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 나도향

Chapter 10: 一○

춘우는 창하의 집에 왔다. 창하의 집 문을 열고 사랑 마당 에 들어서는 춘우의 가슴은 얽히고 뭉친 무엇으로 가득찬 듯하여 그것을 풀어줄 사람이 너 하나 밖에 없다는 듯이 방 문을 열었다. 열한시나 되어 황금빛 태양볕이 한가로이 창 에 비치었다. 창하는 세상을 잊은 듯이 자리 위에서 자고 있었다. 너무 고요한 것이 도리어 비애가 섞인 적막을 춘우 의 가슴에 부어주는 듯 하였다.

『창하!』

하고, 춘우는 창하의 어깨를 흔들었으나, 창하는 아무 말이 없었다.

『창하, 창하, 일어나게. 웬 잠인가?』

그러나, 창하는 춘우와 사이가 너무 가깝고 허물이 없는 탓으로 팔꿈치를 뿌리치며

『잠간만, 잠간만.』

하고, 다시 돌아누워 말이 없다.

『일어나.』

하고, 다시 말을 하는 춘우의 마음은 섭섭하였다. 마음이 본래부터 강하지 못하고 약한 춘우는 창하까지 야속한 듯 하였다. 자기를 찾아 나의 가슴속에 서린 것을 하소연하러 온 것을 이렇게까지 냉대하나 생각이 나서, 그는 공연히 약 속한 생각이 나며, 세상이 미덥지 못하였다.

그러자, 창하는 겨우 기지개를 켜고서,

『오늘은 척 일르이 그려!』

하며, 겨우 눈을 비빌 때, 엄숙한 창하의 얼굴에는 다정스 럽고 그리운 빛이 보인다.

『일어나게, 내가 할 말이 있으니……』

『무슨 말이? 자네 말야 언제든지 그 말이지!』

『아니야, 글쎄 일어나, 일어나서 이야기해.』

하며, 춘우는 덥고 자던 이불을 벗기였다.

창하는 춘우의 얼굴 빛이 잿빛같이 된 것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면서,

『자네 얼굴이 왜 저 모양인가?』

하며 이불자락을 주섬주섬 걷어서 발치로 내던지고, 머리 를 극적극적하면서 일어나 앉아 춘우를 들여다 보았다.

춘우는 자기의 얼굴에 잿빛 같이 된 것은 몰라도, 자기 가 슴 속에 괴로움은 알았으므로 창하의 그 말을 듣고 자기 마 음을 헤아리며 자기 얼굴빛도 그리 좋지는 않으리라 생각되 었다. 그러나 말대답은 자기의 가슴이 괴롭다고 얼른 할 수 가 없어서,

『내 얼굴야 언제든지 그렇지 않은가? 내 얼굴은 언제든지 요 모양일줄도 아니까!』

하며, 자기 얼굴이 왜 이 모양으로 파리하고 보기 싫게 되 었냐는 듯이 각(角)이 진 볼다구니 껍질을 집어서 심통사납 게 한번 잡아다려 보다가, 그래도 자기 살이요 자기 몸의 껍질이라 해서, 아끼는 듯이 잡아다니던 손을 펴고 두어번 쓰다듬었다.

『무슨 좋지 못한 꼴을 보고 왔나? 몹시 놀랐나? 아마 영 숙에게서 또 무슨 편지가 왔나 보이 그려.』

하며, 창하는 춘우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기만 기다리느 라고 멀거니 입만 바라보며 앉아서 재쳐 묻는다. 춘우는 무 슨 명상이나 하는 듯이 멀거니 앉아서 고갯짓만 하면서,

『아니.』

하고 늘어지게 대답을 한다.

『그럼 왜 저 모양이야. 왜 이렇게 멀거니 앉았나. 말이나 좀 하게, 갑갑해 못견디겠네……』

하며, 왈칵 일어나서 이불과 요를 활활 털어 개켜놓더니, 다시 대님을 치고 고름을 매고 앉아서,

『무슨 일인가? 말을 하게.』

창하의 생각에는 필연 영숙이에게서 무슨 실망될만한 편지 가 춘우에게 간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그 일에 들어서는 지금까지 자기가 뒤를 보아주던 일이오, 자기가 없이는 그 일이 성립되지 않았으리라는 자신과 책임관념이 있음으로 춘우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어떠한 것을 보아서 두 사람 사 이를 조정하여 보리라는 마음이 생긴 까닭이었다.

