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 나도향

Chapter 13: 一四

일주일이 지나서 창하는 철수를 길거리에서 만나 철수에게 끌려 어떤 서양 요리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다.

철수는 창하를 속으로 몹시 원망하는고로, 만일 자기와 친 척 관계가 되지 않으면 당장에 절교라도 하고, 무슨 일이 났었을 것이나, 본래 일가와 친척이 많지 않은 그는 그리 쉽게 그를 떼버릴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친척이라 함보다도 다정한 친구 이상으로 할 말 못할 말 다하고, 지내던 터이 요, 또한 영숙을 창하가 춘우에게 꾀어 보낸 것이 아니요, 다만 친구의 편의를 보아주었을 따름이므로, 철수 역시 일 개 여자로 하여 친척간에 서로 반목을 하는 것은 사내스럽 지 못한 일이라 해서 모든 것을 너그럽게 생각하고 있는 터 이다.

『여보게, 자네가 여태까지 영숙을 생각한다는 것은 자네 의 잘못으로 아네. 나는 자네나 영숙이나, 또는 춘우 세 사 람 중 누구 한 사람을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지는 않네. 그 러나,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본래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 요, 또는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까, 자네가 지금 무슨 짓 을 하여서든지 영숙을 도로 찾아오겠다고 하지만, 이왕 간 영숙을 자네가 찾아오면 무엇 하나? 자네는 돈 가진 사람이 요, 그 두 사람은 물론 돈이 없어. 그러나 그 돈으로 자네가 영숙의 마음을 살 수가 있을 줄 아나? 하필 영숙의 마음뿐 아니라, 아마 자네가 이 세상 사람의 누구의 마음이든지 돈 으로는 살 수가 없을 줄 아네. 설령 자네가 영숙을 다시 끌 어 온다고 하세, 그 때에 자네는 영숙이란 사람의 몸뚱아리 를 사온 것이지, 영숙의 마음까지는 사오지 못할 것이니, 그 점을 생각해야지. 영숙이의 몸뚱아리를 살 마음이 있으면 이 세상에는 영숙이 몸보다도 더 젊고, 어 예쁜 몸뚱아리가 얼마든지 있을 것이 아닌가.』

하고 음식이 거의 끝나갈 때, 창하는 철수에게 충고 비슷 하게 말을 하였다.

『아니지요. 그것은 너무 이상(理想)으로만 달아나시는 말 씀입니다. 우리는 태고적 사람으로 있었다 하면 기운 많은 사람이 그 기운으로 능히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을 얻을 수 가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에는 돈을 가지면 능히 사 람의 마음까지 살 수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더구나 여자는 그의 손가락에 끼이는 금강석 반지 하나만 사주면 그들의 마음을 완전히 살 수가 있는 것얘요. 말씀하신 것과 같이 돈이든지 명예든지 아무것도 다 싫고 다만 사랑을 위하여 살겠다는 여자가 이 세상에는 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을 합 니다. 영숙이도 지금은 자기가 멋모르고 일종의 호기심으로 저와 같이 지내겠지요마는, 내 생각 같아서는 단 일년이 못 되어 내게로 다시 돌아올 것을 단언이라도 하라면 하겠습니다.』

『글세, 그거야 자네가 날더러 언제든지 하는 말이지만.』

하고, 창하는 접시의 고기를 입에다 넣으면서,

『그것이 자네가 언제든지 잘못하는 일이야. 일년이 못되 어 설령 자네에게 돌아온다 하여 보세. 그 사람의 마음까지 오는 것은 아니거든. 아까도 말한 바와 마찬가지로, 몸만 오 면 무슨 일이 있나, 마음이 와야지. 그러니까 이 뒷일은 어 떻게 될는지 나로서 단언은 못하겠네 마는 자네는 모든 것 을 단념하는 것이 좋을 듯이 하이. 나로서 이러한 권고를 하는 것은 말하는 나도 미안한 일이요, 듣는 자네도 괴로운 일이지만, 만일 자네가 기어코 영숙을 찾아온다 하면 그 결 과로 남는 것이 무엇이겠나? 춘우나 영숙이나 자네 세 사람 은 모두 불행해질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보게, 자네 생각 같아서는 분한 마음에 원수라도 갚고 싶겠지만 그런 생각은 의리 있는 사람으로는 갖지 못할 것이니까.』

