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볕이 머리맡 창에 금빛 같이 쬐었다. 춘우가 다시 눈 을 뜰 때에는 벌써 마루위에 상보는 소리가 들리면서, 아침 공기를 울리는 신선한 소리로
『어서 일어나시우! 공일이라, 이렇게 늦도록 주무시우.』
하는 영숙의 깨우는 소리에 그는 비로소 기지개를 켰다.
『벌써 이렇게 들었나.』
하품을 한 뒤에 이불을 걷어 젖히고,
『세숫물 좀 놓우.』
두 팔을 걷은 후에 마루로 세수 수건을 걷어들고 나왔다.
앞 뜰 푸른 풀 위에는 아침 이슬이 진주 같이 어리어 햇빛 에 눈동자 같이 반짝거리다가. 다시 풀 잎 한복판을 대구루 굴러서 땅 위에 떨어지기도 하고, 밤새도록 이슬에 젖은 흙 의 구수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모란과 작약은 죽었던 옛 가지와 옛뿌리에서 새로운 삯이 뾰루퉁하게 솟아나고, 채송화 꽃은 입을 벌인 듯이 노랗고 빨갛다.
멀리서 늦은 밭을 가는 소가 메인 쟁기 소리를 따라 늙은 농부의 어디엇 소리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한다. 양지쪽인 마루에 놓여있는 세숫물은 햇빛에 비치어 오색 무지개가 서 며, 그것이 또 다시 웅멍줄멍하여진다.
부엌에서는 뜸들이는 밥이 솥 속에서 소리 없이 김만 내 고, 영숙은 부엌바닥을 수수비로 정성껏 쓸어서 아궁이에 넣는다.
춘우는 어제 저녁에 쓸쓸하던 마음은 어느덧 사라지고, 즐 겁고 청신한 마음이 가슴에 찼다 넘치는 듯 하였다.
『아까요?』
영숙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귀여운 웃음을 띠우고 춘우 앞 으로 가까이 가며,
『나물장수가 들어왔길래 싱검초나물을 좀 샀더니 퍽 싸요.』
하며, 퍽도 신기한 것처럼 말을 하더니,
『그래서 그것을 조금 묻혔지요.』
춘우의 귀에는 그리 신기롭지 않지만, 영숙의 뜻을 받아주 느라고,
『얼마나 샀는데, 그것 좋은 것 샀구려. 내가 퍽 좋아하는 것인데, 그러나 저러나 오늘 아침 반찬이 무엇이 좋은 것 있소?』
『어저께 사오신 고기가 좀 남았길래, 그것을 지졌지요.』
『그것만 하면 고만이지, 더 잘 먹을수 있소. 우리 살림 에……』
하고 수건질을 하니까, 영숙은 대야의 물을 갖다가 내버리 더니,
『오늘은 아무데도 가지 않으실터이요?』
『글세, 나는 집이나 보지.』
『집이나 보시다뇨?』
하는 대답을 할 때 영숙의 마음은 기뻤다.
옳지, 날더러 청아를 보러 어머니에게로 가라는 말이로구 나 할 때, 춘우가 고마운 동시에 미듬스럽고 또는 사랑스러 운 동시 어젯 저녁에 성미를 거스리는 것이 후회가 났다.
『오늘 어디를 가면서 그러우.』
하며, 춘우는 「가거라」하고직접 말을 하지 않지마는, 승 낙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말로 영숙에게 가라는 뜻을 보였다.
『그럼, 혼자 계시기 심심하지도 않으시겠어요?』
『무얼, 오늘이 일요일니까 창하도 나올 테니까, 같이 이야 기나 하고 놀지. 점심이나 많이 만들어놓고 가구려.』
『점심야 염려 없어요. 그렇지만, 그 어른이 오시면 또 약 주 잡숫자고 하시게.』
『내가 술 끊은줄 아니까, 이제는 먹자고 그러지를 않아.
일전에도 같이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날더러 술을 먹지 말 라고 제가 먼첨 그러던데……』
『그이는 사리를 짐작하고, 또 무던한이니까, 조금 믿을 수 가 있지만, 그래도 어떤 때 객증이나 나면…… 나는 사내들 이 왜 술을 먹는지 아무리해도 모르겠어.』
『다 먹는것도 까닭이 있어 먹는 것이겠지. 공연히 먹을라구.』
『까닭이 무슨 까닭이람.』
『영숙은 아직도 그 까닭을 몰라.』
아침밥을 두 사람은 재미 있게 먹었다. 영숙이 상을 대강 대강 치워놓고 옷을 입고 나섰을 때 춘우를 향하여
『얼핏 다녀 올 것이니, 집 잘 보고 계셔요.』
하고 점심밥은 어디 있고 반찬은 어떻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일러주었다.
『몇시쯤해서 오료.』
춘우는 나가는 영숙을 보며 물어보았다.
『글세요. 저녁 안에 오지요. 와서 저녁을 해야 할 것이 아 녜요.』
『그럼 얼핏 다녀 오오.』
영숙은 다리가 땅에 닿지 않게 줄달음질을 하다시피 자기 어머니 집을 향하여간다. 전차 정류장까지 오는데 몇번이나 발을 헛디디어 놓았는지도 몰랐다.
동대문을 향하여가는 전차를 바꾸어 타고 남대문을 지나갈 때, 그는 몹시 흥분이 되었었다.
몇달 전에 자기 어머니에게 최후의 선고를 하고 나올 때에 는, 당초에 어머니를 다시 만나지 않으리라 하였던것이, 오 늘에 자기 어머니를 보러 간다고 할 때, 그의 마음은 기쁘 고 반가운 중에도 또는 부끄럽고 거북하였다.
『어머니를 만나뵈옵는다.』
얼마나 좋은 일이랴. 자기를 길러준 어머니, 자기의 모든 뒤치다꺼리를 하여주던 어머니 자기의 잘못을 모두 용서하 고 가리워주던 어머니, 그리고 모든 화풀이와 핀잔을 달게 받던 어머니를 뵈오러가는 영숙은 또 다시 그의 혈맥에 윤 기(倫紀)의 뜨거운 피가 흐르기를 시작하였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하셨으랴.』
이 소리를 혼자 속으로 중얼거릴 때, 그는 감격과 인정에 서 나오는 뜨거운 눈물이 두 눈에서 핑그르 돌았다.
그러고, 또 다시 철모르는것이라고 그대로 떼버리고 온 청 아를 생각하여 보았다. 그때 자기가 자기 품에 앉고서 젖을 먹일 때에는 귀찮은 생각도 많이 났었고, 또는 귀여운 생각 도 적지 않아, 몹시 굴기도 하고, 울기도 많이 하였으며 어 떤 때는 예쁘고 귀여운 김에 깨물어 먹고 싶을만치 사랑스 러운 때도 많아서, 모든 것이 으레 있을 수 있는 일이요, 그 러할 일이려니 하였던 것이, 지금 생각을 하니, 그 모든 것 은 한낱 꿈으로 사라지고, 다만 남아 있는 것은 이미 없는 자식이 불쌍하다는 것뿐이었다.
전차가 의학전문학교(醫學專門學校) 앞 정류장에 서자, 영 숙은 전차에서 내려 연동 골목으로 들어 경신학교와 공업전 문학교 의학전문학교를 다 지나서 골목 하나를 이리 돌고 저리 돌더니, 돌다리 건너 어떠한 초가집으로 들어섰다. 대 문간 행랑에는 쟁가비와 대접, 숟가락 나부랭이가 어수선하 게 허트러져 있고, 마당을 들어서 건너방을 보자, 옹숱 하나 가 걸린위에 바가지를 엎어 놓았는데, 뚫어진 창구멍으로다 눈 하나가 내다본다.
『청아 있니!』
부르는 말소리는 주저하는 중에도 반가움이 넘치었다.
『그 누구!』
하며 방미닫이가 열리며, 안 경쓴 두 눈이 쑥 내다보더니,
『이게 누구냐?』
하며 영숙의 어머니는 곤두박질치듯 뛰어나왔다. 영숙도 따라서 달려들며,
『어머니!』
하고 모녀는 두 손을 맞잡고 어쩔 줄을 몰랐다.
『어서 오너라. 그러지 않아도 혹시 오지나 않나 하고 기 다렸지, 이리 올라와.』
『청아가 앓는다죠?』
하고, 방으로 들어가니, 아랫목에 청아를 포대기로 덮어서 누였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옛날의 청아같이 토실토실한 뺨이라든가 몽글몽글한 손, 나팔나팔하는 머리, 반짝반짝하 는 눈, 새빨간 입술은 그 그림자도 볼 수 없고 가시덤불 같 았다. 땀에 젖어 앙상한 이마에 달라붙어 있고, 두 뺨은 깎 고 저며낸 듯이 수척하였으며, 입술은 지지리 타고 하다 못 해 푸르며 눈은 죽은 사람처럼 쑥 들어갔는데, 다만 꽁꽁하 고 안간힘을 쓰는 소리가 아직까지 살아 있다는 것을 말하 고 있다.
『좀 봐라, 그렇단다.』
영숙은
『청아야, 청아야, 엄마 왔다. 엄마, 응 청아야.』
하고 불러보았으나, 그는 들리지 않는 듯이 대답이 없이 다만 안간힘만 쓸뿐이다.
『청아야, 엄마!』
또 다시 불러보다가, 대답을 하지 아니하자, 하는수 없이 청아를 끌어 안아보니, 전에는 묵직하게 무슨 금덩어리나 안은 듯 하던 것이 지금은 백지장을 드는것 보다 더 가볍다.
『며칠이나 되었어요.』
『며칠이 무엇이냐. 벌써 달포가 넘었는데, 처음에는 감기 처럼 몸이 덥고 기침을 하길래 나는 그저 감기로 알았더니, 비찍 돋히는데, 하는 수가 있더냐. 약국에 가서 이약 저약 이야기만 하고 먹이니, 그것이 어디 맞아주어야지. 제 아비 에게 편지를 해도 그저 오늘 올라 간다 내일 올라간다 하는 것이 한달을 넘어 끈더구나. 그래 며칠 전에 왔다고 하기에 찾아가 보고 그런 말을 하니까, 돈 십원을 주면서 약이나 지어다 먹이라고 하니, 약은 아무리 먹어도 조금도 풀리는 기색이 보이지 않고 그저 저 모양대로 있으니, 죽거나 살거 나 그대로 내버려둘 수도 없고 앓을적에는 들려다보지도 않 다가, 만일 무슨 일이 있으면 청원은 나혼자 들을 터이니, 너를 부른 것도 내 성미에 여간해서 안 부를터이지만, 너도 생각을 해보아라. 네 자식 네가 죽이는 것은 아무 말도 안 하겠지만, 내가 애꿎은 소리를 들을게 무어 있으랴 해서 너 를 불러온것이니까, 네 생각대로 해라. 죽이려거든 죽이고 살리려거든 살리고……』
한참 말을 하다가, 끝에는 화를 낸다. 영숙은 다만 다소곳 이 듣고만 있다가
『죽기야 할려고요!』
하며, 다시 청아를 토닥토닥 두두려 주었을 때 청아는 다 시 꼼지락꼼지락하더니,
『엄마! 엄마!』
하고 헛소리를 한다.