춘우는 얼마 있다가, 두 눈에 결심하였다는 듯한 광채가 돌며,

『여보게, 오늘부터 나는 우리 집에 들어가지를 않을터일세.』

하며, 창하를 볼 때 그의 태도는 마치 패전한 군사가 마지 막 전선에서 적군의 창검 앞으로 돌진하려는 것 같이 비장 한 용기가 있어 보이였다.

창하는 이 말 한 마디에 모든 것을 알았다. 오늘 춘우가 전부터 말해 왔던 것을 실행하고 나온 것을 알았다.

『그러면 자네 아우는 어떻게 되었나?』

『나의 아우!』

춘우의 눈에서는 핏빛 같이 붉은 빛이 돌더니,

『다 모르는 것이 좋아. 생각지 않는 것이 좋아. 애정이라 는 것이 도리어 나의 마음을 괴롭게 할 뿐야. 나는 다정한 사람이 되려는 것보다도 몹시 매정한 사람이 되고, 얼음같 이 차디찬 사람이 되는 것이 나를 위하여서는 가장 좋은 도 리야.』

할 때, 춘우의 가슴은 과도의 열기로 말미암아 터지는 듯 이 지독하게 쪼깨지는 듯하며, 뜨거운 눈물이 두 눈에 괴었 다. 그 눈물은 마치 불상(佛像), 박아놓은 구슬 모양으로 뺨 에 곱게 반짝어리었다. 사면은 몹시 고요하여 장엄한 전각 속 같았다. 춘우는 자기 눈에 뜨거운 눈물이 괴었을 때는 아무 말이 없이 있다가, 그것이 자기 뺨 위에 떨어져 구를 때, 다시 자기가 눈물있는 사람이 된 것을 몹시 원망스럽게 생각하는 듯이 손목으로 눈물을 씻어 화난 사람처럼 뿌려버 렸다.

『일평생 눈물 없는 사람으로 살터일세. 쫓겨난 사람에게 는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는 것이야. 또는 눈물이 없어야 하지. 나는 우리 집에서 쫓겨나고, 또는 애정이라는 천국에 서 쫓겨남을 받을 사탄이야.』

창하는 이 말을 듣더니, 빙그레 웃으면서 춘우를 보며,

『어디 얼마나 그러나 보세. 자네는 여태까지 속일 수 없 는 것이 우리에게 있는 것을 모르는 모양일세 그려. 사람이 모든 다른 것은 속일 수가여 있는지 알 수 없어도 나이는 못 속이는 모양일세 그려. 자네는 지금 인생의 모든 희망과 즐거움을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청춘이며, 자네 혈관 속으 로 돌진하는 피는 인생의 열정의 교향악(交響樂)을 아뢰는 줄을 모르나? 자네가 지금 이러한 말을 하였지만, 새벽 첫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예수를 모른다고 한 베드로 모양으로 그 누구 앞에서 지금 나에게 한 말을 잊어버리고 다시 올 때가 있을 것을 나는 단언하네.』

사람의 감정은 물결과 같다. 다만 일순간이라도 그 감정을 그대로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이 적다. 어떠한 경우에 그것 이 살아지거나 그렇지 않으면, 어떠한 다른 형체로 나타나 거나, 또는 아주 변해버리기도 하며, 극단에서 극단으로 뒤 집히는 경우도 없지 않다. 춘우가 지금 창하의 집에서 나온

「그 누구」라는 말이 여태까지 가슴에 품었던 무섭게 힘있 고 분노한 마음을 차차 부드럽고 연하게 하기에 가장 힘이 있었다. 마치 금에다가 초산(硝酸) 방울을 떨어뜨린 것 같 이, 춘우의 굳고 무디던 감정을 녹일 수가 있었다.

『그렇지 않지, 나는 결심하였어.』

하고 춘우도 자기가 자기 마음을 의심하였다.

밀리어 가기만 하고, 다시 뒷걸음질 할 줄 모르는 시간이 어느덧 한시간이 지나니, 오정을 치렀다.

