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사람이 문밖으로 나섰다. 뜨거운 볕이 내리쪼여 땅바닥 에 깔린 하얀 모래에 반사되는 것이 몹시도 눈부시게 한다.
청년회를 거치어, 종로 네거리에서 전차를 타고 신용산을 향하여 나간다. 전차 속에는 별로 사람이 적고, 동쪽에 볕을 가리는 「뿔라인드」가 닫혀 있는 대신에 서쪽은 문을 모조 리 열어놓아 전차가 달아날적 마다 시원한 바람이 옷속으로 기어 들고 머리위에 달린 손잡이는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거 꾸로 매어 단것처럼 이리 흔들 저리 흔들한다.
철수는 두 손을 단장위에 모우고서 정신없이 창밖을 내다 보고 영숙은 그 옆에 앉아서 가끔 가끔 입가를 수건으로 씻 으며 두 눈을 또렷또렷하게 굴린다. 그리고, 창하는 맥고모 자를 뒤로 제치고 그 두 사람 앞에 손잡이에 손을 걸고 섰다.
전차는 또 다시 속력을 내어 달아나다가 섰다. 전차가 황 금정 네거리에 섰을 때 저쪽 광화문 쪽에서 오는 전차가 닦 아 와서 영숙의 전차와 나란히 섰을 때, 영숙은 앉았던 몸 을 갑자기 일으키려다가, 다시 얼른 앉으며, 손가락으로 그 쪽 차를 한번 가리키더니, 이채가 도는 눈으로 무엇을 의뢰 하는 것처럼 창하의 얼굴을 치어다 보았다. 그때 고개를 그 쪽으로 돌린 창하는
『여보게 춘우!』
하고, 저쪽 창으로 가까이 가서 소리를 지르며,
『어디 갔다 오나?』
하였다. 저쪽 차에 탔던 춘우는 얼굴에 웃음을 지으며 벌 떡 일어나서, 세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어디 가나. 나는 수철리 좀 다녀오는 길일세.』
할 때, 전차는 땡땡하는 신호를 치었다. 땡땡 하는 소리를 들은 영숙은 애석한듯이 춘우만 바라보고 앉았는데, 창하는
『여보게 여보게, 이 차로 좀 오게. 내가 할 말이 있으니』
하며, 서두르는 손짓으로 춘우를 불렀다. 춘우는 어느덧 저 쪽 차에서 이쪽 차로 옮겨 탔다. 영숙이 마음은 기다리던 좋은 소식을 전하는 편지 봉투를 뜯으려는 사람처럼 마음 속의 의심과 기쁨이 자기 가슴을 채우고 춘우가 자기 앞에 설 때, 이상하게도 무슨 중대한 문제가 이 시간에 발생되는 것 같았다.
청하는 와서 선 춘우를 보더니,
『수철리는 왜 갔다 오나.』
하며, 손에 들었던 부채로서 자기 얼굴을 부친다.
춘우는 반가운 사람을 옆에 두고 말을 하지 않으나, 자기 몸의 영숙에게 향한 편에는 영숙이 기운이 비오려는 난 연 기가 땅으로 기어가는 것처럼 서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억 지로 기운을 진정하고,
『어머니 산소에.』
『응 산소에, 그렇겠지. 삼년이나 서울 있지 않았으니까.』
하고, 그러라는듯이 고개를 끄덕어리었다. 춘우는 주고 받 는 말로
『자네는 어디 가나?』
하고, 고개를 무의식하고 옆으로 돌리어 영숙과 철수를 보 고 다시 고개를 돌리었다.
『한강에 놀러 가네. 자네도 같이 가세 그려.』
『한강!』
춘우는 눈을 크게 뜨며, 유탕 기분이 자기 마음속에 반짝 하고 불이 켜진 것처럼 녹는듯한 웃음을 띠우며,
『좋이 그려, 그러나, 나는 싫으이』
눈치를 챈 창하는 선뜻 몸을 돌려 철수를 보더니,
『참, 인사하게.』
하고, 다시 춘우를 가리킨다.
춘우와 철수는 비로소 인사를 교환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 인사를 하는 것을 보는 영숙의 마음은 춘우가 자기에게로 가까이 오는 걸 창벽을 하나 제쳐놓는 것 같았 고, 목욕하려는 사람이 맨 마지막 옷을 벗은 것 같았다. 그 와 반대로 철수가 춘우를 볼 때 공연한 질투의 마음이 생기 며 자기 첩 영숙의 행동이 때려주고 싶도록 야속한 듯 하였다.
철수는 점잖은 어조로 춘우를 가끔가끔 흘겨 보며,
『참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
하고, 엉덩이를 들었다 놓았다.