『왜! 엄마 여기있다. 자 청아야, 엄마 엄마.』
하고 얼르고 불러보고 흔들어 보았으나, 여전히 말이 없다.
청아는 엄마가 자기를 안고 있는 줄도 알지 못하고, 참말로 부르는지 거짓말도 부르는지 엄마를 부르기는 하나 대답은 할줄 모른다.
영숙의 가슴은 터지는 듯 하였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비오듯 하며,
『자 청아야, 너의 엄마가 여기 왔다. 』
하고 흐느끼어 가며 울 때, 청아는 너는 나를 내버린 어머 니니까 나의 어머니가 아니라는 듯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 아주었다. 영숙은 순결하고 흠 없는 어린 청아에게 무슨 죄 나 지은 듯이 고개를 틀어박고 뺨을 대이고 입을 맞추고 미 친사람처럼 울었다. 뜨거운 눈물이 떨어져 어린애의 얼굴에 폭포같이 흐르도록 울었으나, 그 눈물만을 가지고, 자기 어 머니가 자기를 내버린 허물은 용서할 수가 없다는듯이 아무 말도 없이 안간힘만 쓰면서 자고 있을뿐이다.
영숙의 어머니도 눈물을 떨어뜨리며 그 옆에 앉아서, 치마 끈으로 떨어지는 눈물을 씻고 있다. 조용한 방안은 슬픈 빛 으로 가득하여 어두운 빛은 그방을 휩싸고 도는듯 했다.
영숙은 속마음으로 청아에게
『모든 것을 용서하여다구. 내가 모두 잘못했다.』
하고 빌고싶었다. 그리고,
『너만 몸이 다시 성하여 즐겁게, 아무 근심없이 잘 자라 는것을 보기만 하면 나는 모든것을 내버려서 네게 바치마.』
하고 싶었었다.
아주 순결하고 아주 정한 모녀의 애정이 그의 가슴에 찼다 가 넘칠 때, 그는 눈물을 흘리는 그 가운데에 또 다시 없는 희열을 느끼었다.
『그렇다, 모든 것을 버리자. 나는 다만 청아 하나를 위하 여 살아보자. 내가 청아를 위하여 없어져야 한다면 없어지 기라도 하자.』
하는 것은 그때 영숙의 영혼 속에서 부르짖는 결심의 부르 짖음이었다. 그는 춘우에게 대하여서도 이와 같은 절대의 결심을 하여본 일이 아직 없었다.
그는 눈물어린 눈을 바로 들고서 또 다시 생각하여 보았다.
그는 춘우와 정이 들자, 그에게는 아무것도 꺼리울것이 없 이 자유로운 생애를 일평생 누릴수가 있으리라고 생각한지 가 몇달이 지나지 못하여, 그에게는 또 다시 사람으로서는 참아 볼 수 없으며 참아 당할 수 없는 비참한 사실이 어느 덧 자기몸에 얽히인것을 오늘 이 자리에서 찾아내게 되어 의아하고 놀라움을 견딜 수가 없었다.
행복스러운 그 이면에는 그 행복스러운것만치 불행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였었다. 자기가 오늘에 모든 부자유한것과 허위와 또는 매음적(賣淫的) 안일한 생활을 일조에 벗어던지 고 자유롭고 깨끗하고 신선한 생활을 하여가는줄 알았더니, 벌써 자기가 알지도 못하고, 의식(意識)하기 전에 자기 신변 에는 장차 올 비극의 준비를 하고 있는 청아가 있었던 것이다.
춘우는 그리웠다. 잊을 수가 없었다. 잊는다고 하는것을 한 번도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영숙은 오늘 청아를 자 기 무릎에 다시 안고 죽고 사는 지경에서 배회하는것을 볼 때 청아를 자기 손에 넣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청아는 자기의 딸이 아니요 자기의 것이 아니다.
청아는 벌써 자기와 떨어진지가 오래이다. 자기가 스스로 청아를 내버린지가 오래이다. 내버릴 때에도 어찌 섭섭함이 없었으랴 마는, 그래도 가장 큰 힘으로 자기를 잡아가는 힘 이 최고조(最高潮)에 이르렀을 그때에는 능히 청아를 버릴 수가 있었지만, 오늘의 청아는 다시 버릴 수가 없었다. 사람 이 죽는다는 엄연한 사실 아래 섰을 때에, 모든 세상의 죄 악은 사라지고, 신성한 인간의 본능과 양심이 동하는 것이다.
버림을 당한 청아가 자기를 내버린 어머니를 부르며 신음 할 때, 비로소 영숙의 피속에서 꿈틀거리는 모성(母性)의 사 랑이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청아를 자기 가슴에다가 꼭 끼어 안아보았다. 조금 잠이 들어서 쌕쌕 콧소리를 하는 그의 작은 몸이 자기 흉곽 (胸廓)을 누르고 그 속에서 팔딱팔딱 뛰는 심장을 누를 때,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감정을 한꺼번에 짜내여 절 대한 힘이 다시 나는듯 하였다. 마디마디와 끝과 끝에 그 힘이 차지 않는 곳이 없으며, 찌르지 않는데가 없는것같았다.
눈물이 겨우 그치고, 영숙과 영숙 어머니가 서로 마주 앉 을 때, 영숙의 어머니는,
『그런데, 애가 저 모양이 되었는데, 애아버지는 한번 들여 다보지를 아니하니 어떻게하니!』
영숙은 자기 전 남편 철수를 박정한 사람이라고 하지는 못 하였다. 그에게도 그만한 가슴 아픈 일과 또는 그만한 비애 번민이 있을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하필 남을 청원할 것이 무엇이랴. 다만 몇해라도 같이 살던 그를 원수로 알것 은 아니다.
『오지 않으면 어때요.』
『어떻다니, 의원 한번도 보이지 아니하고 생사람을 고대 로 죽인단 말이냐?』
『저도 오고 싶지는 않겠지요.』
할 때, 영숙은 싱거운 웃음을 웃었다.
『글세, 오고싶든 오고 싶지 않든 말이다. 사람이 죽고 산 다는데 모르는 체하니, 그런 일이 어디 있니.』
『저도 생각이 있으면 와보겠지요.』
『어느 천년에 사람이 다 죽은 뒤에 말야. 대관절 내가 송 구하고 맘이 조려서 못살겠다.』
『그러면 내가 갖다가 병구원을 할게. 어머니는 아주 염려 마시구려.』
『네가 갖다가? 얘, 말은 좋다마는 누가 남의 자식 좋다구 한다드냐. 더구나 다 죽어가는 것을!』
이 말에 영숙은 아무 말이 없었다. 당연한 말이다. 춘우가 비록 나는 사랑한다 할지라도 철수의 자식, 자기의 원수의 자식을 갖다가 같이 죽는 꼴이든지 사는 꼴이든지 보자고 할런지가 의문이었다. 춘우가 그렇게까지 성인은 아닐 것이다.
영숙 어머니는 또 다시
『그러고, 네가 왔다갔다는 말만 들어도 천길 만길 뛸터인 데, 거기다가 딸을 찾아갔다고 해보아라. 당장에 무슨 변이 나고 말 것이니.』
『그러면, 아이가 죽어도 모르고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을 어떻게 해요. 죽으면 살려놓을 재주가 있답디까?』
『사람의 맘이 어디 그래야지. 제 고집만 세우고 제 욕심 만 채우면 고만이지. 제 자식 제가 죽이든지 살리든지 맘대 로 한다면 어떻게 하니?』
『무엇요?』
영숙은 소리를 질렀다 .그때 그 마음 속에서는 불같은 덩 어리가 올라오며,
『뉘자식애요? 저만 자식이고 내게는 자식이 못된답디까.
낳기는 누가 낳고 기르기는 누가 길렀는데요.』
하며 혼자 화가 나서 날뛴다.
『압다, 그렇게 소리 지를 것야 무엇있니? 내가 무엇이라 고 했니? 서로 의론하는 말이지!』
영숙 어머니는 한참 생각을 하더니,
『그러나 저러나 저것을 살려놓고 보아야지, 잘 태어났든 지 못 태어났든지 살은 인생을 죽으라고야 할 수 있니? 그 러니, 좀 어려운 말이다만 네가 내 말을 좀 들어라.』
『무슨 말을요.』
『그래도, 몇해간 살던 정리도 있고 또 그 사람이 그렇게 옹졸한 사람이 아니니, 네가 좀 가서 사정 이야기를 해보아 라. 내가 가는 것보다 네가 가면 들을 터이니……』
『내가 가요! 어머니는 나중에 별소리를 다하시는구려. 내 가 또 애아버지를 만나 보아요! 나는 싫소.』
『싫으면 어떻게 하니? 내가 널더러 다시 살라는것도 아니 오, 가서 어린 것을 위하여 말을 좀 하라는데, 그렇게 못 가 겠다고 잡아뗄게 뭐냐.』
『글쎄, 지금 무슨 낯으로 또 다시 본단 말이오? 더구나 내가 내 발로 먼저 찾아가는것을.』
『그러면, 네가 가기 싫어서 가지를 않는다 하면 어린것은 누가 구해줄 것같으냐. 그야 당초에 보지도 않으랴 하던 사 람을 또 다시 찾아가서 귀찮은 말하는 것이 누군들 하고 싶 어 하는 것이겠니만, 그렇다고 잠깐 창피한 것--창피할 것 도 없지마는--자기가 싫다고 가지 않으면 그 가기 싫은것 까닭에 생 목숨 하나를 끊게 한단 말이냐!』
영숙의 어머니는 영숙을 권고하기에 힘을 들인다. 혹은 위 협도 하고, 타이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였다.
『자, 그러지 말고 가보아라. 네가 너 먹을 돈이나 양식을 다시 대달라는것도 아니요, 제 자식 제가 약 쓰고 살리라는 말하러 가는 것이 무엇이 그리 싫단말이냐? 이 악한 사람은 재판질까지 해서 자식을 찾느니 양육비를 청구하느니 한다 더라. 그러지 말고 지금이라도 가서 보고 사정의 이야기를 하여보아라.』
『그것야 그렇지만.』
『어쨌단 말이냐. 나는 고집할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없을 것 같다. 그러지 말고 지금이라도 가보아라.』
『가서 무엇이라고 한단 말요?』
『무얼 무엇이라고 하니? 참 딱한 애도 많다. 어린애가 명 재경각에 이르렀으니 어린애를 데려가든지 그렇지 않으면 의원을 대서 고치든지, 양단간에 어떻게든지 하라고 하지.』
『데려가라고요?』
영숙은 이 말을 하면서, 눈이 뚱그래지고, 어린애를 다시 더 힘껏 끼어안았다. 마치 당장에 자기 품에서 어린애를 누 가 빼앗아가려고 하는것 같이 그리고 가슴을 무엇으로 꽉 찌리는 듯이 선듯하여지면서 죽어도 철수에게 청아는 주지 않겠다는 결심이 그 순간에 번개불 같이 일어났다.