자기 집에서 아침을 먹고, 대문을 나선 영숙은 걸음을 박 창하의 집으로 향하지 않으리라 하였으나, 엄숙한 섭리(攝 理)의 신은 사람의 미묘한 감정까지 간섭을 한다.

어제 저녁 자기 남편에게 모든 것을 자백한 영숙은 자기도 어째서 자기가 지금 춘우를 만나러 창하의 집에를 가는지 알지 못하였다.

걸음걸음 띄어 놓을 적마다 자기 남편이 자기의 귀에다 대고서

『내가 네게 부족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내가 너를 냉 대한 것이 무엇이냐 너의 생활에 불만족하게 하여준 것이 무엇이냐? 무엇이든지 가리지 말고 이야기하여 다오!』

하며, 처음으로 자기의 가슴에 고개를 파묻고 울던 것이 역력히 보인다. 그러다가는, 또다시

『나는 몇 만번 저버려도 좋다! 나는 내버리어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너의 자식은 내버리지 말아 다우.』

하던 말을 들을 때 영숙의 가슴 저린 아픔을 깨닫게 했다.

다시 자기 남편에게

『모든 것을 용서하여 주셔요.』

하고, 벼개에 엎드려 울던 생각을 할 때에는 다시는 춘우 를 만나보지 않으리라 굳은 맹세와 결심을 한 것은 어느덧 어디로인지 사라지고, 지금은 또다시 알 수 없는 힘에 이끌 리어, 영숙은 춘우를 만나보러 가는 것이다. 가야 옳으나, 아니 가야 옳으냐. 아니 가야 옳다. 만일 다시 간다고 하면, 신의 없는 여자요, 절개 없는 여자가 되며, 자기 남편에게 죄인인 동시, 자기 딸에게도 죄인이다. 그러나 영숙의 생각 속에는 뾰로통하게 싻이 돋아 올라온 그 무슨 자각(自覺)은 오늘에 와서 과거의 모든 것을 부인해 버리고서, 새로운 길 을 밟아 나가겠다는 것, 자기도 남의 차지한 도덕상 권리 의무와 또는 법률상 권리 의무를 남과 똑같이 차지하여 가 지겠다는 뜨거운 욕망이 그 무슨 반동적 충동에서 일어난 까닭이다. 자기는 남의 첩이다. 자기의 남편이 자기에게 주 는 모든 조건이 아무리 완미하다 하더라도, 여기와서는 사 람으로써 참지 못할 치욕이 있다는 것이 피상적으로 인생을 관찰한 현대 여성의 부르짖는 소리다. 인생의 길고 깊은 내 면적 생활이 없는 영숙의 가슴속에서도 이와 같은 부르짖음 이 나온 것도 무리라 할 수는 없을것이며, 더구나 다정한 남자의 따스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젊은 영숙이 이러한 마음을 갖게 된 것은 얼마든지 동정할 여지가 있다. 영숙은 창하의 집 앞에 와서, 십 여분 동안이나 들어가기를 망서리 었다. 춘우가 와서 있기를 바라는 욕망이야 물론이겠지만, 와서 있어 자기와 만나면 무슨 말을 하랴? 하는 떨리는 걱 정이 있었다.

모든 것을 우리 두 사람은 단념합시다, 옛 일은 잊어버립 시다 하자니, 춘우의 가슴이 아플 것은 고사하고, 그런 생각 만 하여도 자기 가슴이 아프다. 그러면, 모든 것을 오늘 해 결합시다. 나는 나의 생활을 이 자리에서 바꾸어 예전 생활 을 헌신짝 같이 벗어버리고, 살거나 죽거나 당신과 같이 하 겠오 하자니, 자기 어머니와 자기 딸에게 대한 애정과 여태 까지 살아온 안일한 생활에 미련이 남아 있다.

이러기도 어렵고, 저러기도 난처한 영숙은 지금 기로에 방 황하고 있다.

어떻든 문을 열었다. 가는 기침을 하고서, 마당에 들어섰을 때, 사랑문 여는 사람은 춘우였다.