『아니죠. 누가 의리가 없을까요? 나는 어디까지 해볼 것 입니다. 영숙을 내가 못 뺏어온다 하면, 그 때에는 내가 나 의 재산을 있는대로 다 없애서라도 춘우와 싸워볼 것입니 다. 지금에 나는 세상에서 조소를 받고, 집안에서 못난이 소 리를 듣고, 모든 부끄러움-남자로서 당하지 못할 모든 모욕 을 당하고 있읍니다. 나는 이 모욕을 씻어버리려고 그동안 두서너달 두고 모든 것을 준비하였습니다. 자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을 해요.』

『허허, 그렇게 격분해 할 것이 아닌데 그러네 그려. 때가 무슨 땐가. 제삼자로서 냉정한 생각을 가지고 자네를 보고 나로서는 도리어 자네의 서두르는 것이 일을 그르치기 쉬울 줄 아네. 그러나, 철수 자네는 한가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네.』

『무엇이요?』

『자네가 만일 영숙이와 자네 사이를 다시 이으려 하면 거 기에는 돈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요, 다만 자네의 딸 청아 밖에 없을 것이야. 나 역시 춘우와 영숙이 지금 저렇게 지 나기는 지나나, 얼마 아니 가서 적지 않은 비극이 있을 것 을 알지마는, 다 되는대로 내버려 두고 보기만 하지 어찌하 나. 어떻든 자네네 세 사람은 한 사람도 행복스러운 사람이 없는 것을 나는 이제 단언할 수가 있네.』

이와 같은 이야기가 있던 그날 저녁 때이다. 춘우는 자기 가 다니는 회사에서 나오는 길에 진고개를 들러서 아침에 나올 때 영숙에게 부탁을 받은 사기그릇 몇 개와 양철 냄비 한 개를 사가지고 다시 양말과 속적삼을 산 후에 과자가게 에 들러서 영숙이가 좋아하는 과자 몇 봉지를 사가지고 전 차를 타고서 새로이 세를 얻은 선린상업학교 뒤 자기 집으 로 향하여 갔다. 춘우는 지금처럼 자기가 행복을 느끼는 때 가 없었다고 생각하였다. 전차 안에 탄 사람이 전에는 모두 다 시들어져 가는 것처럼 생기가 없어 보이는 것 같더니, 오늘에는 모두 생기가 있어 보이고, 혼인 잔치에 치하하러 가는 사람들처럼 즐거움으로 찬듯 하였다. 만일 세상에 불 행한 사람이라고 자기 스스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오늘날에 춘우에게는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할만치 춘우는 행복스러워 졌다. 춘우의 마음은 어저께보다 오늘, 아까보다 지금이 다르게 그 마음이 가라앉아지기 시작한다. 공중에 뜬 것 같이 이리 불리고 저리 흔들리던 춘우의 마음이 점점 안정이 되어 갈수록 그는 더욱더욱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 끼게 되고, 또는 그의 마음이 점점 냉정(冷靜)하여 질수록 그 가운데에서 무한한 흥취를 찾아 낼 수가 있었다. 그리하 고 그의 머리 속에서 어수선 산란하게 돌아다니던 모든 죄 악의 잡념이 구름 개이듯 사라지고, 청청한 하늘에 다만 해 가 있고 달이 있는 것 같이 자기와 영숙이라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영숙과 자기는 한아(閒雅)하고 그의 피는 무슨 정혈제(淨血劑)로 씻어버린 듯이 깨끗하여 진것 같고, 다시 향수로 목욕을 한것 같이, 자기는 남에게 가도 꺼리울 것이 없고 향내나는 몸과 같다.

그에게는 질투라는 것이 없고 절망이라는 것이 없고 속임 이 없고 또는 간음이 없게 되었다.

그는 다만 청정무구한 세상으로 돌아온듯 하였을 뿐이다.

저녁을 하여 놓고 자기를 기다리는 영숙을 생각만 하여 보 아도 천사와 같이 아름다웠다.