『줄 수는 없어요.』
하며 어머니를 쏘는 듯이 바라볼 때 어머니는 속마음으로 코웃음을 치며 무슨 승리의 만족을 느끼는 듯 하였다. 네가 청아를 내버리고 간지가 단 몇 달이 못되어, 또 다시 청아 에게로 돌아올줄은 나도 벌써 짐작해두었었지마는, 만일 네 가 청아에게로 돌아오려면은, 또 다시 철수에게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되리라는 생각을 하고서, 시덥지 않는 콧대답으로
『그러면 어떻게 한단 말이냐?』
『무얼 어떻게 해요. 청아는 내가 데러갈테얘요.』
『무엇야! 네가 데려가?』
『예, 제가 갔다 죽이든지 살리든지 할 터에요.』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하란 말이냐.』
이말을 듣고서 영숙은 답답하였다.
『청아를 네가 데려가면 네가 나 먹을 것을 주어야 할것이 요, 나 먹을것을 주지 못할것이요, 나 먹을것을 주지 못할것 같으면 청아는 데려가지를 못한다. 나도 몸이나 늙지 않았 으면, 그것야 어떻게든지 남의 집 드나 들어서라도 하루 밥 셋끼야 못 얻어먹겠니마는 지금 같아서는 나는 달리 무슨 도리가 없지않으냐, 너도 어미를 어미로 생각을 하면, 그런 생각 저런 생각을 다 해주어야 할 것이 아니냐.』
영숙의 어머니 마음 속에서는 새로이 어떠한 계획의 싹이 솟아났다. 영숙이 청아를 참아 놓지 못하는것을 볼 때, 그에 게서는 야심 하나가 생기기를 시작하였다. 영숙이 청아를 가운데에다 두고서 다시 철수에게로 돌아간다 하면, 옛날의 호화로움과 옛날의 안일한 생활이 다시 자기에게까지 돌아 오리라. 그리하여 영영 춘우가 손을 다시 끊게하는 무슨 계 략을 생각하기 시작하였으니, 그것은 결코 자기의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일도 아니었으나, 영숙의 행복과 청아의 행 복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행복을 돈에다가 결착 시킬줄 밖에 모르는 그는 그것이 오히려 세상에 살아가는 첩경으로 생각함이다.
영숙은 한참동안 아무 말을 못하였다. 그에게는 만가지 계 교가 궁하였던것이다. 어찌할 도리가 얼른 눈앞에 생각이 돌지 않았던 것이다.
영숙 어머니는 다시 말을 이어
『그리고, 네가 청아를 데리고 간다 하나, 너는 데려가고싶 어도 춘우가 너의 자식까지 받고 싶어할리는 만무하지 아니 하냐? 설령 춘우가 너를 위하는 맘으로 청아를 받는다고하 자, 그러면 춘우나 네게 무슨 그리 넉넉한 돈이 있어서 어 린것을 구하겠니? 만일 청아가 무슨 불행한 일만 있을 것 같으면, 그때에 그 청원은 누구에게 돌아갈듯싶으냐? 그러 지말고, 지금이라도 애아버지에게로 가서, 어떻게 처치를 하 여달라고 하여 보아라. 그저 내 말이 옳으니라 범연할 말이 아니야.』
영숙의 마음은 괴로웠다. 이 갈래 저 갈래로 사방에서 자 기몸을 찢는듯 하였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럴수도 없었다.
영숙은 다시 춘우의 마음을 헤어보았다. 춘우가 진정으로 나를 사랑한다. 그러면 진정으로 사랑하는 나의 딸을 자기 도 또한 사랑하여주어야 할 것이다. 물론 사랑할것이다. 내 가 사랑하는 청아를 춘우도 사랑하여 주어야 할것이다라고 생각해 보기도 하다가, 다시 어제 저녁에 자기가 어린애를 보러 가겠다고 할때에 춘우의 기색이 좋지 못하던것을 본것 을 생각하자 다시 낙망이된다. 자기가 자기 마음을 헤어보 든지 또는 세상 사람의 적지 않은 실례를 들어보더라도, 데 리고 들어온 자식이나, 그렇지 않으면 전실소생을 그렇게 사랑까지 하는 사람은 없을것 같았다. 다만 의리로 하는 수 없이 부모니 자식이니 하고 ,지나기는 지나지 마는, 항상 질 투의 미워함이 가슴속에 있어서 그것을 제지하느라고 적지 않은 노심과 괴로운 마음으로 지나가게 되는것이 사실인것 을 생각하면, 자기가 자기를 위하여 청아를 데려다가 춘우 의 마음을 거북하고 괴롭게 할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거의 죽음이 임박한 불쌍한 청아를 내버려두고, 그대로 일어서 늙은 어머니에게 무한한 신고를 남겨주는것 도 어머니와 자기, 자기와 청아의 관계를 보아서 인정상으 로라도 차마 할수는없는 일이요, 그렇다고 다시 철수에게 내주기도 싫었다.
적지않은 번민으로 얼마를 앉아있다가 영숙의 마음속에서 는 결심이 생기었다.
그래도, 나는 이것을 의논할 사람은 춘우밖에 없다. 가장 자기의 모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호의적으로 의논하고, 또는 지도하여 줄 사람은 춘우가 그 중에 제일 믿음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렇다, 춘우가 듣지를 않는다 하더라도 한번 의논은 하 여 보리라. 그래서 안 들어주면은 그만이지, 만일 들어주지 를 않는다 하면은 그때는 애아버지에게 담판을 가리라.』
이렇게 맘먹은 영숙은 어머니를 대하여
『그러면, 나는 우선 집에 가서 춘우에게 그 이야기를 하 여줄터이오. 그리하고 들으면 고만이지만, 만일 듣지 않거든 애아버지에게라도 가서!』
영숙 어머니는 코웃음을 치면서,
『흥, 어림없는 소리도 하고 앉았다. 내가 사내가 되어도 어붓자식은 안 데려들어 오겠다. 거기다가 성하지도 않고 저렇게 거의 죽게 된것을 어디 가서 말을 얼마든지 해봐라 마는, 될성스럽지 않다. 』
하고 빈정거리며,
『그럼, 저렇게 잊지 못할 자식을 왜 내버리고 갔더냐. 내 버리고 딴 서방 따라갈 적은 언제고, 지금 와서 못 놓겠다 는 것은 언제야.』
영숙은 공연히 울분이 생기며, 속에서 반역할 마음이 일어 났다.
『내가 딴 서방을 했거나 화냥년의 짓을 했거나 어머니가 지금 와서 자꾸 되거퍼 말할 것이 무엇이요. 그러고, 내 딸 내가 찾아간다는데 누가 뭐라고 해요. 나는 죽어도 철수에 게는.』 하고 얼굴이 파랬다 붉었다 하며, 톡톡 쏘는 포독한 소리로 말대꾸를 한다.
『네 자식이냐. 네가 데려간다구? 말은 좋다. 네가 아무리 내자식 내 자식해도 아마 네 맘대로는 데려지를 못하리라.
어디 재주 이떻든 데려가보렴.』
『왜 못 대려가요. 누가 못 데려가게 해요. 못 데려가게 할 놈이 누구얘요.』
『얘, 이러다가는 욕하기 쉽겠다. 글쎄 생각을 해봐라. 그 게 낳기는 네가 낳았더라도 씨는 누구집 씬데 그러니? 나중 에 애아버지가 와서 자식을 내놓으라 하면, 네가 무엇이라 고 할 터이냐? 그것을 생각해봐야지. 그래, 내버리는 것이나 데려가는 것이나 모두 네 맘대로 해? 얘 싹 상했다. 그렇게 세상 일이 쉬우면 나는 벌써 쌍가마라도 탔겠다. 공연히 용 렬한 소리 말고 내 말대로 해.』
『다 듣기 싫어요. 나는 나 하고싶은대로 할 터이니, 내가 청아를 못 데려가면 내가 죽고 제가 죽는한이 있드라도 무 슨 요정을 내고야 말터이니……』
『말야 무슨 말을 못해! 어디 죽거나 살거나 네 맘대로 해 보기는 해라마는 좀 어려울라.』
하고, 담뱃대에 담배를 피어뭘고 말이 없이 두 눈만 끔벅 한다.
영숙은 벌떡 일어나면서,
『자, 다녀올터이니, 그런줄 아시우. 있다래도 어린애를 데 리러 올 터이니.』
하며 문을 연다. 영숙 어머니는 일어서려하지도 않고,
『흥, 허락을 맡으러 가는구나. 허락을 맡아오나 보자.』
하고, 영숙의 뒷그림자만 치어다본다. 영숙은 신을 신고 문 밖으로 나가버리었다. 벌써 세 시간 넘어 네시가 되어간다.
그는 다시 전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여갔다.
영숙이가 자기 집에 돌아왔을 때는 춘우와 창하가 반가이 맞아주었다.
『벌써 다녀오?』
하고, 춘우는 이제는 영숙의 일이 끝났으려니 하는듯이 말 한마디를 던지고 창하와 이야기를 하였다.
영숙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머뭇머뭇하여 마루에 앉으면서,
『언제 오셨어요.』
하고 창하에게 인사를 하니까, 창하는 그 인사를 받아서,
『예, 벌써 왔습니다. 그러나, 청아가 대단히 앓는대죠?』
이 말을 들을 때, 영숙의 심장은 공연히 울렁울렁하였다.
자기가 어머니집에서 나올 때에는 춘우에게 청아를 데려오 자고 눈 딱 감고 말을 하려던것이, 지금 춘우를 앞에다 앉 쳐놓고 보매, 어쩐지 춘우는 벌써 자기가 말하려는 것을 미 리 알고 앉았는것같고, 또 그의 말이없이 다문 입이 당초에 그런 말에 대답을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한 입 같았었다. 그 는 가까스로
『대단하다 뿐얘요. 아마 죽을가봐요?』
하고, 까만 눈썹을 아래로 깔적에는 애수(哀愁)의 빛이 온 얼굴에 가득히 찼다.
『어떻게 어디를 앓게.』
춘우는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몰라요. 내가 가도 알아보지도 못하고, 자꾸 엄마만 부르 고 안간힘만 쓰는데 참아 볼 수가 없게 되었어요.』
『의사가 무슨 병이라고 하지도 않는단 말이요.』
『의사요? 의사가 다 무엇이오. 여태까지 약 한번을 변변 히 쓰지를 못하였다는데.』
창하가 이 말을 듣더니, 눈을 뚱그렇게 뜨며,
『그게 웬일일까요. 애아버지도 서울에 와있는데.』
『제가 압니까. 한번 들여다보지도 않았다는데요.』
『그거 야단났군. 오늘이라도 가서 권고를 해야 하겠군. 사 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는데 그게 무슨 짓이람.』
영숙은 기침을 한번 하고 온 전신에 힘을 주어 결심을 하 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요, 두 분께서 다 들어주셔요. 저는 청아를 이집으 로 데려 오겠어요. 춘우씨는 물론 싫어하실 줄 알겠지마는, 청아를 데려다가 죽이든지 살리든지 결말을 내기는 제가 날 터얘요. 창하씨 생각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어떻다고 생각 하십니까?』
『글세요. 내야 이러거나 저러거나 간섭할 일이 못되니까, 말하기가 거북합니다.』
영숙은 다시 춘우의 기색을 살피었다.
