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우는 그날 저녁을 인우에게 끌려 자기 본집에서 잤다.
어제 저녁에 어린 인우가 자기에게 한 말이 뼈 속에 사무칠 듯하여 잊을 수가 없었다.
어린 동생이 그렇게 어머니가 보고 싶어할 것은 춘우가 생 각지 못한 바가 아니지마는, 진정으로 이렇게 피속에까지 그것을 느끼어 보기는 드물었다.
지금에 자기가 실연이라고 하는 것보다도 어떠한 운명의 번롱을 받아서 그렇게 사랑하던 영숙과 서로 떨어지지 않으 면 안되리라는 가슴 아픈 사실을 앞에다 두고, 또는 어린 인우의 불쌍한 꼴을 볼 때 그는 어찌 가슴 속에서 물 끓듯 용솟음치는 느낌과 깨달음이 없었으랴.
춘우는 직감적으로 어머니가 어떠한 것을 알았으며 다시 생각할 여지가 없이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웠다.
춘우는 어린 인우를 그대로 남겨 두고서 나올 수가 없었다.
『언니 나허구 가.』
하고 옷고름을 입에다 물고 눈물 망울이 어린 눈으로 자기 를 치어다볼 때, 그는 어린 인우의 따르는 마음을 이끌어다 가 자기를 반성하여 보았다.
『네가 그렇게 무정한 사람도 아닌데.』
할 적에는 모든 원망과 저주의 마음이 가슴 한복판에 모여 들며 하늘을 우러러 실컷 울고 싶은 것외에는 아무것도 없 었다.
춘우는 거기에서 바로 자기의 회사로 갔다.
가는 길에서도, 앉아서도, 서서도, 무엇을 먹으면서도 잊혀 지지 않는 것은 오늘 아침에 인우가 밥을 먹으면서 자기를 향하여
『언니, 어머니가 오시지를 못하시거든, 나를 데려가라고 해주지를 못하겠오?』
하는 말이다.
아아, 데려를 가달라는 곳이 어린 인우는 어느 곳이며 어 떠한 곳인지 모르고 하는 말일가, 거기에는 무슨 암사가 있는 듯하였다. 어머니만 올수 있으 면 어디든지 간다. 그곳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곳일지라도.
그는 인우의 경우를 다시 청아와 영숙에게 갖다 대보았다.
옛날에 어머가 자기와 자기 동생에게 하시던 것을 생각하여 보고 영숙이 청아에게 할 것을 생각하여 보았다. 자기 어머 니는 자기에게 한것이 반드시 그렇게해야 할 일이 되어서 그렇게한 일도 아니겠고, 자기가 어머니에게 사랑을 반드시 받을 만한 무엇이 있어서 받은 것도 아니다. 절대의 모성의 사랑이 우리 인간에게 있어 영겁으로부터 영겁에 그것이 흘 러내려가는 것이니, 그것은 이해관계나 채권과 채무가 있어 따질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기와 자기 어머니와 사랑을 만일 여기에 누가 있어서 저 해하였다 하면, 아니라 인간의 목숨이라는 것이 그것을 벌 써 저해하여 지금 자기와 인우를 이렇게 불행하게 만들었으 며 자기는 하늘과 운명을 저주하는 것이다. 만일 단념하지 않으랴 아니할 수 없는 목숨이 자기의 행복을 저해하지 아 니하고, 그 다른 것이 있어서 저해하였다 하면, 얼마나 자기 는 그것을 미워하고 원수로 알았으랴? 이것을 보면 영숙은 나를 사랑하고 내가 또한 영숙을 사랑은 하지마는 청아야 또한 어떠하랴. 자기 어머니를 빼앗은 나를 얼마나 원망하 고 저주하랴.
『만일 어제 설성월의 한 말이 정말이라고 하면? 영숙이가 참으로 철수에게로 돌아갔다 하면 그의 마음이 아니요 몸일 것이며, 이성(異性)의 사랑이 아니라, 모성(母性)의 사랑일 것일가?』
『그러나, 그것을 누가 믿으랴? 내버림을 받은 나는 언제 든지 내버림을 받은 것이 아니냐? 그것이 다만 육체상뿐이 라고 하드라도.』
『그러하면, 지금에 영숙이 그렇게까지 다시 철수에게로 돌아가기를 승낙하였다 하면 어찌하여 나에게 그와 같은 말 을 하고 용기있고 또는 말쩡하게 얼핏 자기를 아니하고 미 지근하고 해명무실하게 질질 끌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 며, 또는 그런 기색을 알리지 아니하려는 것은 무슨 까닭일 까?』
『만일 그래도 사랑이 나에게 남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 나머지 사랑을 쓸어가지고 가는 것이 옳으며, 그렇지 않고 나에게 사랑의 전부가 그대로 조금도 이지러진 곳이 없이 남았다 하면, 그 때에는 다시 나에게 오는 것이 옳을 것이 어늘, 벌써 가기를 승낙한 그로서 그것을 결단하지 못하는 것은 헤아릴 수 없는 일이다.』
이 모든 생각을 하여가면서, 춘우는 잡았던 붓을 책상 위 에다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그는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로 오정 친 때 일을 고만두고 회사 문밖으로 나왔다.
전 같으면 으레이 발길이 자기 집으로 향하였을 터이지마 는, 오늘에는 발길이 그리로 돌아서지를 아니한다. 어제 저 녁에 설성월이 앞에서 큰 소리로 하던 것이 오늘에는 어느 덧 풀어져 버리고 힘이 죽었다.