아침이면 자기를 전송하고 낮이면 빨래라든지 바느질이라 든지 뜰앞 화원에 김매기라든지 양지짝에서 병아리 모이 주 기라든지 이와 같이 한가하고 단아한 생활 가운데서 춘우와 영숙은 꿈같은 생활을 계속하는 것이다.

춘우는 전차에서 내려 반찬 가게에서 쇠고기와 왜파와 다 른 양념거리를 사서 들고 자기 집으로 향하여 갈 때, 자기 의 팔이 조금 아프고, 또는 전같으면 점잖은 사람이 창피해 서 어떻게 무엇을 들고 다니노 하고 하였을 터이지만, 오늘 에는 부끄러움도 잊어버려지고, 다만 영숙이 반갑게 맞아주 는 웃음이 그에게는 모든 용기를 주고 말았다.

그는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영숙!』

하고 부르매, 부엌에서 숯불을 피우느라고 부채를 들고 눈 물을 흘린 영숙이 툭 튀어나오며,

『에구 무엇을 그렇게 많이 사가지고 오시우.』

하고, 행주치마에 손을 씻고서 주섬주섬 받아 놓는다.

춘우는 받아 놓는대로 가만히 서서

『울기는 왜 울어. 그래 한나절을 못참아 그렇게 보고 싶 드람.』

하고, 조롱을 하자, 영숙은

『울기는 누가 울어요. 불 피우느라고 내워서 그랬지.』

하며, 눈물을 씻고 빙긋 웃는다.

『그렇다면 모르거니와……자, 이것 좀 받으우.』

하며, 주머니에서 과자를 꺼내 주니까, 영숙은 그것을 받아 서 펴 보더니, 제 입에 하나 넣고, 춘우 입에 하나 넣어주었 다. 춘우는

『저만 알지 남편은 모르는 군! 제 입에부터 집어넣으니.』

영숙은 무의식중에 한 일이라 잘못된 것을 깨닫고,

『그럼, 내 입에 넣은 것하고 당신의 입에 있는 것하고 바 꿉시다 그려.』

춘우는 옷을 벗어 영숙에게 맡기고

『대관절 밥이 어떻게 되었소. 시장해 못 견디겠으니.』

『장작이 굵어서 뗄 수가 있어야지. 쌀은 앉혀놓고 여태까 지 불을 지피지 못했어요.』

『그거 안 되었구려 내가 좀 패지.』

하더니, 동리 집으로 가서 도끼를 빌려가지고 오는데, 동리 떡거머리가 따라와서 춘우의 장작패는 것을 신기한 듯이 들 여다본다. 춘우는 도끼를 들고 장닥을 팰 때, 도끼가 손에 붙지를 않고, 제 멋대로 여기가 놓이고 저기가 놓인다.

그는 두서너 번 도끼를 들었다 놓았다 하더니, 겨우 한조 각을 쪼갰는데, 장작이 젖어서 짓이겨 놓았다. 춘우는 그것 을 손으로 쪼개느라고 얼굴에 핏대를 올려가며, 잡아다니어 겨우 반에 갈라 내던지다가,

『에쿠!』

소리를 지르고 엄지손가락을 입에다 대고 훅훅부니까, 부 엌에 있던 영숙이 달음질해 뛰어 나오다가, 화로에 놓았던 찌개를 발길로 질러서 재가 푸하고 일어났다. 이 소리를 들 은 춘우도 화로로 뛰어가서 찌개 그릇을 바루 잡아 놓으려 다가, 뜨거워서 마당 한가운데다 내던져 뚝배기가 산산조각 이 났다.

영숙은 기가 막히고 우습기도 하여 한참이나 깨어진 뚝배 기만 내려다 보더니, 허리가 부러지게 웃고만 있으니까, 춘 우는 가시백인 손이 또 찌개 그릇에 데어서 쓰라리고 아파 서 못 견디겠는데, 영숙이가 자꾸 웃기만 하니까, 열얼 벌컥 내어

『압다, 남은 아파 죽겠는데 웃기는 왜 웃어.』

하며, 원망스럽게 흘겨 본다.