『어서 오셔요.』

하며 엄연한 태도로 내다보는 춘우의 얼굴을 보는 영숙의 마음은 무슨 죄가 지은 것 같이 두근거리었다. 다만 고개만 숙여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려고 마루 앞에 섰을 때, 영숙은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이번에 자기 발 하나 잘 들여놓고 못 들여 놓는데 자기의 운명이 판단이 되며, 자기 의 남편과 춘우 두 사람중에 누구 하나를 취하게 되고, 누 구 하나를 내버리게 되는 것이다. 지금 자기의 오는 것을 맞아들이는 이 춘우도 그 사람이 택함을 입을 사람인지, 내 버림을 당할 사람인지, 알지 못하였다. 영숙의 마음은 지금 에 균형(均衡)을 잃은 저울대 모양으로 이리 기울었다가 저 리 기울었다. 춘우의 가슴에 자기 가슴을 맞대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할 때는 춘우가 자기것이요 가장 미더우며, 자기 남편의 자리 속에 누웠을 때에는 자기 남편이 자기 것이다.

이리하여 지금 춘우의 앉아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때는 춘 우에게로 자기가 완전히 기울어지기가 쉬운 것을 자기도 알 기는 아나, 그것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이리 내려 앉구료.』

춘우의 다정한 목소리는 방안의 흐리터분하던 공기를 한번 에 씻어버리는 듯 하더니, 갑갑하고 심사가 나던 영숙의 마 음도 한껏 정하여지는 듯 하였다.

『괜찮아요.』

『아니, 거기는 차요. 이리 이 아랫목으로 내려 앉아요.』

하며 치마 자락을 잡아다녀 앉히니, 영숙도 못 이기는 듯 이 내려앉았다.

『주인은 어디 가셨어요?』

『안에 들어갔다우, 세수를 하나봐.』

『그런데, 어디가 불편하셔요? 신색이 아주 전만 못하십니다.』

『아니, 별로 아픈 데는 없어.』

『그러나, 어저께는 대단히 미안합니다.』

춘우는 대답이 없다.

『왜 대답을 아니하셔요.』

『나는 그런데는 대답하지 않아요.』

『말이 말 같지 않으셔요.』

영숙은 늘리먹는 듯이 생긋생긋 웃으면서 지근덕거리었다.

『생각해보구려.』

『생각이 무슨 생각얘요? 저는 생각이 나지 않는데요.』

『생각이 나지 않아요? 생각이 날리가 있소. 나같은 사람 에게는 미안합니다 하는 말 하나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이 될터이니까……』

이렇게 서로 정에 겨워 비꼬고 앉았을 때 창하는 두루마기 를 입고 부리낳게 나오더니 문을 홱 열어젖히다가, 영숙이 가 와 앉은 것을 보더니,

『언제 오셨어요.』

하고 인사를 하고 춘우에게

『잠간 다녀옴세, 집안 심부름 좀 하고 올께.』

하며 황황히 뛰어나간다.

춘우와 영숙은 창하가 뛰어나가는걸 보고 똑 같이 가슴이 근질근질함을 깨달았다. 조용한 방안에 단 두 사람이 앉아 있으매, 먹은 마음이 한꺼번에 벅차 오르는 듯 하여 침들만 삼키며 한참이나 가만히 앉았었다.

영숙은 두어번 기침을 한 후에 곁눈으로 춘우의 동정을 살 피는 듯 하더니, 목이 조금 메이는 듯 하는 소리로

『춘우씨……』

를 불렀다. 방안은 너무 고요하다. 삼엄한 침묵이 이 세상 모든 잡념을 떠나 공정한 재판이 내리는 천당이나 아니면 지옥에 간듯이 엄숙한 느낌을 두 사람에게는 주는 듯하였 다. 이번에 영숙의 입에서 나온 『춘우씨……』라는 말이야 말로 두 사람의 앞길을 좌우하는 열쇠이었다. 영숙의 입에 서는 무슨 말이 나오랴? 춘우와 결심한 것을 어디까지던지 이루고 말자는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오늘 이자리를 한해 서 두 사람은 떠나자는 말이냐, 영숙의 마음 속에 있는 저 울 추가 어디로 기울어질 것이냐.

『네.』

하고 대답을 하는 춘우의 눈은 전보다도 이상하게 광채가 났다.