『그렇게 하는 것을 허락해 주시겠어요? 저는 참말이지 죽 어도 애아버지에게로 어린것을 돌려 보낼 수는 없어요.』
춘우는 말이 없이 앉았었다. 어제 저녁에 자기 마음이 괴 롭던 것을 자기가 생각해 보자 과연 청아에게 자기가 죄를 짓지 않고 자기집에 두게 할는지 자기를 의심하지 않을 수 가 없었다. 그러나 춘우는 또 다시 오늘 아침에 영숙이를 보낼 적에 자기의 결심을 생각할 때 그것을 허락지 않는다 는 것은 너무 의리 인정이 없는 사람 같기도 하였다.
그는 한참이나 궁리를 하다가,
『데려 오구료. 내게 물어봐서는 무엇하오? 남의 자식도 불쌍하면 거두어 기르는 일이 있는데.』
하며 억지로 웃음을 띠웠다.
『정말요?』
영숙은 거짓말을 듣는 듯이 다시 다짐을 한다.
『언제 내가 거짓말을 합디까?』
『그러면, 오늘이라도 제가 데리러 갈터얘요.』
『데려 와요. 데려다가 병이 나으면 우리들이 기릅시다 그려.』
영숙의 마음은 몹시 즐거워서 ,당장에 뛰어다니며 춤이라 도 추고 싶은 그 반대로 춘우는 몹시 마음이 괴로운 것을 알아주는 이가 별로이 없었을 것이다.
두서너 시간이 지났다. 창하는 작별을 하고 춘우의 집에서 나와 전차를 타고 경성으로 들어와서 찾아가는 곳은 철수가 유숙하는 여관이었다.
창하는 철수와 영숙이와 춘우 세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모 든 사실을 냉정한 머리로 관찰하여 보매, 차차 그들에게는 참담한 비극의 막이 열리기 시작하는 듯 하였다. 자기가 언 제든지 생각하는 바나 일반으로 청아는 세 사람 사이에 있 어, 그들의 행복을 위하여서는 장해물이다. 그들에게는 청아 가 있는 것이 도리어 불행한 것인 것을 벌써부터 알고 있는 그는 속 마음으로는 청아가 죽는 것이 오히려 다행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진 한 일이 있었다.
창하가 철수의 여관을 막 들어서려 할 때, 영숙의 어머니 가 나아가는 것과 마주치었다.
『아!』
하고 영숙의 어머니는 그대로 발을 멈추고 한참이나 놀란 사람처럼 말이 없이 서 있다가, 겨우 입을 열어서,
『오래간만 이시구려.』
하고, 인사를 한다. 창하는 노파의 행동이 수상한 점이 있 는 것을 발견하고,
『예, 안녕하십니까?』
하고, 다시 한번 아래 위를 보았다. 그러고,
『누구를 보고 가십니까?』
하고 재쳐 물으며, 황당한 꼴로 영숙 어머니는
『저 애아버지 좀 보고 가요.』
하고 그대로 꽁무니를 빼려 하매,
『청아가 대단히 앓는다지요? 청아는 어떻게 하고 오셨습 니까?』
『예. 말 마시우. 여간 대단해야죠. 그래 애아버지에게 그 말을 이르러 왔다 가요.』
『철수가 안에 있어요.』
『예. 있어요.』
창하는 영숙 어머니가 자기를 몹시 미워하는 것을 알므로 그래서 이렇게 주저하는가 싶어서,
『어서 가 보시지요.』
하고 안으로 들어갈 때 마음 속에는 어쩐지 영숙 어머니가 자기를 만난 것이 꺼리어 하는 듯하여 보였다.
철수의 방으로 들어가서 앉았다. 철수는 마침 어디를 가려 는 것처럼 옷을 갈아 입으면서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하고, 넥타이를 맨다.
『어디 좀 다녀서 집으로 가는 길에, 자네 좀 보려고 왔네.
할 말도 있고……』
『무슨 말씀얘요. 지금 어느 친구와 만나자고 해서 거기를 가는 길인데요.』
『뭐 길지 않은 이야기야. 대관절 청아가 대단히 앓는다네 그려.』
『예, 그렇대요. 나는 바빠서 가보지 못하였지만, 걔 외조 모가 와서 그러는데요.』
『그러나 저러나 말을 들으면, 자네가 약 지어 먹일 돈도 주지 않고, 의사도 보이지 않는다니, 그 말이 정말인가?』
철수는 눈이 둥그래지며,
『무엇요? 그럴 리가 있나요, 지금도 돈을 무엇한다 무엇 한다 하고 삼십원이나 가져갔는데요.』
『삼십원?』
『네, 그애 외조모가 와서 약값 줄 것이라고요.』
『그랬나. 어떻든 그러면 다행일세, 내가 잘못 들었나 보 이, 그런데, 내가 하겠다는 말은 다른 말이 아니라 오늘 영 숙이가 청아를 보고 왔다네 그려.』
『영숙이가요?』
하고 왈칵 흥분이 되며
『무엇하러 청아를 보고 왔어요?』
『무엇하러 간 것이랴 두 말할 것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와서 하는 말이 청아를 자기집으로 데려다가 기르겠다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철수는 소리를 높이어
『안될 말입니다. 왜 제 집으로 데려가요. 당당한 내 자식 에요. 제가 내버리고 갈적은 언제고 지금 또다시 찾아갈 적 은 언젭니까? 모두 제 멋대로 저하고 싶은 대로만 하자는 말이지요.』
청하는 말을 더 느릿느릿이
『글쎄, 내 말을 좀 듣게, 자네가 그것은 잘못 생각하는 것 이야. 어린 것이 지금 당장에 죽네 사네 하는데, 어머니 품 에서 병을 고치는 것도 어린애에게 좋은 일이요, 또는 어머 니된 사람으로 그러한 마음이 있는 것도 인정이니까, 이왕 춘우도 허락한 일이니, 앓는 동안만 갖다가 치료를 시켜서 낫거든 다시 찾아 오기라도 하게 그려.』
『싫어요. 내가 내 자식을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은 주지 않을 작정입니다.』
『압다 그렇게 고집할 것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려. 생사 람 하나 죽이는 것보도 잠깐 권도도 쓰지 못한단 말인가.』
『나는 권도도 쓸줄 모르고, 이왕 어미없는 자식 죽는다 하면 팔자 좋지요. 세상에 살아서 고생하는 이보다.』
『그저 속을 좀 펴지 못해. 왜 그렇게 마음이 좁은가. 좀 너그럽게 생각을 하여 보게.』
철수는 화가 나는 듯이 탁탁 털고 일어서며,
『저는 그 말 한마디는 결단코 들을 수가 없어요. 다시 제 게 그런 말씀은 하지도 마시우.』
하고 웃옷을 떼어 입고, 모자를 쓴다. 창하도 하는 수없이 따라 일어서며
『그럴 것이 아닌데 그러네 그려. 오늘 저녁에라도 혼자 조용히 생각을 해보게.』
두 사람은 똑 같이 마당에 내려서 문밖으로 나왔다.
그 날 저녁이었다. 춘우는 밤이 늦도록 영숙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었다. 그러나, 열한시가 넘도록 오지를 아니하였다.
초조한 마음에 일어나 앉았다 들어누웠다 담배도 피었다가 책도 보았다 하였다.
남산 등머리 소나무 수풀 사이로 살그머니 넘기어다보던 달이 어느 결에 공중에 불끈 솟아 백지로 바른 머리창에 처 마 그림자를 반쯤 비추어 놓은 것이 차츰차츰 위로 올라가 서는 어느덧 방안까지 환하게 비추어 놓았다.
영숙을 기다리던 마음은 어느덧 변하여, 영숙을 의심하는 마음이 되었다. 의심하는 마음과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은 질투였다. 영숙이 청아를 데리러 갔다가, 철수를 만나지 아 니하였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이 생길 때에 그는 몹시 불안 한 생각이 나서, 문을 열고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달을 바라 보고 담배만 피어물고 있었다. 저 건너 양철지붕이 이슬에 젖어서 달빛에 뻔지르 하게 빛이나 보고 동릿집 머슴이 아 리랑 아리랑을 흥에 겨운 목소리로 길게 뽑으며 지나갔다.
화단에 심은 꽃이 촉촉하게 젖은 향기를 실바람에 옮겨다가 얼굴을 스치고 지내갈 때, 입속에서는 달리 단꿀맛이 나는 듯하였다.
춘우는 이와 같이 한적한 달밤에 외로이 앉아 영숙을 기다 릴 때, 그는 외국에 간 사람이 고향 생각하는 듯한 그리웁 고 외로운 정조를 느끼는 듯하였다.
그는 혼자 콧소리도 하여 보고 또는 입속으로 노래도 불러 보았다. 하늘에는 누가 부르는 듯이 박쥐 한 마리가 이쪽으 로 날아 오려다가, 다시 저쪽으로 달아났다. 멀리서 신용산 행의 전차소리가 들리었다 사라졌다 하였다. 때로 뻐국새가 뒷산 소나무 새에서 구슬프게 울었다.
『어째 오지를 않나?』
혼자 중얼거리다가 문간을 내다볼 때, 누구인지 흰옷 입은 사람이 걸어가는 발자국 소리에 영숙이가 아닌가 하고, 자 세히 보았으나 영숙은 아니요, 촌 여자였다.
그는 일이 있어도 늦게 오겠지 하고 관대한 생각을 먹어도 보고, 또 다시 철수와 만나서 이야기를 하나보다 하고 의심 도 하여 보았다. 그의 마음은 마치 용수철 모양으로 줄어들 었다가 늘어졌다 하는 것같이 동요가 생겼었다.
그는 마당에 내려서서 팔짱을 끼고서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다가, 문밖으로 나가서 영숙이 오는 것을 맞아주려 하였다.
그러나, 기다리는 영숙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그는 조금 높은 곳에 올라서서 멀리 달 그림자로 영숙의 오는 것을 보 리라 하였다. 그러나 오지 않았다. 저쪽 기차길 넘어서 벌써 빨간 불을 단 전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러고는 덜컥 걱정이 생겼다.
『벌서 막차가 나가는데, 웬일고?』
하고 궁금증이 났다. 오다가 무슨 일이 났다? 그렇지 않으 면 늦어서 자고 오나? 마중을 가자니 집이 비고 궁금해 못 견디겠네.
하는 생각이 나며, 집을 내려다 보며, 갖 이은 초가집이 가 라앉은 듯이 조용히 있다.
기다리던 마음이 화로 변하고, 화가 변하여 영숙을 책망하 는 마음이 되었다.
『어린앤지 무엇인지 데려오려거든 얼른 데리고 오든지, 밤중이 되도록 오지를 않으니, 기다리는 사람 생각은 해주 지를 않는단 말인가?』
하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고 자기집 모퉁이를 돌아설 때 영숙이 숨이 턱에 찬 것 같이 땀을 흘리며 문간으로 들어서 려는 것과 마주쳤다.
『왜 인제 오?』
춘우는 책망하려던 생각이 영숙을 보자 풀어져버리고 반갑 고 시원해서 부드럽게 물었다.
『에그, 나와 계셨어요. 나는 퍽 기다리실가 봐서 뛰어오느 라고……』
하고는 안으로 두 사람이 들어갔다.
『그런데, 어린애는 왜 데리고 오지 아니하였소.』
하고 춘우는 방안으로 들어가, 전기불에 비치니 얼굴을 보 자, 눈가장자리에 분바른 것이 어룽이지고 눈물 자국이 그 대로 있는 것을 보고 또 한번 속으로 놀라는 동시의 의심이 생기었다.