영숙도 그제야 웃음을 그치더니,

『남이 애써 해놓은 찌개를 한꺼번에 태질을 치고 무슨 큰 소리요. 어디 손이나 좀 봅시다.』『고만 두, 내가 태질을 치려해서 쳤소. 영숙이가 먼저 친 것을 바루 잡으려다 그리 하였지.』

『그것도 내가 치려 해서 쳤소. 당신이 손 다친 것 보러 나오다 치마에 휩싸여 그렇게 되었지.』

이렇게 내외가 말다툼 시작하는 것을 보고 있던 총각녀석이

『고만들 두십쇼. 대관절 손이나 많이 다치지 않으셨어요.

제가 장작을 패드리지요.』

하고, 장작을 툭툭 쪼갠다.

두 사람은 저녁상을 마주앉아 밥을 먹었다.

풍로에서는 고기가 익고 밥상 위에는 상긋한 나물이 놓였 다. 전 같으면 한 두어잔 술을 마셨으면 좋을 춘우는 오늘 와서는 염두에 두지도 아니하였다.

『조금 싱겁지 않소.』

하고, 젓가락으로 이리 뒤적 저리 뒤적하니까, 숟가락을 입 에서 떼는 영숙

『간장을 좀 더 칠까요.』

하며, 장병을 집는다.

『내일은 일요일이니, 전에 말한대로 인천을 가볼까.』

춘우가 영숙에게 의향을 묻자, 영숙은 어째 시원하지 않는 어조로,

『글쎄요.』

하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똥그란 눈을 아래로 깔고 끓는 고 기만 내려다 본다.

『왜 시원히 대답을 하지않소.』

『아마 내일은 내가 어디를 좀 다녀와야 할까 보아요.』

이 소리를 듣고 춘우는 젓가락질을 딱 끄치며,

『어디를 가?』

『꼭 가봐야 할 데가 있는데, 당신이 허락을 하실지 몰라요.』

하고 영숙은 춘우의 기색을 살핀다.

『갈만한 곳이면 가지, 내 허락 여부가 어디 있단 말이요.』

『당신이 들으시면 당신이 좋아하지 않으실 곳얘요.』

『내가 좋아하지 않을 곳?』

하고, 고개를 기웃하고 생각을 하더니,

『내가 좋아하지 않을 곳이 어디 있나. 그럼 영숙이는 좋 은 곳이요? 영숙이가 좋은 곳이면 어디든지 가보는 것이 좋 지 않소.』

영숙은 잠간 주저하다가,

『저도 가기를 즐겨하는 곳이 아네요.』

『그럼?』

『다만 책임상 안 가볼 수가 없어요.』

『대관절 어디란 말이오.』

영숙은 입을 다물고 한참이나 말이 없이 가만이 있었다.

『어서 진지나 잡수셔요. 이따 이야기 하지요.』

『있다가 이야기할 것 지금 말못할 것이 무엇 있단 말이 요. 말하구려 답답하우.』

『말해야 당신 마음이 아프실 것이니까요.』

『글쎄, 아프든지 제리든지 갑갑하구려.』

『공연히 그런 말을 했군.』

『말할 것은 해야지, 속에다가 혼자 넣어두면 못쓰지.』

영숙은

『그런게 아니라요.』

하고, 벌떡 일어나 설합을 열더니 편지 한 장을 꺼내어 춘 우를 준다.

춘우는 편지 봉투를 보았다. 거기에는 서투르디 서투른 필 적으로 영숙의 이름을 쓰고 그 뒤에는 영숙의 어머니 이름 이 씨어 있었다.

『어머니께서 편지 하셨구려. 어머니께 가보겠단 말이지.

그것이 그렇게 쓰리니 아프니 할 것이 무엇 있소?』

『아네요. 속을 보셔요.』

춘우는 다시 속을 끄집어 내어 본즉 그 사연에는 오래동안 너의 안부를 듣지 못하여 궁금하고 보고싶은 마 음이야 무엇이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일래 몸 성이 잘 있느냐. 늙고 불쌍한 너의 모는 죽지 못하여 모진 목숨을 그럭저럭 부지하여 간다. 그런데 다른 말이 아니라, 수일 전 부터 청아가 병이 들어 지금은 거의 위태할 지경에 이르렀 는데, 요사이는 헛소리마다 너를 부르니, 차마 옆에서 그 꼴 은 그대로 보기가 어렵다. 어린 인생이 죄가 있으랴. 너도 어미된 인정을 저버리지 아니하려거든 한번 와서 보고라도 가기를 바란다. 아마 춘우도 그것은 용서할 줄 안다. 하루바 삐 다녀가기를 바란다.