『제가 이 말씀을 여쭈어 보는데 대하여서는 춘우씨의 양 심에 조금이라도 거리끼지 않는 대답을 하여 주셔요.』

『무슨 말이던지 저는 양심대로 대답하지요.』

『만일 제가 지금 춘우씨를 영영 떠나지 않으면 안될 사정 이 있어 춘우씨에게 마지막 인사를 여쭙지 않아서는 안될 일이 있다고 하면 그 때 춘우씨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춘우는 이 말을 듣고서 사금파리로 생선의 배를 가르듯이 가슴 한복판을 어이는듯 하였다. 그러고서 자기의 입으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알지 못하였다. 일순간, 다만 일순간 에 춘우의 가슴에는 이상한 불이 붙어 올라오며, 그 불이 제단 앞에서 타오르는 향불을 놓은 것 같이, 그것을 앞에 두고서 그 뒤에 무슨 사상(事象)을 보는듯 하였다. 루벤스가 그린 『십자가에서 내리는 예수』의 그림을 마지막으로 본 플란데스의 우유 장수 어린 아이와 같이 영숙의 입에서 그 말 한마디가 떨어질 때에는 무슨 신엄(神嚴)한 사실이 자기 앞에 전개된 것을 알았다.

『그 말은 왜 물으시오?』

말은 하였으나, 그 말이 목구멍으로 나올 때에 그는 겨자 를 그대로 삼킨 것 같이 거북하였다.

『글세 말씀얘요.』

하는 영숙은 자기 눈속에 비치어 있는 장차 닥쳐올 사실을 들여다보는듯이 고개를 숙이고 길고도 떡가락처럼 툭 찍어 놓은듯한 매끈한 손가락으로 방바닥만 긋고 앉았다.

『나는 그런 대답하기 싫소. 대답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요.

그와 같은 대답은 일평생 하지 않는 것이 좋을듯 해요.』

『그렇지만 그와 같은 대답을 아니하실 수 없는 경우에는 춘우씨도 가부간 무슨 대답을 하시지 않을 수 없겠지요? 그 러면 우선 춘우씨는 우리 두 사람 사이가 어느 때까지 이대 로 계속할 줄 아십니까?』

『물론 어떠한 난관을 거쳐야 할 것이지요.』

『그러면 어떻든지 한번은 거쳐야 할 그 난관을 빠르게 거 쳐야 할 것이 아닙니까? 춘우씨나 저나 이대로 만일 이 후 에 더 오래 계속을 한다 하면, 우리에게 반드시 불행한 일 이 닥쳐 올 줄로 저는 생각해요.』

춘우는 할 말이 없었다. 자기를 희생하여 영숙을 차지하였 다. 그러나 영숙을 완전히 자기 것을 만들고 자기가 독차지 하려면 그의 사랑의 상대자 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자기와 영숙의 사 랑, 그것에는 펑 뚫어진 결함이 있는 것을 찾아내게 되면 영숙을 독점하려면 자기는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자기 의 의무를 이행한 연후에 영숙의 사랑을 차지할 권리가 있 는 것이다. 지금 춘우는 영숙의 사랑을 차지하였는지는 모 르나, 영숙이란 그것은 자기 것이 아니다. 여기에 비애가 있 고 비극이 생기는 것이다. 영숙과 춘우는 무서운 비극이 닥 쳐올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 그 앞으로 하루바삐 속하게 걸 어가려고 무슨 이상한 힘에 끌려가는 중이다.

춘우는 다시 영숙을 쳐다보았다. 무슨 괴로운 생각이 영숙 이 가슴 속에서 영숙을 못살게 구는 듯이 그는 얼굴빛이 이 상하였다. 마치 월경을 순하게 하지 못한 여자의 아랫배를 앓을 때에 나타나는 괴로운 빛이 보였다. 춘우는 영숙의 손 을 쥐고서

『왜 그런 말을 오늘 갑자기 하오? 무슨 생각을 하신 일이 있소? 그렇지 않으면 내게 무슨 부족한 것이 있소?』

영숙은 고개만 내저었다.