춘우도 따라서
『천만의 말씀……』
하고, 입속에다 말을 넣고 어물어물하여 버린 후
『댁이 시골이라시죠?』
고 말 끝을 채치는데는 정이 똑똑 묻어 떨어지는 듯 하였다.
『예, 본집은 시골이고……』
한 후 말이 없다. 전차는 조선은행 앞을 지내놓고, 남창미 정(南倉米町)에 다달으려 할때, 춘우는 무엇을 버리고 온 사 람처럼 전차 밖으로 나가려 하며,
『여기가 어딘가. 나는 내리겠네.』
학사 수와 창하는 이구동성으로
『아니요. 같이 가시지요. 별로 바쁘시지 않으셔요?』
하며, 창하는 춘우의 옷을 잡으며,
『같이 가세. 가야 할 일 없을 터이니.』
『별로 할 일은 없으나……』
『할일 없거던 가! 조금도 어떻게 생각지 말고……』
춘우는 못이기는 것처럼 그대로 섰었다. 네 사람은 한강으 로 가기로 결정이 되었을 때, 비로소 자리가 잡힌 듯이 입 들을 다물고 앉았었다. 춘우는 저쪽에 가서 영숙과 마주보 고 앉았게 되었다.
오늘 아침 자리 속에서 눈 감고 보던 영숙의 실물이 자기 앞에 앉아있는 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느낄 때, 그녀의 아릿다운 몸, 부드러운 살, 그 여자의 모든 아름 다운 것을 혼자 차지한 철수를 부러운 듯한 눈으로 보게 되 는 동시에 또는 조소하는 웃음이 입가장자리에 돌았다.
『너는 죄인이다. 사랑을 돈으로 산 사람이다.』
하는 생각이 나자, 갑자기 심사가 아니 날 수가 없었다.
신용산에서 내리어 네 사람은 「뽀트」한척을 얻었다. 그 때까지 영숙은 누구에게던지 말한마디를 한일이 없었다. 다 만 속으로 옆에 있는 이는 나의 남편 또 한 사람은 남편에 게 일가 되는 창하, 또 한 사람은 옛날에 같이 놀던 춘우, 이러한 생각 뿐이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다만 춘 우가 자기를 옛날에 같이 놀던 사람으로 아나 모르나 하는 의심과 알았으면 더욱 친절한 옛 친구를 다시 얻겠다는 생 각이 있을 뿐이었다.
네 사람은 배위에 올라갔다. 춘우와 창하는 노를 잡고 저 어나갔다. 한강 중류에 배를 띠우고 푸른 공단결 같은 물위 로 배를 쭉쭉 밀어 갈 때 마다 찢어지는 듯한 물결은 다시 합하여 평평하여진다. 영숙은 쪼이는 볕을 가리기 위하여 파라솔을 펴서 어깨에 걸고 힘없이 빙빙 돌리면서 푸른 산 을 바라보며 수도회사의 연기가 나는 굴뚝을 보다가 해가 춘우의 얼굴에 비칠 때 그는 가만이 파라솔로 볕을 가리워 주었다. 춘우와 창하는 신이 났다.
『엿샤.』
『엿샤.』
춘우가 한번 잡아다니었다가 놓고, 창하가 한번 잡아다니 었다 늦출 때 두 사람의 입에서 장단이 맞아 「엿샤」소리 가 나온다. 「뽀트」는 속력을 내어 간다. 철교 밑을 지내서 여의도 편으로 가다가 다시 한 바퀴 돌다가는,
『자, 고만 젓게. 그대로 띠워놓고 놀세.』
하는 창하의 소리에 춤추는 듯 하던 노는 정지하였다.
『참, 오래간만일세. 한강 뱃놀이도.』
춘우는 먼 곳을 둘러 보며, 옛날을 회상하는 듯한 표정으 로 말을 한다. 배는 힘없이 둥실둥실 떠나가다가, 다시 머리 를 돌린다. 창하와 춘우는 뱃머리의 도는 것을 막으려고 노 를 슬근슬근 저으면서 멀리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에 넥 타이와 머리카락을 날리인다.
『그 동안에 어디 다녀오셨어요?』
철수는 심심함을 깨뜨리기 위하여 말을 꺼내었다. 춘우는
『네?』
말대답을 하고서, 수연한 눈으로 먼 곳을 보더니 다시 웃 음을 띠우며 철수를 보았다. 공작을 털과 같이 윤기가 있는 까만 머리, 둥글고 약간 수척한 듯한 얼굴, 숱한 눈썹, 콧날 이 서지 못한 전형에 말할 때마다 실웃음을 치는듯한 작은 눈이 그때 철수의 눈속에 비추인 춘우이었으며, 먼저 춘우 가 철수의 마음을 풀어주듯 하는 것이 춘우의 폐부에서 울 려나오는 웃음과 심장을 적당하게 쓸어 빚는 듯한 두 입술 손으로 하얗게 비추이는 것이었다.