하였다. 춘우의 마음은 무슨 감격으로 떨리는 듯 하였다.

편지를 척척 집어 영숙을 다시 주고는 국을 한숟가락을 뜨 더니 말이 없다. 영숙은 춘우의 입에서 어떠한 최후 명령이 내릴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말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춘우는 영숙을 보낼 의무는 자기에게 있지 않다고 생각하 여 보았다. 지금에 완전한 영숙을 자기 것을 만들어 놓은 이상, 또 다시 철수의 딸인 청아의 병을 보러 보낼 필요는 없을 것이라 하여 보았다. 청아와 나와 무슨 관계가 있으랴.

영숙이가 내어버린 청아를 지금에 다시 보게 한다는 것은 도리어 춘우에게 위태한 일일는지 모른다. 조금 몰인정한 일 같지만 잊어버린 것은 영원히 잊어버리고 내버린 것은 다시 돌아보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가고 싶소?』

춘우의 말에는 적지 않은 불평이 들어있었다. 그러고, 영숙 을 보는 눈에는 시기의 빛이 보였다.

『가지 말라고 그러시면 저도 가지 않을 터얘요.』

영숙이가 대답은 이렇게 하기는 하였으나, 그 표정에는 숨 기지 못할 괴로운 빛이 보였다.

『나는 가거라 말아라 할 수는 없소. 영숙이 마음대로 하 구려 내가 여기에 간섭할 수는 없소.』

『그러면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이시죠.』

『나는 좋다 싫다 말을 하지 않을터이요. 내가 되어서 가 지 말라 하면 너무 아량이 없는 사람이 될 터이요. 또 가라 고 한다 하면 가지 말라는 말보다 좀 거북한 말이니까 ……』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 가지 않지오.』

딱 잘라서 말을 하는 영숙의 얼굴은 새침하여졌다.

『공연히 그런 말씀을 해서 퍽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비꼬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온 별말을 다하는구려. 숭늉이나 한 그릇 가져 오구려.』

숭늉을 가질러 간 뒤에 춘우는 혼자 앉아 생각을 했다. 공 연히 말을 그렇게 했구나 하였다. 퍽 가지고 싶은 것을 내 가 가지 말래서 못 간다 하면, 그것은 공연히 원망을 사는 것이요, 또 비록 지금은 남이지만 자기 자식을 보러간다는 것을 막는대서야 자기도 남의 자식이 된 이상에 너무나 몰 인정한 일이 아닌가 하고 후회하는 생각이 났다.

숭늉을 들고 들어 온 영숙의 눈치만 살피는 춘우는 대접을 갖다가 밥상위에 놓을 때 밥그릇과 맞 부딪치는 소리까지 심상히 보이지 않고, 영숙의 불평이 손 끝에 까지 미치는 것 같아서 퍽 불쾌하였다.

밥상을 물린후 전 같으면 서로 앉아서 이야기를 하든지 하 다 못해 팔뚝맞기 화투라도 하였을 것이지마는 두 사람은 서로 말이 없이 앉아 있었다. 춘우는 잡짓장을 뒤적뒤적하 고 영숙은 돌아앉아서 손에 잡히지 않는 바느질을 시작하였 다. 웬일인지 두 사람은 서로 눈치만 보는 것 같애서 콧잔 등이 간질간질하고 시선이 마주 칠 때마다 서로 피하느라고 애를 쓴다.

그와 같이 쓸쓸하고 부스러지는 것 같고 긴장하지 못한 공 기가운데 몇십분이 지나갔다. 춘우는 공연히 두 사람이 싸 움이나 한 것처럼 이렇게 있는 것이 어째 싱겁기도 하고 또 는 우습고 어리석은 듯하여 말을 꺼내려고,