『부족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럼요?』

영숙은 한참이나 무엇을 궁리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할 말 이 있어도 할수가 없는것처럼 고개만 기웃하고 있다가 춘우 가 재촉하는 말로 의아하는듯이 쳐다보는 것을 보고서,

『여태까지 춘우씨에게 말씀한 일은 없지마는, 춘우씨와 사귄지도 벌써 두달이 되는지요.』

춘우는 이 말을 듣고서 비로서 깨달은 것은 아니지만, 영 숙의 말하는 뜻이 어느 곳에 있는 것을 알았다.

영숙의 몸이 지금까지 춘우 자신의 것이 아닌 동시에, 춘 우는 남자로서 영숙의 애인될 책임을 다 하지 못하였다. 영 숙의 입에서 나의 몸을 완전히 당신의 것을 만들라 하기 전 에 춘우는 마땅히 먼저 영숙을 철수에게서 뺏어 올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하나 지금껏 그것을 이행하지 못한 것은 춘우의 열의가 부족해서 그렇게 된 것도, 그에 대한 애정의 정도가 얕아서 그리한 것이 아니요, 다만 그에게 어떠한 세 력을 대표하는 금전이라는 게 없는 까닭이다.

춘우도 한참이나 가만히 앉아 있다가 무슨 결심을 한 듯이

『알았소! 당신의 말을 듣기 전에 나는 벌써부터 안 일이 있어? 그러나, 그것을 당신은 그렇게까지 염려하시오? 내가 당신을 믿고 당신이 나를 믿기만 하면 어느 때던지 우리의 승리는 있을 것이며, 또는 나와 당신이 뜨겁고 무겁고 힘있 는 사랑으로써 나간다 하면 언제든지 우리의 사랑을 완성할 날이 있을 것이 아니요? 물론 나는 당신의 괴로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며, 나로써 지켜야 할 나의 책임도 모르는 바가 아니오.』

영숙은 춘우의 뜨겁고 힘있는 말소리에 지금까지 자기 마 음 가운데에서 이리 기울었다 저리 기울었다 하는 마음의 저울추가 거의 춘우 편으로 기울어지게 하는 무슨 큰 힘을 얻는 듯하였다. 그는 다만 만족에 가까운 즐거움으로 춘우 의 말을 들을 때에는 그 소리와 음조가 나라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두려워 하지 않겠다는 지사(志士)의 비장한 목소리 같이 들리었다. 그는 춘우의 말소리가 일언반사 어느것이 자기에게 믿음을 주지 않는 것이 없으며 정당하지 않는 것 이 없었다.

춘우는 말을 꺼내기 시작하더니, 꼬리에 꼬리를 잇고 힘에 힘을 더하여 말을 한다.

『알았습니다. 나는 오늘 당신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내 버렸습니다. 나의 가정도 내버리고 나의 어린 동생까지 뿌 리쳤습니다……』

할 때 춘우의 마음은 거북하였다. 사실은 춘우가 오늘 집 에서 싸우고 나온 것은 원인이 결코 영숙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심리의 세미한 부분에는 영숙에게 그 원 인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 이 자리 영숙의 앞에서는 자기가 가정에서 뛰어나온 것의 원인 전부가 영숙에게 있는 것 같이 말을 하게 된것이다. 사람이 흥분이 되면 사소한 감정이나 또는 사소한 이유가 전적(全的)으로 그 결과가 나 타나는듯한 일이 있다. 여기에 춘우는 거짓말을 하게 된 것 이다.

영숙은 번쩍 고개를 치켜들며

『왜? 댁에서 나오셨어요?』

하며 경이의 눈으로 춘우를 치어다보자, 춘우는

『네, 아주 나왔어요.』

이 말을 들은 영숙은 춘우의 결심이 그렇게까지 굳은 것과 자기를 그렇게까지 위해 준것과 또는 그렇게까지 미덥고 굳 센 용사(勇士)를 자기의 애인으로 한것이 자기에게는 더 말 할수 없는 굳은 힘이 되는 듯하였다.