그저께는 사랑의 셈을 따지려고 자기 집으로 가는 길에 친 구에게 끌려 술 먹으로 갔다가 설성월을 만나 그것을 중지 하였고, 어저께는 어린 인우를 만나느라고 그것을 고만두었 더니 오늘은 춘우 가슴에 이상한 감개가 있어서 또 허락하 지 않게 되는 모양이다.
춘우는 나오기는 나왔으나, 발 내놓을 곳이 없었다. 그는 길거리에 한참 서서 어디로 가야 좋을까, 그것을 생각할 때, 자기가 비로소 넓으나 넓은 세상에 몸 하나를 붙일 곳이 없 이 외롭게 된것을 느끼었다.
춘우의 발길은 다시 창하의 집으로 돌려졌다.
자기가 자기 혼자 해결하지 못할 이 일을 같이 의논할 사 람이라고는 창하밖에 없다.
창하는 마침 문밖으로 나오다가 춘우를 보고서,
『이게 웬일인가? 오늘이 일요일도 아닌데.』
하며 이상스럽게 본다.
『오늘은 몸이 좀 아파서 일찍 나왔네.』
『어디가 그렇게 아프단 말인가. 또 어제 저녁에 너무 먹 은게지?』
『아냐, 먹지도 않았어. 대관절 어디로 가는 길인가?』
『별로이 정한 곳은 없네.』
『그러면, 내가 의논할 일이 있어 왔는데.』
『무슨 일?』
창하는 돈이나 꿔달라는 줄 알고, 속으로 변통할 궁리부터 하였다.
춘우는 잠깐 아무 말이 없다가,
『어쨌든 천천히 걸어가며 말하지.』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여 걸어온다.
『그런데, 여보게 그저께 명월관지점에서 설성월이를 만나 지 않았겠나?』
『성월이?』
하고 창하는 눈을 크게 뜬다.
『그래?』
『무엇이 그래야. 만났다니까.』
『퍽 컸지?』
『크기도 퍽 컸거니와, 사람도 아주 변했데. 인제는 아주 기생야.』
『그럴테지.』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지 않은가.』
『무엇이?』
『그 애가 나와 영숙과의 일을 여간 소상히 알지를 않데 그려.』
『어떻게? 아마 조사를 해본게지.』
『조사가 다 무엇이야. 철수가 그 집에를 다니데 그려.』
『무어야?』
하고 창하는 춘우의 얼굴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그래서?』
『그래 아마 내 이야기와 자기 사이를 모조리 말한 모양이야.』
『그러고, 어저께는 내가 성월이에게 여간 훈계를 받지 않 았네.』
『무엇이라구?』
『날더러 영숙을 단념하고 저하고 지내잔 그 말야.』
『빌어먹을년, 기껏 그런 소리밖에 모른담. 어쨌든 자네는 팔자 좋아.』
『무슨 팔자가 좋아? 여보게, 말 말게, 팔자 좋은 사람이 계집에게 내버림을 당해.』
『누가?』
『누구 누구야, 영숙의 일 말이지.』
창하도 거기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여보게 내 생각 같아서도 영숙이와는 암만해도 손을 끊는 것이 옳을 것 같으이.』
춘우는 조금 침울한 빛으로 말을 하였다. 창하는 다만 앞 만 내다보며 걸어가면서,
『글세 어떻게 해야 좋을는지.』
하고 확실한 대답은 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영숙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닌것도 아냐. 그렇지만 그에게는 청아가 있으니까.』
『청아가 있으니까, 어떻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내가 인정이 없는것 같네.』
『무슨 인정이 없단 말인가. 영숙이 청아를 떼치지 못해서 그러하는 것은 혹 어머니된 도리에 그러할는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생각을 해보게. 맨 처음에 자네를 따라올적에는 청아를 그렇게 내버리고 와서는 천년 만년같이 살자 하던 여자가 갑작스럽게 자식 생각을 한단 말인가. 여자라는 그 래서 사귀기가 어렵다는 것이야. 처음에는 여러가지 밖의 유혹과 또 자기 유혹 즉 자기가 공상도 하여보고 희망도 하 여보아 자연히 거기에 끌려 넘어가는 그러한 유혹에 빠져서 자네하면 자네에게 왔다가 그것이 싫증이 나고 또는 부족하 여 다시 가는 것이지.』
『그러면, 어떤 다른 남자를 따라간다는 것은 모르지마는, 왜 전엔 싫다고 내던진 사람에게로 가느냐 말야.』
『압다, 딱두하지. 생각을 좀 해보게. 자네는 돈이 없지 않 은가. 자네허구 살려면 자연히 고생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지 않겠나. 그러니까, 당장에 딴 남자 구하려 할수 없고 또 구한다 하드라도 그만큼 돈 있는 사람이 없을 듯하니까, 사람은 조금 부족하드라도 청아를 핑계삼고 다시 돌아가는 것이지. 저도 그만하면, 철이 날 때가 되었으니까, 그럴 것 아닌가. 인제는 그저 덮어놓고 사랑 사랑 할 때 가 아니거든.』
춘우는 창하의 말이 옳다고는 하면서도 듣기에 좋지는 아 니하였다.