『어디를 갔다 오셨어요?』
『시골요.』
『어느 시골!』
『경상도 좀 다녀왔습니다. 공연히 돌아다녔죠.』
하며, 그것은 알아 무엇하느냐는 듯이 빙긋 웃으니까, 철수 도 따라 웃으며,
『무슨 일로요.』
할 때, 옆에 앉아서 이 말을 듣는 영숙도 춘우를 치어다보 며, 방글방글 웃는 것이 「나를 몰라보느냐」는 듯 하였다.
창하는 담배를 피우다가,
『압니다. 밥벌이 갔었다네.』
하고, 춘우와 철수를 웃는 눈으로 번갈아 본다. 말이 중단 되었다.
다시 춘우와 창하는 배를 젓기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뱃머 리를 돌려서 인도교 아래로 향해 가기로 하였다. 그러나, 춘 우는 여러 사람의 뜻을 물으려고,
『어느 쪽으로 갈까요?』
하며, 젓던 노를 그치고 대답을 기다릴 때, 영숙은 얼핏
『저리로 가시죠.』
하며, 수건 든 손가락으로 한강신사(漢江神社) 아래쪽을 가 리키었다. 그러고는 춘우와 맨 처음으로 말을 교환하게 된 것이 우연하게 된 일이었으나, 가슴이 무거워진 듯하고, 하 기 어려운 일을 망설이다가, 이를 악물고 해버린 것처럼 가 슴을 문질러 내려앉히었다.
『저리로 가요.』
춘우도 대답을 하기는 하였으나, 바늘에 실꿰기 경주하는 아이가 바늘에 실을 꿸 것 같이 어렵고도 신기한 듯한 생각 이 났다. 그러면서 일층 힘이 나서 배를 저어간다. 열댓간 나갔다. 춘우의 팔은 이상하게도 끓는 피가 모여들고, 온 몸 에 힘이 얽히는 듯 하였다. 그는 종이조각을 저어가는 듯이 배가 가벼웠다.
『이 사람아 조금 천천히 젓게.』
창하는 이쪽 노를 저으면서 소리를 지른다.
『왜 그러나?』
춘우는 고개도 돌이키지 않으며 이렇게 대답을 한다.
『배가 돌아, 배가.』
창하는 젓던 노를 그치며 춘우의 등을 때린다.
『배가 돌아?』
춘우는 앞뒤를 돌아다보며 팔의 힘을 늦추고, 실없이 웃었 다. 창하도 빙그레 웃고 영숙도 방싯 웃는다. 다시 팔을 나 란히 하여, 천천히 저어나갈 때 영숙의 입에서는 노래가 나 온다.
배가 한 바퀴 산기슭 밑으로 돌고, 다시 녹음이 우거진 나 무 속을 지나갔다. 그래서, 햇빛이 가리인 바위 밑에 배는 닿았다.
『고만 쉬죠.』
영숙은 창하에게 말은 하면서 보기는 춘우를 보았다.
『그럴까요. 여기서 점심이나 잡숫죠.』
하는 말을 들은 철수는
『여기서 점심을 어떻게 먹나. 저리 올라가서 편안히 앉아 서 먹죠.』
하며, 등뒤에 솟아있어 보이지 않는 용금루(湧金樓) 요리집 을 가리킨다. 창하는
『글세, 자네 맘대로 하게 그려.』
『그럼 배를 그쪽으로 대슈.』
춘우는 노로 언덕을 짚어 배를 내밀고, 창하는 노를 들어 방향을 정하였다. 다시 두 노는 나래처럼 저어서 그쪽을 향 하였다.
네 사람은 배에서 내렸다. 춘우는 노를 강가에 꽂아 배를 거기에 매어놓고 맨 뒤에 그 뒤를 쫓아갈 때, 영숙이 창하 를 향하여
『그 어른이 전보다 몰라뵙게 되었어요. 어렸을 때 얼굴 모습이 여태까지 있기는 있으나 얼굴이 여위고, 또 웬일인 지 눈 가장자리에 침울하고도 슬픈 기운이 돌아요.』
하며, 십여보 뒤떨어진 춘우를 잠간 돌아다 본다. 춘우의 눈과 마주치니까, 얼른 고개를 돌리었다.