춘우와 영숙과의 두 사람 마음 가운데에는 이 순간이 무슨 공통되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으니, 장차 두 사람은 어떠한 형식으로라도 완전한 부부가 되리라는 막연한 느낌이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실터입니까?』

춘우는 이제부터 자기 생활에 무슨 큰 변환이 있을 것을 생각하자, 한편으로 생신한 마음이 도는 동시에 또는 자기 의 책임이 무거운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부터요?』

한참 말이 중단되었다가,

『이제부터는 자유스럽게 살려오. 이왕 집에서 뛰어나온 이상, 다시 집에 들어가지는 않겠지요. 어떠한 괴로움 어떠 한 어려움이 있든지 나는 나대로 살아가 보려해요. 영숙!』

영숙의 손을 쥐면서 끼어 안듯이 힘을 주어 영숙의 팔을 잡아다니며,

『영숙씨도 나처럼 모든 것을 내던지고 나와 같이 어려움 과 슬픔과 기꺼움 즐거움을 똑같이 나누면서 함께 살아갈 생각은 없소? 만일 영숙씨가 나를 떠나지만 않는다 하면, 나는 무슨 짓이라도 할 터이오. 두 다리 두 팔이 있는 이상 당신이 내 그 두 다리 두 팔에 굳센 힘을 부어 줄줄 믿소.

응! 영숙씨 나는 당신이 지금 철수와 떠나지 않고 이대로 있다하면 참으로 몸이 괴로워 못 살겠소. 도리어 모든 것을 딱 잊어버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영숙은 이 말을 되고 몹시 부끄러웠다. 어제 저녁에 자기 남편에게 맹세까지 한 것이 지금와서는 후회가 된다. 그는 춘우의 이 말을 듣고서 다만 차거운 핏속에 감격의 떨림이 있을 뿐이다.

『춘우씨! 저도 벌써부터 그러한 생각을 먹지 않은 것이 아냐요. 춘우씨의 마음도 제가 몰라 드리는 것이 아냐요. 춘 우씨의 마음이 괴로우신 것보다 몇배 이상 저의 마음도 괴 롭읍니다.』

하는 영숙은 몹시 감사함과 또는 어제 저녁 일을 뉘우치는 눈물이 검정눈, 긴 눈썹 위에 이슬같이 맺히었다.

『춘우씨!』

영숙은 춘우의 무릎에 그대로 엎드러지며,

『모든 것 용서하여 주셔요. 제가 약한년입니다. 모든 것을 저는 잘못했어요.』

하고 느끼어 운다. 춘우는 영숙의 등에 손을 대이고

『왜 이러우, 울기는 왜 울어.』

하며 타이를 때 어쩐지 자기의 마음도 공연히 비상(悲傷)하 여져서 눈물이 핑돌아 영숙의 윤곽이 흐릿하여 보인다.

『저는 참으로 춘우씨에게 무엇이라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어요. 춘우씨는 저의 잘못은 무엇이든지 용서하여 주시 죠?』

춘우는 지체 없이

『우리에게는 무엇이든지 가리움이 없고 꺼리는 것이 없으 며, 언제든지 용서가 있을 따름이며, 서로 믿을 뿐이죠.』

『그러나, 춘우씨?』

말을 하려다가, 영숙은 다시 고개를 내흔들며 느끼는 목소 리로 운다.

『왜 이러우, 우지 말아요. 남이 듣더라도 부끄럽지 않아요.』

영숙은 속이 시원할 만치 울더니

『저는 참으로 춘우씨에게 죄를 지었어요. 저의 애아버지 에게 이제부터는 춘우씨를 다시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하였어요.』

춘우의 가슴은 쓰리었다. 날더러 자기를 사랑하여 달라고 하던 예쁜 입술은 어제 저녁의 자기 남편에게 나를 배반하 겠다고 그의 벼개 밑에서 속살거리었을 것을 생각하자, 사 탄의 독 묻은 입술과 같이 영숙의 입술도 무서워 보이었다.

그러나, 지금 영숙은 모든 것을 자백한다. 자백자에게 또 다시 무슨 허물이 있으랴. 도리어 그가 측은하고 가련할 뿐 이다.