『그러면, 왜 얼핏 가지를 아니하고 그러고 있어.』
『그것은 또 이유가 있지. 만일 제가 그대로 단결에 획 뿌 리치고 가보세. 세상에서 누구를 욕하겠나. 그러니까, 자연 히 정의가 버스러지거든, 그 책임을 자네에게 둘러싸고, 자 기는 곱다랗게 빠져가잔 그 말이거든. 그래서 철수에게 몰 래 다니며 내용은 다해놓고, 자네가 물러서기를 기다리는 것이란 그 말야. 내 말이 옳으니. 그래 애당초에도 내가 자 네더러 그러지 않았나. 옛날에 베드로가 닭 울기 전에 예수 를 세 번 속인 것처럼 자네도 나를 속인다고.』
춘우는 처음 창하를 찾아올 때 그래도 속으로는 창하가 자 기와 영숙을 다시 얽어매는 무슨 좋은 방법을 가르쳐주기를 바랐더니, 지금 너무 냉연한 태도로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 고서 속으로 섭섭한 마음까지 났으나, 또한 그 말이 그럴듯 도하여 춘우의 마음은 동요가 되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사람이 그럴수야 있나. 영숙이가 어데로 보는 지 그런 사람은 아니든데.』
『자네 눈에야 왜 아니 그렇게 보이겠나? 미운데도 예뻐보 일터이지. 그렇지만 내 눈으로 본다든지 내 생각 같아서는 그리 영숙의 일을 찬성은 할 수가 없네.』
춘우는 몹시 창하가 야속한 것 같았다. 어떤 때에는 이 사 람이 무슨 혐의로 자기와 영숙 사이를 떼어놓으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렇게까지 친구를 의심하는 마음이 나기까지 하였었으나, 춘우는 그것을 얼핏 제어하고 아무리기로, 창하가 내게 그 렇게까지 할 리가 있을리는 없지 하고, 얼른 마음을 돌려먹 었다.
그러면, 내가 영숙을 아주 단념해버리는 것이 옳을가. 만일 그랬다가 도리어 두 사람에게 더 큰 불행이 돌아온다 하면 어찌할가. 춘우는 여러가지로 걱정을 하며 마음의 결정을하 지 못하는중, 어느덧 종로에 두 사람은 왔다.
네거리에서 두 사람은 사면을 훑어보며,
『어디로 갈가?』
하고 서로 얼굴만 치어다본다.
『글세.』
춘우는 도리어 창하ㅣ 얼굴을 치어다 보았다.
『저 성월의 집에 가보세, 어딘가.』
춘우는 창하의 입에서 이 말이 떨어질 때, 그는 번개와 같 이 어제 저녁에 자기가 한 말이 생각되며, 또 성월이가 자 기에게 웃으며 하는 말이 『내일 이맘때가 되기 전에 만나 뵈옵지요.』하던 것이 생각난다. 그러나, 어저께 주먹을 쥘 때의 춘우만큼 힘이 스러진 지금의 춘우는 성월에게 마음이 끌리어 가는 줄 모르게 끌려가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난다.
『성월의 집?』
『그래.』
『거기는 무엇하러 가나?』
『오래간만에 만나보니 말야.』
『나는 가기가 거북한걸.』
『왜?』
『어제 저녁에 술이 취하여 다시는 만나보지 말라고 그랬어.』
『하하, 그것은 취담으로 알겠지. 어서 가보세.』
창하는 춘우의 소매를 끌어잡아다닌다.
『나는 집만 가르쳐주겠네.』
춘우는 마지못해 끌려가는 듯이 따라갔다.
『압다, 공연히 그러네 그려. 가고싶거든 국으로 가지 잔말 이 무슨 잔말야.』
『정말야, 들어가지는 싫어.』
『염려 말게. 내가 끌고 왔다고 해줄터이니.』
춘우는 고개를 쳐들고 기가 막힌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두 사람이 설성월의 집에 들어서서 성월을 찾았을 때는 마 침 목욕을 하러 갔으므로, 만나지를 못하였다. 춘우는 가슴 을 내려앉히고 적이 홀연하였었으나, 또 한편으로는 뭇내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어떻게할가? 갈 곳이 있어야지.』
『글세 화나는데 술이나 좀 먹었으면 좋겠는데.』
『술? 술 먹기야 쉽지. 어디 가서든지 한잔 해볼가?』
『하지만, 너무 일러서……』
『일르면 어떤가, 아늑한 곳에 가서 먹세 그려.』
두 사람은 다시 아늑한 곳을 찾아서, 문밖으로 나왔다. 절 에서 술을 시켜서 먹을 때 춘우는 옛 생각이 가슴을 치밀어 올라서 실없이 처량한 생각이 난다.
『여보게.』
춘우는 창하를 술이 취하여 거슴츠레한 눈으로 보면서 애 조가 깃든 목소리로
『나는 자네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믿지않나? 그렇지만, 오 늘 자네가 내게 한 말은 아무리 하여도 믿을 수가 없네 그 려. 자네가 오늘 이 자리에서 내 말 하나만 들어주겠나?』
『무슨 말을.』
『나는 영숙의 일을 아주 못 믿을 수도 또 아주 믿을 수도 없네. 그러니까, 나는 이것이 죄악일는지는 모르되, 영숙의 마음을 한번 시험해 볼 터이야.』
『어떻게 시험을 한단 말인가?』
『그것은 내가 성월에게 사랑을 옮긴 것처럼 하여보이겠 네. 그래서, 자기가 나를 성월의 말과 같이 참으로 사랑을 하여 그런 말을 하였다. 하면 내가 행복자인지 모르지마는, 그렇지 않고 자네 말과 같다 하면, 나는 그대로 있을 수가 없네. 또 영숙이가 참으로 청아를 위하여 부득이 나를 떠나 간다 하면, 나는 나를 희생하는 수밖에 없어. 그 점에 들어 서는 나는 절대로 양보할터일세. 나는 그 자식을 위하여 자 기의 애인에게 대한 사랑을 희생하는 그 고상한 생각과 또 는 성자(聖者)의 난행(難行)같은 행동을 저해하려하지 아니 하네. 거기에 얼마나 고통과 번민이 있는지 그것은 나의 몇 백배일터이지.』
창하는 억지로 자기의 주장을 내세울 수는 없었다. 그는 거기에 어디까지든지 후원을 하여보마 하였다. 뜨거운 손을 서로잡고 맹서하였다.