창하는 단장으로 언덕을 짚으며,
『그 사람은 얼마전까지도 그렇지 않았는데, 근래와서 무 슨 생각을 하는지, 퍽 침울해 보여요. 사람은 너무 마음이 약해 걱정이지. 참 좋습니다. 또 재주도 있고요.』
할 때, 춘우가 뒤에서 급하게 뛰어올라오니까 두 사람의 말은 끝이 났다.
네 사람이 용금루에 올라 자리를 정하고 앉았을 때 춘우의 마음엔 삼년전 생각이 다시 난다.
『여보게 창하!』
춘우는 상하 좌우를 훑어보며,
『옛날 생각이 나네 그려.』
창하는,
『옛날……』
하고, 고개를 기웃하더니,
『옳지 생각도 나겠네.』
할 때, 춘우의 눈앞에는 지금으로부터 삼년 전에 이 자리 이 난간에 기대어 앉았던 미인하나가 생각된다. 자기가 시 골을 떠난다고 여러 친구들이 마지막으로 술 몇잔을 나누기 위하여 오기 모였을 때, 나이 어린 설성월(雪城月)이 처음에 는 자기 무릎에 손을 얹고서,
『인제 가시면 언제 오셔요?』
하며, 얼굴에는 눈물 어린 웃음을 억지로 웃더니, 그 다음에는
『가시지 마시지요. 여러 친구들과 그렇게 자별하게 노시 더니, 어떻게 혼자 떠나셔요. 여러 친구들도 섭섭히 여기시 는데.』
하다가는, 한참이나 푸른 강물을 내려다보더니, 난간에다가 고개를 숙이면서,
『저는 오늘 선생님을 마지막 보이는 것 같아요. 가지 않 으시지는 못하겠어요? 선생님.』
하고, 어린 두 눈에 진주같은 눈물을 흘리던 것이 생각된다.
그러나 춘우는 시골을 갔었다. 가고싶은 길을 떠난 것이 아니었지마는, 벌써 삼년이라는 시간을 지내는 오늘에 이 자리에 와서 보니, 난간에 떨어졌던 그의 눈물은 찾을 길이 없고, 그는 지금에 충청도 어디로 그의 정든이를 따라갔다 한다.
창하는 가만히 앉았다가 무엇을 깨달은 것 같이 춘우를 보 더니,
『참 여보게.』
하고, 부르다가 다시 영숙의 편을 향하여,
『왜 모르십니까? 아까 아침에 말씀까지 하시구.』
하니까, 춘우와 영숙 두 사람은 일제히 허리가 구부러지고, 누가 자기네를 간질이는 것 같이 부끄러운 웃음을 띠우며,
『왜 모르기는요.』
하고, 서로 치어다 보았다. 영숙은 가슴 속에 뭉쳐 있던 무 엇이 풀어진 사람처럼 얼굴에는 사람 좋은 웃음을 띠우고,
『참 오래간만에 뵈입니다. 그전 석다리께 살적에 같이 학 교 다니던 생각을 하셔요?』
하며, 잠간 길음한 속눈썹이 눈을 깜작깜작 할 때마다 미 력 있는 안채를 체질한다.
춘우는 두 손으로 깍지를 껴서 무릎 위에 놓으며,
『생각하고 말고요. 어머님께서 안녕하셔요? 퍽 늙으셨을 걸요.』
영숙은 얼굴에 동정과 연민의 정을 어리면서,
『그럼요. 이제는 아주 전만 못하셔요. 그러지 않아도 아까 저 어른이 춘우씨 말씀을 하시니까, 한번 보고 싶다고 그러 셨어요.』
하고, 영숙은 창하를 가리킨다. 춘우는 여태까지 나를 생각 하여 주는 것이 고맙다는 마음과 또 창하가 무슨 말을 하였 는 것이 이상하여 창하를 보며,
『무슨 말을 하였는데……』
하고, 미심한 듯이 말을 들으려 한다.
『아까 아침에 영숙씨가 날더러 말일세. 어제 저녁에 우리 집에 왔던 이가 누구냐 하시기에 자네라고 하지 않았겠나.
그랬더니, 자네와 어렸을 때 같이 학교에 다니시고 같은 동 리에 살았다고 하신단 말야……』
춘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 저를 기억하셨어요. 저도 어저께 잠간 뵙고 알았어 요. 그렇지만 인사를 여쭙기도 무엇하고…… 그래서 그대로 있었습니다……』
할 때, 술상을 보아 들여왔다. 약간의 안주와 맥주 몇 병을 갖다놓고 세 사람은 마시기를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