『그 양말이나 좀 꾀매 주구려. 지금 신은 것이 벌써 구멍 이 뚫리게 되었으이.』

하고, 제 발바닥을 만져서 영숙을 보이며 말을 하자, 두 눈 썹만 깜박깜박하고 앉아있던 영숙은 보려고도 하지 않으며 여전히 바늘만 움직이며,

『아직 괜찮이 않아요. 내일이라도 꾀매죠. 그리 바쁘지 않 은데.』

하고 불복이다. 춘우는 전 같으면 반드시 당장에 『네』소 리가 나왔을 터인데, 지금 이렇게 불복을 하는 것은 반드시 영숙의 가슴속에 못마땅한 것이 있어서 그리하는 것을 알고 서 속으로 무안도 하고, 또는 분한 생각도 나서,

『지금 못 꾀맬 것이 무엇이란 말이요. 자, 보우.』

하고 조금 우락부락한 소리를 지르며 구멍이 뚫어지려고 빨간 발이 내다보이는 발뒤꿈치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지금 꾀매면 지금 신고 어디를 가신단 말요. 내일 아침 에 신고 나가시게만 하면 고만이지요.』

『그럼, 진작 그렇게 말을 하지. 당초에 꾀매 주지 않을 것 같이 말을 하니까 그렇지.』

『누가 안 꾀매드린댔어요?』

『아까 무엇이라고 했소. 그래 꾀매 주마고 했소.』

『눈으로 보시면서 그러시우. 지금 하는 것이 있으니까, 당 장에는 해드릴 수가 없댔지. 누가 당초에 안 꾀매 드린댔어요.』

한참을 말다툼을 한 뒤에 두 사람은 모두 입들이 뾰죽해 앉아서 아무 말이 없다.

마음이 좁은 여자인 영숙이 도무지 입을 다물고 말이 없 자, 춘우도 말을 하고 싶은 생각이 적다. 그뿐 아니라, 이 불쾌한 감정을 두 사람 마음 가운데 이르킨자는 여기 있는 이 두 사람이 아니라, 저 멀리 있는 영숙의 전 남편의 딸인 청아라는 제삼자(第三者)이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뭉친 감 정을 풀기가 어렵다.

더구나 춘우에게는 이 뜻밖에 일어난 조그마한 감정 문제 가 크게 확대되려던, 두 사람의 치명상(致命傷)이 될 가능성 (可能性)을 충분히 가진 것이므로써 그는 그리 쉽게 지나가 는 희롱으로는 생각되지 아니한다. 다른 때 같으면 두 사람 이 겨드랑이 한번 간지리는 것으로 능히 해결할 수 있을 것 이지마는 이번 일은 인륜(人倫)의 관계와 애정의 관계가 서 로 세로 놓이고 가로 놓인 것이므로, 조금 냉정한 생각으로 해결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 는 자리에 누워서도 생각하매, 무슨 불행을 예약(豫約)하는 무슨 암시(暗示)가 그 가운데 있는 듯하였다.

자기는 아랫목 벽을 안고 누웠고 자기 아내인 영숙은 등을 꼬부리고 웃목을 향하여 누워있는 것을 보자, 한방에 누웠 어도, 자기가 바라보는 방향과 영숙이 바라보는 방향이 서 로 서로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정반대 되는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는 몸에 스며드는 듯한 쓸쓸함을 느끼 었다.

그는 머리를 냉정히 하여보려고 애를 썼다. 될 수 있는대 로 자기 하는것을 벗어버리고 제삼자가 되어 자기와 영숙과 또는 거기에 얽힌 사실을 멀리 놓고 관조(觀照)하리라 하였다.

부모나 자식 사이의 애정이라든지 정리와 남편과 아내 간 의 사랑이나 의리가 어떠한 곳에서 일치하는 수는 있을는지 모르지만, 결코 똑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영숙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청아를 사랑하는 것과 는 다를것이며, 내가 갖지 못한 그 어떠한 사랑을 영숙은 또 하나 더 가졌다. 세상에 가장 행복스러운 사람이 누구이 냐 하면 그것은 남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남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 점에 들어서 영숙은 자기보다 하나 더 행복스러운 것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러므로, 자기는 영숙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때에 비애를 느 낄는지 알지 못하나, 영숙은 청아를 사랑하고 싶을 때 사랑 하지 못하게 되면 그는 무한한 적막과 비애를 느끼는 것이다.