『자네의 일이면 어디까지든지 힘써보지.』
시험을 할만큼 춘우가 냉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영숙 에게 더 할수 없는 사랑을 받고, 또는 더 할수 없는 사랑을 영숙에게 줄 때에는 다른데 마음이 끌릴때가 없었으나, 자 기의 가슴이 지금 공허(空虛)함을 느낄때에 그는 어디로든지 잡아다니는데가 있으며, 그리로 기울어지기가 쉽다. 아무리 분별이 있고 이지(理智)에 강하다하드라도, 춘우의 온 몸에 는 뜨거운 피가 흐른다. 자기가 자기를 믿을 수 없는 청춘 이다.
그날 저녁부터 춘우는 집에 들어가는 것을 고만두었다. 그 리고, 설성월에게 가서 날마다 파묻혀 있다시피 하였다. 여 기에서 독자의 의혹을 풀기 위하여 한마디 말하여 둘 것은 춘우가 설성월의 집에 다닐 때에 반쯤은 마음이 끌리어 애 인처럼 대접하고, 반쯤은 순전히 기생처럼 대하였다고 하여 둔다. 설성월도 역시 춘우를 미덥고 그리우나 그 반면에는 어디까지든지 기생으로서 기생노릇을 한 일이 있다는 것을 말하여둔다.
사흘이 지내었다. 영숙은 홀로 사흘 밤을 자고 나서 창하 를 찾아왔다.
『창하씨! 어떻게 해서든지 춘우씨를 집으로 돌아오도록 권고를 해주시지 못할가요?』
하고 울면서 청을 하였다.
『내가 친구를 위하여 애는 써보죠. 그러니 책임은 질 수 가 없어요.』
하며 냉정하고도 원망하는 어조로 간단히 대답을 할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한번 만나보게만 하여주셔요.』
하는 영숙의 마음에는 몹시 후회하는 정이 생기었다.
자기가 자기의 마음을 때, 살필 결코 춘우를 내버리려 한 것은 아니요, 지금 어찌할지 몰라서 가로에서 헤매일때, 춘 우가 저렇게 타락하여 가는 것을 보고 그대로 참을수는 없 다는 의협심이 불덩이 같이 솟아올랐다.
『예! 어떻든지 한번만 만나보게만 해주실수 없을가요. 영 숙이 함께 것을 회개하고 옛날과 같이 기다린다고 좀 데려 다주셔요. 제가 춘우씨를 만나뵈옵고 모든 것을 자백하겠다 고 말씀을 하시고, 집으로 데려다 주셔요.』
졸르는 말에 창하는 어디까지 엄연한 태도로
『영숙씨가 철수의 집에 발을 들여놓지를 않는다면, 언제 든지 돌아가마고 말을 하였읍니다.』
영숙의 가슴에는 가시를 박는 것 같이 찔리는 말이다.
『누가 그런 말을 춘우씨에게다가 했어요. 제가 애아버지 에게 다닌다는 말을 누가 했어요.』『누가 한 것은 아실 것 이 없겠지요. 지금 세상에서는 춘우더러 실연자라고 하니까요.』
『실연자요?』
『예, 실연자요. 영숙씨가 춘우를 내버렸지요.』
영숙은 무서웠다. 세상이 무서운 것을 비로소 알았다. 자기 의 마음은 알지도 못하고 춘우를 실연자를 만들어준 것은 무서운 세상이다.
『그럴 리가 없지요. 저는 전과 조금도 변함이 없이 춘우 씨를 사랑합니다. 결코 변할리 없어요.』
창하의 귀에는 그 소리가 가증하게 들릴뿐이다.
『그러면, 그 증거를 분명하게 보이지를 않으시고, 세상의 의심을 살만한 행동을 하시나요? 이런 말을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마는, 친구의 부인이라는 것을 떠나서 나의 친구나 또는 누님이라는 생각으로 충고를 하는 것이니까, 어떻게 알아주지는 마셔요.』
『예, 저 역시 언제든지 오라버니와 같이 믿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창하씨의 말씀을 들어 왔어요. 또는 저를 위하여 귀찮게 군때도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세상에서 그렇게 떠든 다는 것은 오해겠죠. 어쨌든지 춘우씨를 만나지 않고서는 말씀하지 않으려고 해요.』
『춘우를 만일 영숙씨가 만나겠다고 하면, 춘우는 도리어 만나지 않으려고 애를 쓸터이지요. 춘우의 마음은 아직까지 도 영숙씨를 잊지 못하니까요. 그 사람이 지금 세상에서 말 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쉽게 타락할 사람이 아닌 것은 내가 보증을 하겠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일전에도 말한바와 같이 억지로 영숙씨를 단념하려고 애쓰는 춘우겠지요. 그러고 정 을 딴데로 옮기어 자기의 괴로움을 잊어버리려 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너무 나를 믿어주지 않는 까닭이 아닐가요?』
『아니지요. 춘우는 너무 영숙씨를 믿었지요. 너무 믿었던 까닭에 오늘에 이일이 생긴 것이지요.』
『그렇다고 하면, 춘우씨를 절대로 다시 돌아오게 하지 못 할가요.』
『그것은 영숙씨가 하시기에 있지요.』
『어떻게요?』
『어떻게요? 그것은 영숙씨가 지금이라도 그 동안에 하신 것을 분명하게 춘우에게 말씀을 하시고, 춘우에게 사죄하셔 야죠.』
『사죄요?』
영숙은 속으로 기가 막혔다. 사죄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
사죄할 만큼 내가 춘우에게 부족히 한 것이 무엇이냐. 한옆 으로 분한 생각까지 나서, 그대로 일어서 나오고 싶은 생각 까지 났으나, 그는 아서라 하고 마음을 돌려먹었다.