『옳지, 철수 앞에서 울었구나.』
할 때 춘우의 마음은 쓰리었다.
『애요?』
영숙은 대답을 채 다하지 않고 옷을 화난 사람처럼 활활 벗을 때 그에게는 어쩐지 당황한 빛과 침착하지 못한 사람 같았다. 마치 죄지은 사람이 쫓겨온 것 같은 기색이 있었다.
옷을 벗고 앉은 영숙은 무엇이라 대답할는지 몰라서 한참 주저하다가,
『병이 너무 중해서 바람을 쏘이고 데려올 수가 있어야죠.
그래서, 그대로 두고 왔어요.』
춘우는 곧이들었다.
『그렇게 중하드란 말요.』
『아마 죽을가봐요.』
영숙은 『죽을가봐요.』하는 말에 힘을 주었다.
춘우는 영숙이 청아를 데리고 오지 않은 것이 속으로 다행 하였다. 그리고 무슨 사정이든지 생기어 영영 아니 데려오 기를 가만히 기대하였다.
『그런데, 막차가 나가는데, 무슨 차를 타고 왔소?』
영숙은 조금 있다가,
『그 차를 타고 왔어요.』
하는데는, 아무리 보아도 무슨 근심이 있거나 무슨 생각이 있어 보인다.
『왜 어디가 불편하우! 또 어머니허고 싸웠소?』
『아뇨!』
영숙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왜 그러고 앉았소?』
『무얼 누가 어째요?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하고 억지로 태연히 꾸미려하나, 그 꾸미려는 고통이 나타 나 보인다.
영숙의 가슴에도 무슨 비밀이 감추어 두었는지 모르나, 춘 우는 몹시 의심스럽고, 또는 갑갑한 동시에 불유쾌하였다.
『그럼, 어린애는 아주 데려오지 않으료?』
『글세요. 시방 형편 같애서는 데려올 수가 없어요.』
『무슨 형편이란 말요?』
영숙은 반짝반짝하는 눈으로 전기불만 들여다 보더니,
『아니 별다른 형편이 아니라요.』
하고, 말을 늦추어 가며,
『애가 너무 심하게 앓으니까요, 하는 말얘요.』
『그렇다고 할머니한테만 혼자 내버려두면 어떻게 하우?』
영숙의 마음은 괴로웠다. 춘우가 제발 그런 말을 좀 물어 주지 말았으면 좋겠다 하였다. 무슨 무거운 납덩이가 그 말 할 적마다 자기 가슴 위에 와서 부딪치는 것 같았다. 그리 고는 자기가 오늘 지낸 일을 모조리 잊어버렸으면 좋겠다 생각하였다. 나중에는 청아가 이 시간에 얼핏 죽어버려서 이꼴 저꼴 모두 잊어버리는 것이 도리어 나을것 같았다.
영숙은 춘우에게 오늘 지낸 이야기를 할까? 하지 말까? 하 지 않자니 자기는 춘우에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요, 하자 니 춘우의 마음은 아플 것이다. 차라리 모든 비밀을 자기 입속에 삼키어 두고 춘우의 마음을 괴롭지 않게 할 지언정, 그 말을 입밖에 내어 자기가 정직한 사람이 될수는 없었다.
『그러면, 영숙이가 날마다 가보아야 하겠구려.』
『글세요. 틈있는 대로 가보지요.』
『그것 대단히 어려운 일이 생겼군. 그렇지만 아니 가볼수 는 없지.』
춘우는 혼자말처럼 이렇게 중얼거리었다 두사람은 길게 말을 하지 아니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서 잠이 들었었다. 달은 어느덧 넘어가 머리창에 검은 그림 자가 덮히어 버리고, 돌 틈에서 벌레우는 소리만 고요하다.
춘우가 언제인지 불안한 꿈을 깨었을 때에 그의 귀에는 이 상한 소리가 들리었다. 그는 실눈을 뜨고서 가만이 방안을 살펴보자 껏던 전등이 다시 켜지고 누웠던 영숙이 일어나 앉아서의 장문을 열어 젖히고 무엇인지 조심스럽게 상자에 서 끄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일가? 춘우는 눈을 크 게 뜨고 힘있는 광채로 그것을 건너다 보다가 다시 눈을 감 은채 하였다. 그러고 코를 골고 자는체 하였다.
영숙은 이것 저것 백지와 비단 헝겊으로 꽁꽁 뭉친 것을 하나씩 둘씩 펼 때, 적적한 방안 전기둥 밑에서는 금과 눈 이 부딪치는 소리가 땡그렁 땡그렁 일종 신비의 소리를 내 인다.
춘우는 속으로 놀래이고 또는 신기하였다. 영숙은 두 손가 락에서 그것 중에서 하나를 접어들 때, 별같은 광채가 나며, 금강석을 박은 반지가 춘우의 눈에 띠었다.
영숙은 그것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춘우가 혹시 잠을 깨어 보지나 않는가 조심하듯이 살피더 니, 그것을 자기 손에 끼고서, 아까운 듯이 물끄럼이 보더 니, 또한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입속으로
『하는 수 없지.』
하며 한탄을 하였다.
춘우는 그것을 볼 때, 그는 모든 일을 알아 채렸다. 여기 자기가 있는 이 집 세전을 얻어낸 것도 저 상자 속이요, 여 태까지 지내올 때 그리 부족하지 않은 생활을 하여 오게 한 것도 저 상자 속에서 나온 것이요, 오늘에 청아가 죽을 지 경에 있어서 약을 쓰며 의원을 부르게 되기도 저 상자 속에 서 나올 것이 있는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영숙의 저 상자 속에 있는 것은 그것이 영숙의 힘 들여서 생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두 철수의 주머니 밑에 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생각 할때 , 자기가 지금 이 집 이 자리에 누워 있는 것도 던적스럽고, 부끄러운 생각이 났다.
그리고 영숙이 저렇게 그것을 아까워 하는 기색을 볼 때, 그에게서는 자기의 자부심이 얼마간 손상되는 듯 하였다.
자기가 남의 남편이 되어서 그 아내가 존중히 여기는 패물 까지 남편 몰래 팔아서까지 자기를 위하고 자기 자식을 위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너무나 남의 남편될 자격과 힘이 부치는 것 같이 밖에 생각이 되지 않았다. 그 때의 춘우의 가슴은 쓰리고 저리었다. 그러고 혼자 얼굴에 피가 끓어올 라 오는 듯이 부끄러웠다.
영숙은 다시 그것을 종이에 똘똘 뭉치더니 상자를 장 속에 집어넣고 반지는 자기 손가방 속에 넣은 후에 자리로 다시 들어왔다.
춘우는 안오는 잠을 자는듯 눈을 감고 누워서 영숙의 거동 만 살핀다.
불을 끄더니, 영숙은 잠이 오지 않는지 부스럭부스럭하며 몹시 번민하는 사람처럼 이리뒤쳐 누었다. 저리 뒤쳐 누웠 다 한다.
영숙은 그러더니, 다시 느끼어가며 우는 소리가 나며, 고개 를 벼개에 틀어박고, 춘우에게 그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기 에 몹시 애를 쓰는듯 하였다. 그러나, 벅차서 나오는 울음은 점점느끼는 소리를 높일 뿐이요, 나중에는 듣거나 말거나 울고싶은 대로 운다는 듯이 소리까지 내어 울었다.
춘우는 이 우는 꼴을 보고서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아 까부터 이상한 눈치를 발견한 그는 그 울음속에 반드시 무 슨 수수께끼가 포함되어 있으리라. 그러고 여태까지 우는 것은 고사하고 참새나 제비처럼 유쾌하고 즐겁게 행동을 갖 고 얼굴에는 행복의 빛이 나던 영숙이가 무슨 까닭으로 저 와 같이 울까, 청아가 죽게 되었다니까, 그것을 불쌍히 생각 하여 우나! 어머니의 몸이 되어 자식을 내버리었다가, 그 자 식이 지금 최후에 임하였다니까, 그것을 뉘우쳐서 우는 것 인가? 그렇지 않으면 무슨 다른 사실이 그 속에 잠재하여 있는 것인가? 물어볼까 하다가, 춘우는 덮었던 이불을 제치 고 팔을 내밀어 어깨를 흔들었다.
『여보, 여보.』
손이 어깨에 다을 때 영숙은 잠깜 놀라는 듯 하더니, 대답 이 없이 더 소리를 높여 울었다.
『영숙! 영숙! 왜 이래? 응.』
춘우는 더 가까이 가서, 영숙을 자기 팔위에 안고 얼굴을 들여다 보려 하였으나, 창에 비추인 미약한 달빛의 반사로 는 자세히 볼수가 없어 불을 켰다.
『왜 그러우? 말을 해요.』
영숙은 고개를 내저으며,
『아네요. 아무것도 아네요.』
하고, 대답 없이 울기만 한다. 춘우는 답답하여 영숙의 몸 을 잡아 흔들며,
『내게 말 못할 것이 무엇이오? 무슨 일요? 대관절 말이나 좀 해요. 갑갑하구려.』
목메인 소리로 영숙은 대답을 하는 말이
『당신에게는 말씀 할수 없는 일얘요. 그러니, 그저 그렇게 만 알아두셔요.』
하매, 춘우는 일부러 노한 목소리로
『그러면, 영숙이가 나를 전만큼 생각하여 주지 않는다는 말이로구려. 전에는 영숙이가 내게 하지 않은 말이 없었지?
무슨 일이든지 같이 의논하였지! 그러고, 무엇이든지 날더러 물어보고 하지 않았소. 그러던 영숙이가 지금 와서는 날더 러 그와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전처럼 나를 생각지 않 는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요?』
『아네요.』
영숙은 고개를 가볍게 내저으면서
『내가 당신을 더 생각하는 까닭에 이 말을 못한 것입니 다. 이 말을 하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애요.』
『더 생각을 하면 무슨 말이든지 해주는 것이 좋지 않소.
영숙의 일어나 나의 일이면 죽어도 한다 하지 않았소. 이 일이 죽는 것보다 더 큰일이라 할지라도 내게 말을 해주어 야 할 것이 아니오.』
『왜 그렇게 들으려고 그러셔요. 저의 마음이 괴로운 것을 당신은 몰라주십니까? 저를 믿지 못하십니까?』
『영숙을 못 믿는 것도 아니요, 의심하는 것도 아니요. 영 숙이 괴로워 할때 나도 괴롭고, 영숙이 울고 있을 때 나도 눈물이 나는 것을 영숙은 알지 않소. 자 무슨 일인지 이야 기나 하우.』
『이야기를 해요?』
눈물 방울이 속눈썹에서 이슬 같이 반짝인다. 춘우는 수건 을 들러서 그것을 씻어주며
『응? 말을 해!』
『말을 하기는 하지요.』
영숙은 결심한 듯이 눈에서 광채가 나더니, 한참 있다가,
『그렇지만 여보셔요. 먼저 말을 하여 둘것은 섭섭히 생각 하지 마십시오. 그러고 저를 책망하여 주지 마셔요.』
『글쎄, 그런 말은 하지 말라니까, 그러는구료. 어서 말을 들어봅시다.』
『그러면 말을 하지요.』
하고, 영숙은 입을 열어 말을 시작하였다. 춘우는 가만이 그 말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영숙은 머리를 손가락으 로 쓰다듬더니, 깊은 한숨을 한번 쉬었다.