엘렌?케이 여사가 말하기를, 구주 전쟁 당시에 전선에 나가 서 나라를 위하여 용감스럽게 싸우던 용감한 남아들이 불행 히 몸에 부상을 당하여 야전병원 침대 위에서 조용히 최후 를 마칠 때에,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어머니!』라는 말 이였다고 한다.

어머니의 사랑은 절대(絶對)다. 상대(相對)가 아니다. 언제 인가 춘우가 창하와 함께 처음으로 영숙을 찾아갔을 때, 이 세상 인류를 죄악의 구렁으로 쓸어넣은것이 예수 믿는 사람 의 말대로 하면, 우리의 선조의 아내되는 이브라 하면, 오늘 에 다시 세상을 구해낼자는 또 우리의 어머니가 되리라고 한 일이 있었다. 그 때 춘우와 창하는 무심한 가운데 그런 말을 하였지만, 오늘 춘우가 생각할 때, 그 때 그 말이 자기 에게 무슨 암시를 준것 같았다. 가장 약한 가운데 가장 큰 힘이 있는 것이다. 너는 약한 자이다, 너의 이름은 여자이다 하고, 옛날에 섹스피어가 함리트를 시켜서 자기 어머니를 꾸짖게 한 말이 있지마는, 그와 같이 약한 여자에게도 강하 다고 거만한 체하는 남자를 정복하는 힘이 있는 동시에 그 반면에 또한 자기 어머니의 사랑을 부인하는 사람이 있으 랴! 누가 자기 어머니 앞에 고개를 숙여 그 무한히 인자하 고 어머니로서의 고마움을 사례하지 않는이가 있으랴! 어머 니는 자식에게 들어서 천사이며 피란처이다.

이와같은 생각을 하는 춘우의 마음은 다시 자기의 몸으로 돌아왔다. 자기의 어머니에게로 돌아갔다. 그는 돌아간 어머 니의 애정을 생각하고, 자기와 인우를 생각하여보았다. 거룩 한 어머니가 오늘에 계셨다면 하는 그리운 비애를 느낄 때, 그는 다시 영숙의 마음을 살필 수가 있었다. 자기의 어머니 가 자기를 사랑하여 준 것이나, 자기가 자기 어머니를 지금 껏 그리워하는 것이나, 영숙이 자기 딸 청아를 생각하는 것 이나, 청아가 자기 어머니인 영숙을 찾는 것이, 어머니와 어 머니, 자식과 자식의 정리와 애정에 무엇이 다를 것이 있느냐.

자기의 어머니는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그 어떠한 힘 이 끌어가고 말았고, 영숙은 또한 자기와 자기 사이에 어떠 한 힘으로 말미암아 청아에게서 영숙을 자기에게 뺐어온 것 이다 하였다. 그는 그와 같은 생각을 할 때, 두 눈에서는 가 리울 수 없는 눈물이 흘러 내리었다. 그는, 나이가 이만큼 먹은 나로서도 돌아간 어머니의 환영(幻影)을 끄집어내어 그 의 품안에 안기려 한다. 아마 이 생각은 내가 죽을때 까지 사라지지 않을 터이지. 그런데, 청아가 살아 있는 어머니의 젖꼭지를 찾는 것이 어째 무리라 하랴. 여기에 만일 참으로 공정한 진리가 있다 하면, 청아는 반드시 영숙에게로 돌아 가야 할것이다.

춘우는 이렇게 생각, 하다가, 어느덧 잠이 든 영숙을 돌아 다 보았다. 두손을 가슴위에 가만이 놓고서, 잠이 든 그의 머리 속으로는 지금 반드시 청아의 꿈을 꿀것이라 하였다.

그렇다. 나는 나의 사소한 질투심을 내버려, 큰 진리를 위 해야 할것이다. 영숙은 청아에게로 보내야 할것이다. 여기에 사람으로서 나의 의무가 있는 것이다.

어느덧 첫 닭이 울었다. 춘우도 그럭저럭 잠이 들었다. 이 튿날 아침 두 사람이 자리 속에 깨었을 때, 서로 반대 방향 으로 누웠던 것이 서로 가슴을 향하여 따뜻하게 끼어앉고 있는 것을 찾아내었을 때, 그의 가슴 속에 뭉쳐 있던 감정 은 봄눈 녹듯 사라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