『사죄하죠.』
목소리를 덜렸다.
『춘우씨를 다시 돌아오시게만 하면 무슨 짓이든지 하겠습 니다. 그러니, 어떻든 만나 뵈옵게 말하여 주셔요.』
『그러면, 내가 권고를 하여보겠습니다. 그러면 댁에 가서 기다리십시오.』
『아뇨, 여기서 기다리지요. 다녀오셔요.』
창하는 춘우에게 이 말을 전하여주려고 설성월의 집으로 갔다.
춘우는 술이 몹시 취하여 설성월의 방에 누워서 잠이 들었 었다. 설성월은 마루에 나와서 하인을 데리고 무슨 일인지 하고 있었다.
창하는 누워자는 춘우를 흔들었다.
『왜 이래 잠도 못 자게.』
『나야 날세. 웬 잠을 이렇게 자나?』
『귀찮아.』
춘우는 손으로 창하를 후려친다.
『내 말 좀 듣게.』
『허 저리 가.』
『이게 웬 술을 이렇게 먹었누.』
설성월도 들어와서 흔든다.
『여보셔요. 선생님. 박선생님 오셨어요.』
『무엇야. 창하가 왔어.』
이제야 조금 정신이 든 모양이다.
『어디.』
하고 고개를 쳐들어보더니, 다시 누우며,
『웬일인가, 식전참에.』
하며 다시 씩씩하고 자려한다.
『고만 좀 일어나세 내 말을 좀 듣게.』
『무슨 말.』
『글세 일어나.』
설성월도 빽 지르는 목소리로
『글세 일어나셔요. 박선생님이 하실 말이 있다고 하시니.』
『할 말이 있거든 해. 내 귀로 들을터이니.』
『그런게 아니라 여보게.』
창하는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영숙이가 오늘 집에 왔어.』
춘우는 숨소리를 죽이고 가만이 들으며
『왜?』
『왜가 무엇야. 자네가 사흘이나 안 들어온다고 날더러 데 려다달라고.』
『나는 데려다 무엇을 해?』
『누가 아나. 울며불며 모든 것을 잘못하였다고, 자네만 만 나면 사죄를 하겠다고 하네.』
『사죄? 흥 무슨 사죄야. 제가 내게 잘못한 것이 있나? 사 죄를 받을 아무것도 나는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모두 자기가 잘못하였으니, 지난 일은 모두 용서 하고 돌아와 달라고 하데.』
설성월은 춘우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과 또는 그 행동이며 표정만 살피고 있다.
『가거든 이렇게 말이나 하여주게. 영숙과 나와는 다시 만 날 기회가 영원히 없으리라고. 그러고 철수에게로 돌아가서 행복스럽게 살기만 하면 나는 더 만족한 것이 없다고. 그러 고 춘우라는 사람은 일평생 죽을 때까지 영숙을 잊지 않겠 다는 말을 하더라고 하여주게.』
춘우는 눈을 감고 군소리하듯이 말을 하였다.
『그러나, 꼭 한번만 만나면 모든 자세한 말을 하겠다고 하니, 가보는 것도 좋지 아니한가?』
『안 될 말. 그렇게까지 어리석은 춘우는 아직 세상에 나 지를 않았다고 말하여 주게. 그동안 내게 하여준 고마운 마 음은 진정으로 감사를 한다고 그러고, 옛날과는 아주 다른 춘우가 지금 영숙을 만날 필요는 없다구 그래.』
하며 성월의 손을 잡으며,
『내게는 설성월이라는 애인이 있다고 하여주게. 나의 마 음은 시냇물 같이 설성월에게 홀렸다고 하여주게.』
하고 한참 말이 없다가,
『흥, 그러나 성월에게도 충고다. 어느 날 어느 때에 나의 마음이 다시 또 다른 곳으로 흐를는지 나도 알지 못하니까 성월 너도 아주 믿지는 말라는 말야.』
성월은 다만 코웃음 비슷한 웃음을 띠웠다.
창하는 더 권해야 쓸데없는 것을 알아채었다. 그래서 그 대답을 하여 주려고 자기 집에 있는 영숙에게로 가고, 춘우 는 다시 잠이 들었다.
창하가 간지 두서너 시간이 지나서 어떠한 사람 하나가 설 성월의 집으로 춘우를 찾아왔다. 그는 얼핏 보기에 시골 농 촌에서 농사를 하는 사람 같은데, 와서 춘우를 찾았다.
