏 떴다. 그리고 자기가 부끄러운 듯이 제 얼굴이 뜨거워 오는 것을 깨달았다.
『왜 내가 그이에게 그런 말을 하였을고? 내가 처음에 그 이가 손을 잡을제, 영영 거절을 하며, 버티었드면 좋았을 걸!』
하고, 자기가 자기의 한 짓이 부끄러운 중에도 허무한 듯 하여 혼자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