『저는 춘우씨를 속이었어요. 속이었다고 하는 것보다 어 느 정도까지는 배반하였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제가 춘우 씨더러 언제인가 일평생 애아버지와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 한일이 있지요. 그 맹세를 오늘 저는 저버리고 다시 애아버 지를 만나보았어요.』
말소리가 점점 떨려나오며 힘이 있어 간다. 춘우는 말이 꼬리를 이어서 엉크러진 실이 풀려나오는 것을 정성껏 듣고 있다가, 이 말 구절에 와서 눈동자가 영숙의 얼굴로 돌아갔 다. 그의 가슴에는 의심과 불쾌스러운 생각이, 녹은 촛농이 편편한 대로 떨어지는 것처럼 슬그머니 일어났다.
영숙은 다시 침을 삼키고 말 꼬리를 이어
『애아버지를 만나보게 된 것은 내가 일부러 보고 싶어서 그리한 것도 아니요, 나의 정이 다시 그이에게로 가서 그리 한 것도 아니요. 다만 어린 것 하나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 을 수가 없게 되어서 그리된 거얘요. 아까도 말하였거니와, 청아가 그렇게 앓는것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가 없어서, 그 애를 데려오려고 어머니 집을 가지 않았어요. 가보니까, 어 느 틈에 어머니는 애아버지에게 그 말을 가서 하지 않았겠 습니까. 가보니까, 애아버지가 이 소리를 듣고서 노발대발하 여 청아가 죽어도 내놓지 않겠다 하고 야단을 치지 않았겠 어요.』
『누구를 제가 원망하겠습니까. 어머니 하나 잘못 만난 탓 으로 이 모양이 되어서 남과 같이 사람다운 생활을 하지 못 하는 것이지요. 모두가 팔자라하면 팔자일는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저는 맨 나중 결심으로 애아버지를 찾아가려 하 였습니다. 제가 당신께 말씀한 것도 있지마는 그것을 저버 리는 것인줄은 알면서도 저는 애아버지를 찾아갔어요.』
할 때, 영숙의 눈에서는 새삼스러운 눈물이 흐리기 시작하 였다. 목소리는 메어 나온다. 그러고 고개를 춘우 무릎 위에 숙이고,
『춘우씨 당신은 그 죄를 용서하여 주시겠지요? 제가 애아 버지를 보러가려 할 때처럼 마음이 괴로워 보기는 처음이었 어요. 저는 당신을 믿는 마음으로 당신에게 사죄를 하면 반 드시 용서하여 주시리라는 마음으로 그리하였어요.』
춘우도 이 말을 들을 때 운모원반(雲母圓盤) 위에서 일어나 는 감응전기가 자기 몸에 닿는 듯이 저린듯 하였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영숙의 손을 잡았다. 그럴 때 그는 『마돈 나』의 순결하고 성(聖)스런 손을 쥐인 것도 같았고, 예수가 물을 청하는 사마리아의 매음녀의 손을 쥔듯도 하였다. 그 러다가, 다시 막달레아마리아에게 향기로운 기름으로 발을 씻겨 받고 그 머리터럭으로 다시 훔침을 당하는듯 하였다.
가장 신성한 감정과 가장 죄악의 마음이 자기의 전령혼 속 에서 움직이는 듯 하였다.
영숙은 울어가면서 말을 계속하였다. 엄숙한 밤 공기가 정 적을 만들어 두 사람을 에워싸고 있는데 영숙의 울음섞인 말소리가 그것을 바느질하듯 복판을 뚫고 나갈 뿐이다.
『그래서 애아버지에게로 갔지요. 간즉, 나를 보고 반기는 지 마는지, 그것은 제가 알바가 못되지마는 어떻든 옛 정리 를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다하면, 인사 한 마디라도 해줄 것 이 아네요. 본체만체 앉았다가, 제가 인사를 시작하니까, 마 지못해 왔느냐는 말뿐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저를 보고싶어 간것도 아니겠고, 무엇을 얻으러 간것도 아니겠는데, 그렇게 까지 매정스럽게 하는 것을 볼 때 저는 참으로 원통하였어 요. 』
『그것은 어찌 되었는지, 첫째 청아를 어째 못주겠느냐 한 즉, 내자식 내가 내 맘대로 하는데 네가 무슨 관계가 있느 냐. 전같으면 모르겠다마는, 오늘은 네가 청아의 어미가 아 닌 이상에야 단연코 내줄수가 없다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나는 하는수 없이 청도 해보고 간원도 해보고 또는 빌어도 보고 떼도 써보았으나, 그는 돌멩이처럼 까딱도 하지 않겠 습니까. 』
『그러한 아비에게 어린 청아를 맡겨둘 일을 생각하면 참 으로 모골이 송연해요. 생각할 때마다 불쌍하고 속에서 피 가 식는 듯해서, 못 견디겠어요.』
『그래, 거기서 싸움을 하다 못하여 다시 어머니께로 간즉, 어머니와 애아버지와 무슨 내통이 있었는지 어머니마저 청 아는 데려가지 못한다고 놓고 내주지를 않읍니다 그려. 그 래 하는수 없이 데리러 갔던 청아는 데려오지도 못하고, 당 신에게 죄만 짓고 왔어요.』
느끼어가면서 영숙은 말을 끝내고 엎드려 운다.
춘우는 이 말을 다 듣고나서, 무엇이라도 말할수가 없었다.
다만 무엇이라고 꼭 집어내어 말할수 없는 감정이 그의 가 슴 위를 지질러 놓았을 뿐이었다.
우리의 시조 때부터 몇 만년을 통하여 내려왔고, 또 우리 의 자손에게 몇만년을 이어서 내려갈 절대의 문제를 눈앞에 놓고 그것을 내다볼 때, 우리의 팔이나 손이나 몸으로는 어 떻게 할 수 없는 진리가 하나 있다.
그 자식이 있으면 그 어버이가 있는 것은 정한 이치니, 이 것을 어떠한 자가 있어 그렇지 않게 만들수는 도저히 없을 것이다. 자식이 그 어버이를 저버리는 것은 있어도 어버이 가 그 자식을 내버리지 않다는 옛말도 있지마는, 그것이 사 실로 거꾸로 되는 때도 간혹 없는 바가 아주 아닌 것은 아 니다. 앞의 말보다 뒤의 말이 더욱 진리에 가까운데야 어찌 하랴 복잡하고 착종한 우리 인류사회에서 나서, 또한 복잡 하고 다난한 생애를 보낼 때에 우리의 피란처와 우리의 낙 원은 두가지가 있다. 그것은 어머니 품속과 애인의 품속이 다. 조물주가 춘우라는 인간과 영숙이라는 사람을 만일 숙 명적(宿命的)으로 이렇게 얽어 놓았다 하면 그 허물은 단순 하게 그리고 돌리어 보내겠지마는, 만일 그렇지 않다하면, 그 허물은 어디로 돌아가랴.
여기에 우리가 풀려고 애써도 풀수 없는 그 무엇이라는 것 이 남아 있는 것이다.
영숙은 어머니로서의 사랑을 가진 동시에 또한 남의 애인 으로서의 애정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서로 뭉치고 반죽이 되고, 또는 순탄한 길로 평행이 된다 하면, 그리 어려운 문 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보다 임을 사랑한다는 가장 귀한 감 정을 가진자로서 즐거운 생애를 보낼 수 있겠지마는, 그것 이 부스러지고 서로 떨어지지 않을수가 없고, 또는 서로 얽 히는 곳에 영숙에게는 고민이 있고 불행이 생기는 것이다.
마치 금광석을 치는 것과 같이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것과 또는 남의 애인의 애정이라는 그 사랑은 다 아름다운 감정 이지마는, 이것이 서로 부딪칠 때, 둘은 위대한 운명을 면하 지 못할 것이다. 그 어느 것이 완성하고, 또는 보전하려면 그 어느 것을 희생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춘우의 마음은 아직까지도 단순하였다. 너무 이상적이요.
너무 착하였다. 영숙의 이와같은 말을 듣고서, 그는 조그마 한 의심과 또는 생각이 없이 모든것을 용서라는 것으로 해 결하여 버리려고 하였다. 영숙의 마음에는 벌써 틈이 장차 벌어지게 하는 그윽한 그림자가 비친 것은 어찌 되었든지, 춘우는 영숙을 동정하고 전보다도 더 많이 사랑할 수만 있 으면 있을만큼 사랑하여 주기를 노력하려 하였다.
『영숙! 고만 울우!』
타일러가며 위로하여 가며, 자기의 마음을 늦추어 가며, 이 번에 일어난 일을 어떻게 해서든지 칠판에 그리어 놓았던 그림을 지워버리듯 지워버려 자기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하 고 싶었다.
『고만 울우, 우지 말아요. 내가 영숙을 용서할 권리는 없 지마는 나는 그것을 잊어버릴터이오. 영숙도 이제는 잊어버 리면 고만 아니요.』
영숙은 그래도 울음을 계속한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영숙 의 눈속에는 죽어가는 청아가 자기를 부르며 발버둥치는 것 이 보인다. 그것이 옆에 있어서 자기를 위로하는 것보다도 더 자세하게 보일 때가 오히려 많았다. 자기의 머리 속에 비추이는 환상(幻像)이 옆에 앉은 정체(正體)인 춘우보다도 더 분명하고 똑똑하게 보이고 들리는 것은 무슨 까닭이랴.
여기에 그 무겁고 가벼운 것을 알 수가 있다고 할까? 아니 다. 마치 한옆에 무거운 것을 실어놓아서 그것이 가만이 기 울어져 있을 때에 또 다른 옆에 갑자기 다른 그만한 것을 갖다 놓으면 그것이 그쪽으로 기우는 저울과 마찬가지로 영 숙의 마음은 이제 적지 않은 동요가 생긴 것이다. 지금 어 느 쪽이든지 한쪽에 약한 점만 보인다 하면 그것은 기울어 지고 말 위태한 지경에 있는 것이었다.
영숙은 툭 터놓고 마음껏 울었다. 그 울음은 여러 가지의 의미가 있었다. 마치 상식을 지내는 며느리가 자기의 시아 버지나 시어머니를 생각하여 우는 것보다도 자기가 시앗 본 것이 더 설어서 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울음의 동기는 청아 의 앓는데서 얻어가지고 그것이 변하여 자기의 신세타령과 또는 세상에 모든 울분이 울적하게 쌓였던 것을 자기 애인 에게 말로는 못하는 울음으로 하소연하다시피 하는 것이었다.
어느덧 두 사람은 다시 잠이 들었다.
그 이튿날 영숙은 밥지으러 나오는 시간이 전보다 많이 늦 었었다.
일주일 가량이 지나서 영숙과 춘우사이의 화평과 행복은 다시 예전처럼 회복되었다. 흔들렸던 행복의 잔은 다시 가 만이 고요하게 놓여있고, 그 위로는 사랑의 샘물이 한량없 이 찼다가 넘쳐흐르게 되었다. 다시 웃음과 노래가 그의 가 정을 둘러싸게 되었다.