『여기 이춘우씨라고 계시죠?』
『어데서 오셨어요?』
설성월은 의아해서 주저주저하며 시원히 대답을 하지않았다.
『저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어디서요?』
『그 어른 부인에게서요.』
『부인?』
하며 편지를 달래서 앞뒤를 뒤적거려보다가.
『예. 계십니다. 그러나, 지금은 안 계신데요.』
『언제나 오시나요.』
『있다 저녁때쯤 오시겠죠.』
『그럼, 그 편지를 두었다가 드려주십시오.』
『그렇게 하셔요.』
설성월은 그 편지를 받아 들고 몹시 마음이 좋지 못했다.
일변 질투의 마음이 생기며 그 편지를 당장에 찢어버리고도 싶었다.
그러나, 다시 편지를 들여다보다가,
『이 속에 무엇이라고 씌어있누.』
뜯어서 먼첨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며 편지 든 손이 떨린다.
『아니다. 남의 편지를 뜯어보아서는 안된다는데.』
하다가도, 누가 들어오는 기색만 있으면 얼핏 그것을 감추 었다.
물김에 봉한 것을 눅이어 떼어보려고 하기도 몇 번인지 몰 랐으나, 그래도 참아 그것을 그렇게 하지는 못하였다.
그날 저녁에 설성월이 놀이에 다녀와 두시 가량해서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와 보니까, 춘우가 와서 자리를 깔고 혼곤이 잠이 들 어 잔다. 옷을 갈랑 입은 설성월은 춘우를 깨웠다.
흔들어 깨는바람에 춘우는 눈을 뜨고 치어다보더니,
『어느 틈에 왔어?』
하고 기지개를 켜다가 성월의 허리를 끼어 안으려 하니까, 성월은
『왜 이러셔요. 가만이 계셔요.』
하고 팔을 떠밀치며,
『오늘 나으리께 반가운 것을 하나 드리려고 하는데, 그것 이 무엇인지 알아 마치시면 용치.』
『무슨 반가운 것을?』
『글쎄 무엇이든지 알마 마쳐보셔요.』
『무엇을 알아마쳐. 아닌밤중에 홍두깨도 분수가 있지.』
『그러면, 그것을 드릴 텐데요. 내 청하나를 들어주실 터입 니까?』
『또 무슨 청야.』
『글쎄 들어주실테얘요?』
『청야 벌써 들어주지 않았나.』
『아니 난 싫어. 그런 소리만……』
『그럼 또 무슨 청야, 말을 해.』
『싫거든 고만두시구려. 나도 드릴 것을 드리지 않으면 고 만이지.』
『대관절 준다는 건 무엇야?』
『무엇이 무엇얘요. 당신 애인에게서 온 것이지.』
『내 애인이 또 누구람, 생트집을 잡아도 분수가 있지.』
하고 말도 하기 싫다는 듯이 돌아들어 눕는다.
『그렇게도 보기 싫으셔요? 보기 싫으시기도 하겠지. 누구 시라구, 척척 편지를 보내는 여자가 있으니까. 장하시우.』
『편지가 또 무슨 편지야. 그거 사람 미치겠네.』
『고만 두셔요.』
『무얼 고만두어?』
『성월쯤야 어디 선생님같으신 이가 눈이나 떠보실테얘요.』
『농담도 오래하면 재미 없어. 잠이나 자.』
하고 이불을 뒤집어 쓴다 설성월은 혼자 떠들다가, 춘우가 대꾸를 해주지 아니하니 까 싱거워서 설합 속에 편지를 꺼내서 머리맡에다 내던지며,
『자, 이것 좀 보셔요.』
하였다. 춘우는 무엇인가 하고 그것을 집으려하니까, 설성 원은 그것을 재빨리 다시 집으면서,
『혼자는 못 보실걸.』
하고 주지를 않는다.
『어디서 온것야. 피봉이나 잠깐 봐.』
『자요.』
하고 멀찌거니 들고서 피봉만 보인다.
춘우는 그것을 보더니, 와락 달려들어 빼앗으려하며,
『그것이 언제 왔어.』
하니까, 설성월은 다시 손에다가 움켜쥐고
『왜 이러셔요. 그렇게 쉽게요. 한번 내 손에 들어온 것인데.』
춘우와 설성월은 편지 하나를 중심으로 씨름이 시작되었다.
춘우는 빼앗으려고, 설성월은 아니 빼앗기려고, 서로 끼고 서 온 방안을 뒹굴었다. 나중에는 떠다놓은 자리끼가 엎질 러진 것도 불계하고, 서로 간질이고 꼬집고 어기고 비틀었 으나, 설성월은 눈물을 흘려가면서도 놓지 않았다.
『엥.』
춘우는 화가 났다.
『앙시기도 하지.』
하고 요우에가 쓰러지며
『그놈의 편지 안 보아도 괜찮아.』
하고 숨이 차서 펄떡거린다.
『그렇게 쉽게.』
성월은 걸레로 방바닥을 훔치며 춘우를 노려본다.
『글쎄,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 무엇을 한다는 것야?』
『남 무엇을 하든지간에 상관하실게 무엇얘요.』
『왜 상관이 안돼. 내게 오는 편지를 가지고 안 내놓으니 까 말이지.』
『누가 안 드린대요.』
『그럼.』
『나고 같이 보시잔 말얘요. 내 손으로 내가 들고 같이 보 셔요.』
『그럼 진작 그러지.』
『누가 진작 안 그랬어요. 남의 손을 모두 비틀어 놓으시구.』
분한 듯이 손을 들여다보다가
『에끼.』
하고 달려들어 춘우를 꼬집어 뜯는다.