그러나, 춘우가 알수 없는 것이 한가지 있었다. 영숙의 눈 에는 언제든지 수심이 가득한 것이었다. 자기를 보고, 웃고, 자기와 서로 이야기를 할 때에 모든 경쾌한 동작이든지 표 정이 전과 틀림이 없지마는, 말이 없이 있을 때에 영숙은 몹시 수심에 쌓여 있어 보이었다.
혹간 영숙은 애조를 띠운 소리를 입속으로 혼자 군소리처 럼 하는 때도 있고, 멀거니 먼산을 바라볼 적이 있을 때 춘우는
『무슨 근심이 있소?』
하고 물어보면,
『아뇨.』
하고,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 유쾌한 얼굴을 지어 그 수심 의 빛을 지워버린다.
춘우는 어디 가든지 이 문제를 풀기에 고심하였으나, 자기 의 힘으로는 도저히 풀수가 없었다. 어떠한 때에 춘우는 다 시 영숙에게,
『청아 때문에 그러우?』
하고 위로하듯 물어본 때도 있었으나, 영숙은 역시 고개를 내저으며,
『청아요?』
하고 되집어 물으며,
『청아는 벌서 잊어버렸어요. 생각을 해 보십시오. 다시금 청아를 생각하는이 보다 그것을 잊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겠 습니까? 저는 아주 청아의 일은 단념하여 버렸어요. 저는 당신 한 분을 위한다 하면 무엇이든지……』
하고 채 말을 마치지 않던 일도 있었다. 이 말을 들을 때, 춘우는 다시 영숙을 권하였다.
『나를 위하여 청아를 내버릴 것이 무엇이오. 내가 혹시 영숙이가 철수와 가까이 하는 것을 싫어할까 하여 그와 같 은 일을 일부러 한다 하면 그것은 영숙이가 나를 사랑하면 서 나를 몰라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오. 만일 참 정말 나 를 안다 하면 영숙은 그렇게까지 청아를 단념할 것은 없는 것 같소.』
하고 여러 가지로 타일렀으며 나중에는
『영숙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므로 영숙이 마음 속에 있 는 것을 모조리 말해주지 않는구려.』
하고 성까지 내보았다.
그러나 만일 다른때 이러한 말을 하면은 원통히 여길터인 영숙이가 이번에는 도리어 웃음을 지으며, 그것을 그렇지 않다고 할때 춘우의 마음은 그 울음으로써 원통함을 하소연 할 때보다 그 웃음으로써 자기를 위로하려는 것이 몹시 싫 었다. 그 가운데는 기만과 사흘이 섞이여 있는것 같아서 마 음이 서운해지는 듯 하였다.
그러자 하루는 춘우가 몸이 불편하여 전보다 서너시간 일 찍이 집에 돌아와 본즉, 영숙이가 보이지 않았다. 문을 밖으 로 잠근 것을 보면 필연 멀리 간 것이 분명하였다.
『어디를 갔을가?』
춘우의 생각으로는 알길이 없었다. 어찌하였든 자기가 가 진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요를 내려깔고 누웠으려니까, 낮부터 신열이 나던 것이 더욱더 심하여지며 온 전신이 불 덩이 같이 더워온다. 가뜩이나 오히려 몸이 괴로워서 편안 히 누워있으리라 하고서 집에 돌아온 것이 와서 본즉, 영숙 이가 없자 마음이 불편하고 또는 화가 나서 공연히 몸이 더 욱 불편해지는 것 같았다. 어찌하였든 돌아올 때까지 기다 려 보기나 하리라 하고서 그대로 눈을 감고 있었으나, 조금 도 마음이 가라 앉지를 아니하고 마음이 조이어 못 견디겠다.
한 시간이 지나갔다. 천정에 붙어있던 파리가 앵하고 날아 오더니, 얼굴에 와서 앉는다. 춘우는 나련한 기운 속에 근지 럽게 기어가는 파리를 쫓고 다시 몽롱한 가운데 잠이 들었 다 말았다 하였다. 다시 목이 말라서 물을 먹어볼가 하고 눈을 떴을 때 벌써 시계는 다섯시를 쳤다. 그러자, 문소리가 황망히 나면서 들어오는 이는 영숙이었다.
『누구요?』
다만 반갑기만한 마음에 춘우는 제 힘껏은 목소리를 높여 서 불렀다.
『나에요.』
마당에 들어선 영숙의 목소리는 풀이 죽었다.
『어디를 갔다오? 나는 몸이 좀 불편해서 일찍 왔지.』
『어디가 편하지 않으셔요?』
『저, 신열이 나고 두통이 나며 몹시 거북해서.』
영숙은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죄 지은 사람처럼 조심 스럽게 춘우 앞에 와서 앉아 춘우의 머리를 짚어 보았다.
『에구 대단합니다.』
『글세 웬일인지 알 수가 없어. 그런데 어디를 갔었소?』
영숙은 이 말에 또 한번 말이 없이 있다. 그러고는 고개를 숙이고 무슨 생각인지 한참하고 있다가,
『저 그전에 학교에 다니던 동무가 찾아와서 놀러 갔다 와요.』
하며 또 그 언제든지 웃는 웃음으로 말끝을 마치며 웃었다.
『그러면 집을 잠그고 나간단 말요. 내가 온 뒤에 가도 좋 지 않소. 이렇게 적적한 집을 비어 놓고 다니면 위험하지 않소.』
『글세, 그런 줄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자꾸 뒷솔밭에 놀 러 가자고 재촉을 하는 것을 어떻게 해요.』
『그럼, 그이는 어디로 갔단 말요.』
『먼첨 들어갔어요.』
『왜 그렇게 총망하게.』
『집에 볼일이 있어서요.』
춘우는 웬일인지 영숙의 말 가운데는 구석이 지어보이고 또 그가 말을 채 끝내지도 않고 외면을 하며 말을 피하려는 기색이 있는 것을 보아서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 정말 같이 보이지는 아니하였다.
그러고 그러한 생각을 자기가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마 는, 그러한 생각이 자연히 들어갈 때에는 자기가 자기를 책 망하는 생각이 나며, 또는 양심상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영숙이가 비록 무슨 일이 있어서 자기를 속이고 어디를 갔 다왔다 하드라도, 그것은 자기와 영숙의 두 사람을 위하려 함이요, 결코 자기에게 향하여 반기(反旗)를 들려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하고, 지금까지 영숙이 자기에게 하여 내 려온 것을 보아서도 영숙을 의심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생각 이 들어서 자연히 자기 감정 가운데서 솟아 일어나는 것이 지마는, 그것을 부인하고 그것을 억제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장마때 흙 틈에서 새어나오는 물처럼 막으려하면 또 다시 새어나오고 막으려하면 또다시 새어나오는 그의 의 심은 오늘에 비로소 생긴 것이 아니요, 벌써 그 단서가 잡 힌지가 오랜 것이다. 춘우는 장래할 미래의 그것이 어느 한 모퉁이를 문지르고 나갈 때가 있을 것을 미리 생각할 때 그 는 몹시 무서운 생각이 났다. 그는 그의 마음을 누르려는 노력과 또는 그 누르는 것을 억지로 터뜨리고 쏟아져 나오 려는 그 무슨 미묘한 감정과 싸우기에 몹시 가슴이 괴로웠다.
춘우는 또다시 영숙에게 묻지를 아니하였다. 그러하나, 그 가 일과나 마찬가지로 하루 한번씩은 의레이 말을 하여두는 말이 있으니, 그것은 자기의 마음이 얼만큼 괴롭기는 하나, 자기가 자기의 의무로 아는 것이니,
『청아에게는 정말 가보지 아니하료?』
하고, 한번씩 채쳐두는 것이다.
영숙은 이 말을 듣고서,
『청아요?』
하고, 무슨 죄악의 현장이나 발견된 사람처럼 눈을 크게 뜨고 반문을 하였다.
『청아에게는 무엇하러 가요? 당초에 가지 않겠어요.』
하는 말이나 얼굴이 몹시 냉담해 보였다.
춘우는 또 다시 생각하였다. 영숙이 만일 나를 위하여 청 아를 버린다 하면 그것은 나 한사람만 위함이요, 결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보다 자기가 순교자(殉敎者)의 고행 (苦行)과 같은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터이니, 또한 나로서는 그것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는 일이니, 그대로 내버려 둔다 하면 그것은 내가 영숙을 사랑하는 본의가 아닐 것이 요, 그렇지 않고 영숙이 참으로 나라는 사람을 생각하여 아 니라, 사랑이라는 그것보다도 색정에 취하여 청아라는 자식 을 내버렸다 하면 그의 피는 뱀의 피와 같이 찬 여자이니, 어느 때든지 또한 나를 내버릴 날이 있을 것이다. 하는 생 각을 하면서, 영숙을 쳐다볼 때 어쩐지 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 날은 그대로 지나갔다. 그 후 며칠 후에 춘우는 평양에 출장을 갈 일이 있어서 사흘만에 돌아온 일이 있었다. 돌아 와서 창하를 길거리에서 만났다.
『어디 갔다 오나?』
『평양 좀 다녀오네.』
『평양은 왜?』
『회사 일로.』
『그런데 나는 몰랐어. 그러지 않아도 내가 자네 집을 갔 었지.』
『집에 왔다면서 내가 어디 간 줄을 모른단 말인가.』
『글쎄 그러게 말일세 내가 자네 보고서 할 말이 있으니까 말일세.』
『무슨 말을?』
『이리로 오게, 조용히 앉아서 말을 하세.』
어느 『카페』로 두 사람은 들어가 조용한 이층으로 올라 갔다.
『무엇을 먹으려나?』
『나는 식당차에서 저녁을 먹어서 별로이 먹고 싶은 마음 이 없는데.』
『그러면 술이나 한잔 들려나?』
『언제 내가 술 먹든가 미친 사람일세 그려, 대관절 무슨 말이나 좀 하게.』
창하는 자기 먹을 음식을 시켜놓고 천천히 입을 열어
『이 말을 들었다고 조금이라도 어떻게 생각은 하지 말게.
그러나 내가 이 말을 자네에게 하지 않을수가 없어서 나는 자네의 친구된 의무로 말을 하는 것이야.』
이 말 한마디가 벌써 춘우의 머릿 속에 암시를 주는지 알 아낼수가 있었다. 그의 마음은 무엇으로 찌르는듯하더니, 돌 아서서 가는 영숙이가 눈앞에 보이는듯하였다.
『어서 말이나 하게.』
『그런 게 아니라.』
말하기가 몹시 거북한 것처럼 맥주 한컵을 마시고서,
『영숙씨 말일세.』
하는 소리에 춘우는 얼굴에 뜨거운 피가 올라오는것을 깨 달았다. 창하는 다시 말을 계속하여
『요사이 나의 눈으로 보아서는 퍽 무슨 고민이 계신 모양 이야.』
하니까 춘우도
『글세 나도 그러한 생각을 가졌어. 지난번에 철수에게 다 녀온 후부터는 웬일인지 기색이 좋지가 않아서 나도 퍽 의 심을 하는 중이야. 이번 평양을 가서도 이삼일간 더 묵어올 것이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속하게 왔는 걸.』
『글세 나도 일전에 자네 집을 가지 않았겠나, 그러니까 문을 잠그고 아무도 없드란 말이야.』
이 말을 듣고 춘우는 고개를 끄떡하고,
『음!』
하고 무엇을 알아챘다는 듯이 가만이 창하의 계속하는 말 만 듣고있다.
『그러고 또 어저께는 내가 철수의 있는 여관에를 다녀오 다가 힐끗 보니까 그녀가 그 여관으로 들어가지 아니하든 가?』
춘우는 무의식 적으로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탁 치며 벌떡 일어서며,
『응! 무엇야?』
하고 실신한 사람처럼 서있었다. 그리고는 번개불 같이 지 나간 일이 연상되며,
『옳지, 알았다. 모든 것을 이제야 알았다.』
춘우는 흥분이 되어 먹지 않던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비록 독하지 않은 맥주라 할지라도 한동안 먹지를 않았던 까닭에 몹시 취해 왔다.
그리고, 춘우는 몹시 흥분이 되어 이런 생각 저런 생각 여 러 생각을 할수록 그의 마음은 분하고도 또 한옆으로 생각 하면 자기가 어느점까지 부족한 점이 있는까닭에 이러한 일 이 생겼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지난번에 자기가 생각한바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몹시 감정적인것을 자기도 생각하였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사건의 진상을 알아보 아서, 그것을 천명(闡明)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네.』
그러고, 술잔을 거푸 들이키기 시작할수록 그의 마음은 자 꾸 약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이번에 창하의 말을 듣 고나서 지난번 자기가 생각한 마음을 어느 정도까지 믿기 시작하였다.
영숙이가 문을 닫고는 어디를 갔다는것과 또는 철수를 만 나 보았다는것을 들을 때, 그의 마음이 찔리는 것은 더할것 도 없지마는, 또 한옆으로 생각하면 자기가 자기를 내버려 서라도 영숙의 사랑을 완전히 하고 싶었다.
물론 영숙이가 자기를 내버리고 철수를 따라간다 하면, 어 느 정도까지는 자기의 마음이 괴로울 뿐아니라, 자기를 모 욕하고 자기를 내버리는 그 울분한 감정을 억제하기도 어려 웠지만, 또 한옆으로 생각할 때에 자기에게 그만한 부족이 있는 까닭에 그와같은 일이 발생한 것을 스스로 돌아보게 되었다.
춘우는 다시 말을 이어
『그와 같은 일은 벌써 알았네. 자네가 그런 말을 하지 않 드라도 나는 벌써 알고 있으니까.』
사실로 말을 하면 진정한 사실을 자기가 인정하기는 오늘 이 처음이지마는, 지금 춘우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또한 춘우가 이 말을 듣고서, 자기의 감정 속에는 이러한 말이 있는 것을 미리 알고는 있었지마는, 그것이 입으로 나 오는 말이나. 또는 그의 마음 깊이 그것을 느낀 것은 오늘 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춘우는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하여 생각할수록 그의 마음은 이상하게 흥분이 되어오며, 한두잔 입에 대이기 시 작한 술이 자꾸자꾸 잔을 거푸하기 시작하였다.
『여보게.』
창하는 술이 조금 취하여 이 말을 듣고서는 자기가 이 사 실을 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춘우에게 무조건으로 동정하기 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춘우가 한번 노하고 한번 성내는것 이 자기가 한번 노하고 한번 성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춘 우에게 마음이 끌리어 이런 일을 자기가 당한 듯하였다.
물론 이런 일이 멀지 않은 장래에 있으리라고 생각하였으 나, 오늘에 정말로 이 일을 당하고 보니, 그것이 정말 같지 않고 거짓말 같으며, 또는 이런 일이 이 세상에 정말로 있 는지 의심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보게 내가 이러한 말을 한다고 어떻게 생각 은 하지 말게. 내가 이 말하는 것이 정말인지 거짓말인지 그것을 확실이 알기 전에는 자네나 나나 알수가 없을 것이 니까.』
『자네가 말하기 전에 나는 벌써 알고 있었네. 자네 말이 거짓말이 아닌 것은 나는 벌써부터 증명하지마는, 나 역시 이것을 생각할 때 어느 정도까지 짐작한 것이 있으니까.』
『글세 짐작을 하든지 마든지, 그것은 나는 모르겠네만, 그 것이 정말이 아니기를 나는 바라네. 그것이 나의 눈으로 보 아서 정말인것을 어떻게 하나.』
창하는 어느 때까지든지 냉정한 생각으로 말을 하였다.
두 사람은 거기서 나왔다. 그러고, 전차를 타고서 춘우의 집으로 향하여 갔다. 춘우가 자기 집으로 갈 때에 지금같이 허무한 일을 당해본 일이 없었다. 허무할 뿐만 아니라, 이것 이 거짓말 같아보이기도 하고, 또는 이것이 거짓말이 되었 으면 좋겠다고까지 속으로 생각하였다. 자기가 여태까지 그 러지 않아도 의심까지 하여보다가, 창하에게 그 말을 듣고 서 신경이 착란하여지며, 머리가 혼탁하여져서 눈앞이 보이 는것이 바로 분명히 보이지 않고 흐릿하여 보이며, 모든 것 이 꿈같이 보이었다.
영숙이가 자기를 생각하여 준것이 각별하였기 때문에 지금 영숙이가 자기를 다시 내 버리고 철수에게로 사실로 간다 하면 어찌하랴. 아니 간다하는이보다 사실로 갔다하면 장차 자기에게 어떠한 운명이 닥쳐오랴?
그러고, 창하가 이런 말을 나에게 일러준것이 친구의 도리 로는 그러할는지 알수 없지마는 이런 말을 하여 주어서, 자 기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괴롭게 하여주는이보다 아무 말도 하여 주지 않아서 그것을 아지 못하는 가운데 영숙이에게 속아지내는것이 도리어 자기를 위하여서는 좋을것 같았다.
그것을 생각하면, 창하가 어느편으로는 고맙기도 하고, 또는 원망스러웁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창하가 말이 없이 가만이 앉아있는 것을 볼 때, 그의 가슴속에 무슨 계책을 품고서 그리 하는 것이나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나기를 하였으나, 그것은 곧 없어지고 말았다. 지금이라도 자기 집에 가서 영 숙이가 없다 하면 어찌하랴. 그러다가, 내가 가서 한참 초초 한 마음으로 기다리다가 영숙이가 들어온다 하면, 속에 숨 어있던 울분한 감정이 터져나와서 어떠한 짓을 할는지 자기 를 믿지 못하는 까닭에 지금 자기 집으로 가는 것이 위태한 것 같았다.
더구나 오래간만에 그쳤던 술을 먹은 까닭에 그것이 자꾸 자꾸 올라와서 얼굴이 덥고, 또는 같이 타오르는 감정을 자 기가 억제할수 없을 것 같았다.
이 점에 들어서 자기가 혼자 자기 집으로 가는것보다 창하 를 데리고 가는것이 퍽 필요하고 든든하였다.
사흘이라는 날짜를 서로 보지 못하였던 까닭에 보고싶지 않은 것도 아닌게 아니지마는, 만일 영숙이가 집에 있어 자 기를 기다려 주지 않고 도리어 없는것이 자기나 영숙 두 사 람을 위해서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였다.
집에 왔다. 사흘전에 나갈 적이나 별로이 다를 것이 없었 다. 영숙은 무엇인지 마당에서 서성거리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의 머리는 섬사하게 흐트러진 것을 아무렇게나 틀어얹고 가므스름하기 때문에 저고리치마가 아무러한 일도 없는것을 말하는것 같았다.
춘우의 돌아오는 것을 보고 영숙은 비둘기 같이 반가워하 였다. 그러고, 그 언제든지 웃는 웃음을 지어서 춘우를 맞아 주다가 춘우가 말이 없이 눈치만 살피며 또는 얼굴에 전에 보지 못하던 술기운이 있는것을 보고 눈을 크게 뜨고 놀랐다.
두 사람 사이에는 오늘이 무슨 간격이 생기는 것을 춘우가 먹지 않던 술을 먹은 것으로 영숙도 짐작하게 될 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렇게 속히 오실 줄은 몰랐어요.』
영숙이가 자기 남편이 속히 온것이 좋아 그랬는지 꺼리는 일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마는, 춘우의 귀에는 모든 것이 의심쩍게만 들린다.
『왜 그러우? 내가 일찍 온 것이 영숙에게 방해되는 일이 있소?』
영숙은 춘우의 말을 듣고 속으로 에쿠하였다.
『왜 말씀을 그렇게 하셔요.』
영숙은 도리어 성내는 체하며 말을 하였다.
『전에 하시지 않던 말씀을 하시니, 그러고 약주가 웬일이 셔요.』
『나는 술 먹을 기회가 영영 오지 않을 줄 알았더니, 다시 술 먹을 기회가 와서 좋게 되었소.』
『그게 무슨 좋은기회입니까, 그러나 저러나 어서 들어가 서 진지나 잡수셔요.』
창하는 두 사람의 눈치만 보고 앉아서 아무 말이 없을 때 속으로는 영숙이가 얄미운 생각이 나서 자꾸 눈이 찡그러진다.
『밥먹을 마음 없소. 그러나 요사이 소문을 들으니까, 영숙 이가 대단히 바쁜 일이 많다고 합디다 그려.』
『일이 무슨 일얘요.』
하며, 영숙도 이제는 춘우가 그것을 알았구나 하며, 곁눈으 로 창하를 보았다. 이 일을 만일 안다고 하면, 그것은 창하 의 입에서 밖에 나올 데가 없을 터인데 하는 생각이 들며, 창하가 몹시 미운 생각이 들었다. 전에는 춘우와 자기 사이 에 들어서 모든 것을 주선하여 주어서 창하같이 고마운 사 실이 없더니, 지금 와서는 창하처럼 밉고 또는 무서운 사회 가 없었다.
본시 마음이 굳지 못하여 남을 꼬집어 뜯고싶어도, 그렇게 아프게 꼬집어뜯지 못하고, 그렇다고 마음 속으로 집어만넣 고 꿍꿍 앓기만 하는 춘우로서 비록 영숙이가 사실로 자기 를 배반만 하였다 할지라도 상당한 증거가 없이는 그것을 책망할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그대로 내버려둘 수도 없어서 마음만 혼자 괴로웠다. 그러고 영숙이가 자기를 생각하는 것이나 자기가 영숙을 알아준것이 너무 완선완미한 편이 있 으므로 그것의 반동적으로 일어나는 질투와 또는 미운 마음 이 속에서 용솟음을 쳐서 그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
춘우보다 창하가 더욱 면난한 점이 많고 또는 그대로 그 자리에 앉아 있기가 어려워서,
『자, 나는 그대로 집으로 가겠네.』
하며, 일어서려한즉, 춘우도 갑갑한 생각에 그대로 있기가 거북하여
『그러면, 나하고 같이 가보세. 갑갑도 하고 그러니.』
하고, 모자를 떼어쓰려한즉, 영숙이가 난처한 눈으로 춘우 를 보며
『지금 또 나가시기는 어디를 나가셔요. 고단하신데, 그대 로 주무시지.』
하며, 만류하기를 시작한다.
『아니 잠간만 다녀와야 하겠소.』
예전의 영숙의 말을 듣기 잘하는 춘우도 오늘에 와서는 어 디까지 반항하기를 시작한다. 춘우는 다른 말이 그 자리에 서 일어나서 창하와 함께 문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