『이게 무슨 짓야 아파. 자, 같이 봐, 같이.』
성월은 어느덧 춘우의 이불 속으로 들어가 나란히 엎드려 편지를 뜯어서 둘이 보기를 시작하였다. 이 아래 쓴 것이 그 편지의 전체이다.
당신이 나가시던 날 저는 공연히 섭섭한 생각으로 하루 종 일 울고 지냈습니다. 그랬는데 정말 그날 저녁에 당신이 돌 아오시지를 않으시지요. 혹시 어디가 약주나 잡수시고 실수 나 하시지 않으셨나 하고,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하고 기다 렸어요. 춘우씨! 사흘동안을 이때나 오시나 저때나 오시나 하고 기다리기는 하였으나, 반가운 춘우씨가 오시기는 고사 하고 춘우씨가 다른 여자에게로 마음을 옮기시고 저는 돌아 보지 않으신다는 소문을 듣고서 얼마나 제가 낙담을 하였는 지, 그 때의 저의 마음은 만척이나 높은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 같았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받는 것이 제게는 더할수 없는 행복이며, 감사할일이요, 다시 당신에게 내버림을 당한다 하더라도, 그 것은 운명이 그렇게 시키는 것이니까, 누구를 원망하고 허 물을 할 것은 없을줄 압니다.
그러나, 오늘 창하씨에게 말씀을 들으니까, 당신이 저를 의 심하시며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하시더란 말을 듣고서, 저는 눈물이 쏟아져 흐르는 얼굴로 글자가 흐려 보이지 않 는 붓을 잡고, 모든 일의 자세한 것을 말 대신 여쭈워 드리 려 하는 것입니다.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또는 장래 가 똑 같을 것입니다. 차라리 더욱 더욱 깊어가기는 할지언 정 조금이라도 빛이 여위거나 엷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에 당신에게 이와 같이 오해를 받게 된 것도 제가 당 신을 사랑하는데서 나온 일이 도리어 당신의 노여우심을 사 게 되었고, 마음을 아프게 하여드리어 그것은 무엇으로써 사함을 받아야 좋을지 저는 알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오늘 그와 같이 하시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요. 또 는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 까닭이 아니신것도 저는 압니다.
다만 죄 많은 몸이 어려서 부모를 그릇 만난 죄인지, 철모 를 제 시집을 잘 가지 못하여 남의 첩의 몸이 되어 거기에 서 죄악의 씨라고 하올는지, 청아라는 계집애 하나를 낳아 서 어머니 노릇을 하게 된것이, 오늘에 저를 참으로 사랑하 여 주시고 참으로 사람답게 알아주시는 당신까지 그렇게 괴 로우시게 하여드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두번 당신을 속였습니다. 아니지요. 두번뿐이 아닙니 다. 다시 애아버지하고 만나지 않겠다고 제가 스스로 맹세 를 하여 놓고 그것을 맹세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두번이 오며, 또는 그 두 번 죄를 짓는 것에 따라서 수없이 당신의 눈을 가리우게 하였습니다.
춘우씨! 그것이 죄인 것을 알았습니다. 당신을 속이고 청아 의 병을 위하여 애아버지에게 다니는 것이 죄인 것을 모르 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그 말을 제 입으로는 당신에게 말씀 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제가 제 가슴에다 독약 묻 은 화살을 박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또 그렇다고 어미된 마음에 청아를 잊지 않으리라고 여간 노력을 하였사 오나 그것도 저의 힘으로는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천륜 이 되어 그러한지 무정하게 어린 것을 떼어버릴 수는 없었 어요. 여기에 저는 몹시 고민하였습니다. 당신이 절더러 무 슨 근심이 있느냐고 물어보실 때마다 저는 가슴이 저리는듯 하였어요.
어머니 되랴, 남의 애인이 되랴? 저는 참으로 헤매였습니 다. 어머니가 되자면 애인을 내버려야 할터이요, 애인이 되 려면 어린것을 잊어야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된다 하 면 그것은 일평생 사랑 없는 남편 밑에서 유모와 같이 쓸쓸 한 세상을 지내야 할터이요.. 그렇지 않으면 애인을 따라야 할것이라는 생각을 할제, 어느 정도까지 동정하여 주셔야 할만한 고민을 느끼었습니다.
당신에게는 죄라 하겠지마는, 어떠한 때에는 당신을 잊자 하고 굳은 결심을 하고서 애아버지에게 다시 돌아가겠다고 승낙까지 하였다가 그날 저녁에 집에 돌아와 후회를 하고 운 일까지 있었어요.
춘우씨! 참으로 괴롭고 무서운 세상얘요. 어쩌면 좋을지 모 를 세상얘요.
당신은 저를 원망하시겠죠. 원망도 좋습니다. 또 책망하신 다 하면, 그것을 받지요. 당신이 이 괴로움을 없이하여주기 위하여 저를 죽여주신다 하면, 그것도 달게 받겠습니다.
아아, 그런데 춘우씨! 돌아오십시오. 모든 것을 단념하고 잊어버리고 다만 홀로 깨끗한 마음으로 저는 당신을 기다리 고 있습니다.
다시 효창원에서 꽃을 따며 노래하던 그때로 돌아가셔요.
그때의 그 잊을수 없는 즐거움을 지금에 다시 생각할 때에 춘우씨가 새삼스럽게 그리운 듯 합니다.
즉일 영숙 춘우는 편지를 읽다가 그대로 엎드려 울었다. 설성월도 웬 일인지 눈물이 나서 고개를 돌리었다.
『내가 잘못야.』
눈물은 베개 위에 시내처럼 흐른다.
『고만우셔요.』
한참 우도록 가만해 내버려두던 설성월은 춘우의 어깨를 흔들면서 울음을 그치라고 위로를 한다.
『내가 생각한 것이 옳지.』
춘우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었다.
『눈물이나 씻으셔요.』
설성월의 그때 감정은 자기가 영숙이가 되어서 춘우의 뜨 거운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는 것을듣는 듯이 춘우에게 동정 이 갔었다. 그는 눈물을 씻기며 어린애 어루만지듯이 어루 만지면서, 『그렇게 우실 것이 무엇얘요? 선생님께서는 다 시 옛날의 행복이 돌아오지 않았어요.』
동정은 하면서도, 그의 마음은 다시 질투의 불길이 타올라 오기 시작하여 말하는 어조마다 비꼬아 말을 한다.
『선생님이 지금은 눈물을 흘리실 때가 아네요. 지금이라 도 기다리고 계신 영숙씨에게로 가시지요.』
춘우는 설성월의 이 말을 듣고 속으로 비웃었다.
『내가 다시 영숙에게로 가?』
『그럼요.』
『아니지 가지 못하지.』
하고 춘우는 다시 눈물이 두 눈에 핑그르 돈다.
『왜 못하셔요.』
설성월은 거짓말이라는 듯이 춘우를 본다.
『그것은 성월이는 모를것이야. 어떠한 일이 있든지 나는 영숙에게로는 다시 가지를 않을 터이니까.』
『거짓말 마셔요. 왜 가시지를 않으셔요. 그렇게까지 모든 것을 자백하고, 또 그렇게까지 결심을 하고 있는이에게.』
『안 가지. 내가 그만큼 영숙을 못 믿거나 또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영숙이가 나를 사랑하는 까닭에 말을 하 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나도 영숙을 사랑하므로 가지 않는 것이야.』
『그렇지만, 선생님이 참으로 진정으로 사랑을 하신다 하 면, 남이 가지 마시라고 해도 가실터인데, 일부러 선생님 자 신이 안 가신다는 것은 어디까지든지 선생님 마음 가운데 영숙씨를 사랑하시는 마음이 부족하신 까닭이시겠지요.』
춘우는 고개를 내저으며
『그렇게 말을 하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을 할는지도 모르 지. 그렇지만, 내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는 것을 나는 어떠한 경우에 슬퍼하는 때도 있어. 벌써 나의 마음은 그렇 게 열정적이 아니요, 그렇게 단조하지가 않으니까.』
『그렇지만, 가보셔야죠. 가보시지 않고 어떻게 합니까. 젊 은 부인이 혼자 계실 터인데.』
『영숙의 몸을 보호할 사람은 나외에 또 있으니까. 그것이 걱정할 것이 없지. 그러나, 마음을 보호하여 주는 사람은 아 마 일평생 없을터이지. 그의 마음의 성벽은 이미 무너졌으 니까.』
설성월은 춘우의 이 말을 믿을 수가 없기도 하고, 또 한편 으로는 춘우가 영숙에게 향하는 정이 벌써 식어버렸는지도 알수가 없어서 춘우의 마음을 자세히 알아보려고 애를쓴다.
『그러면, 장차 어떻게 하실터얘요?』
춘우는 이 말을 듣고나서,
『장차? 장차는 성월이허고 결혼이나 하고 살까?』
하고 실없는 말이라는 의미인지 씽긋 웃었다.
설성월은 속마음으로 그렇게 되면, 자기에게는 만족한 일 이어서 독으로는 좋았으나, 기생이나 그와 같은 사회에 있 는 여자들이 거의 공통으로 가진 자포자기와 또는 동경할만 한 단념의 관념에서 나오는 말로
『피 듣기 싫어요.』
하며, 저도 웃음에 붙여버린다는 듯이 말대꾸도 하지 않으 려한다. 그러나, 또 다시 말문이 열리며
『정말 어떻게 하실 터얘요. 아주 영숙씨허고는 헤지실터 입니까?』
하고 지근덕거린다.
『그렇다니까 그러네. 일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지낼 마음야.』
『듣기 싫어요. 어디 두고 보셔요. 영숙씨와 만나지 않으신 다는 말도 거짓말이요, 결혼하지 않는다는 것도 거짓말얘요.』
어느 틈에 닭이 울더니, 두 사람은 눈 위에 잠이 내리눌리 어 어느덧 잠이 들었다. 춘우는 영숙과 만나매, 그 편지를 한일도 없고 또는 영영 자기를 내버린 것을 속 못채리고 찾 아가서 영숙의 냉대에 받고 분한 마음에 영숙을 죽이고 자 기가 죽으려고 덤비려하니까, 그 뒤에서 철수가 나타나서 사냥총으로 자기의 뒤를 향하여 놓으려하는 것을 어쩐 일인 지 설성월이가 난데없이 뛰어나와 그것을 가로막다가 가슴 을 맞고, 그대로 쓰러지는 바람에 깜짝 놀라 깨니, 그것이 꿈인 것을 알고 옆을 보니까, 성월이가 머리를 허트린채 곤 하게 자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가슴을 문질러 내려앉히 고 날이 밝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