춘우는 다만 우는 영숙을 타일러

『우지 말아요. 내 모든 것을 용서할터이니, 우지 말아요.』

하고 영숙의 고개를 쳐들어 그의 눈물을 씻겨주었다. 영숙 은 옆으로 자리를 정하고 앉으며 힘없는 한숨을 가슴이 무 너지도록 쉬더니, 느끼는 목소리로

『이제부터는 저도 모든 것을 내버리고 춘우씨와 함께 어 디던지 가려해요. 춘우씨는 저를 어느 곳으로든지 데리고 가셔요.』

『그러죠. 어디든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떨어지지 않도록 하죠. 모든 것을 이기고 싸워보죠.』

할 즈음 창하가 바깥에서부터 뛰어들어오는데, 그의 손에 는 과자와 과일을 잔뜩 들었다.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다가, 춘우를 향하여

『이것이나 먹게.』

하고 손에 들었던 것을 내놓으며, 구두를 끌르고 들어와서 영숙을 보고 속으로는 또 어린애들 모양으로 쪽쪽 울었구나 생각이 나서,

『눈이 왜 저렇게 붉을가요?』

하고 영숙의 대답이 굳이 듣고 싶다는 듯이 대답이 나오기 를 기다린다. 영숙은 부끄러워서 말을 하지 못하면서, 입만 몽긋몽긋 하고 있으려니까, 춘우도 무슨 대답을 해야 좋을 지 몰라서 영숙의 입만 보고 말나오기를 기다린다.

『안질이 나셨나요?』

창하의 지귄게 묻는 것은 놀려먹자는 수작이다.

『아뇨?』

영숙은 창하가 알면서도 그러니까 거짓말을 할수 없고, 그 렇다고 울었다고 할 수도 없어 아니라고 하기만 한다.

『그러면, 무엇이 들어갔나 봅니다 그려.』

하니까, 민망한 춘우는

『압다, 그것은 그렇게 알아 무엇하나! 어서 이것이나 먹게.』

하고 과자를 집어 준다.

해는 넘어갔다. 오전 열두시가 되기도 전에 집을 나간 영 숙이가 해가지고 저녁밥이 다 되도록 돌아오지를 아니하였다.

다른 때 같으면 늦게 돌아오더라도 그렇게 기다리지도 않 았을 것이지만, 청아의 아버지 철수가 서울 와서 있는지라 영숙의 어머니는 초조한 생각이 나서, 담배를 담았다 떨었 다 하며 일어났다 앉았다 한다.

『얘, 저녁 다 되었니? 김치는 새것을 헐어라. 그 중항아리 에 해 넣은 것 있지 않느냐. 나으리 올라오시면 드리려고 해 넣은 것 말야. 그러고 간은 본래 싱겁게 잡수시니, 찌개 같은 것도 정신을 좀 차려 간을 마치고……』

이렇게 하인과 찻집에서 분부를 하며, 문간에서 바람이 지 나가는 소리만 나도 창문을 열고 내다보고 문소리가 삐걱하 기만 하여도

『얘, 어멈이냐?』

하며 헛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영숙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얘가 웬일일꼬? 어서 오지 아니하고 애아버지 들어오면 또 말듣겠군. 에이, 한번 나가면 돌아올 줄을 모르니까 다른 때와 달라서 제 남편이 왔으니, 좀 정신을 차렸으면 좋으련 만……』

처음에는 이제는 오려니 기다리던 마음이 나중에는 가슴에 서 화가 치밀어 올라와서 당장에 영숙이가 있으면 화로라도 들어서 그대로 태질을 치고싶다.

『빌어먹을! 또 거기를 간 것이지!』

거기라는 곳은 즉 창하의 집이니, 눈치빠른 영숙의 어머니 는 춘우 사이를 대강은 짐작한다. 그러니까, 영숙의 어머니 에게는 영숙의 정조보다 철수의 돈이 더 귀하고 철수를 위 하는 것보다 철수의 재산을 더 위한다. 그래서, 철수의 눈을 가리고 철수의 마음을 사서 그의 재산만 취하여 편안한 생 활을 할수있으면 만족하다.

젊은 여자가 남의 첩이 되었으면 그 여자의 몸 가지는것은 추측하여 알 것이니, 다른 남자와 다소간 관계가 있드라도 눈감아 넘겨 주는 것이 그리 과히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것 이 영숙 어머니의 생각이다.

그렇다. 돈만 날 구멍이 있어 먹고 입을 것이 있기만 하면 젊어 청춘에 마음에 드는 남자의 재미있는 정을 받아보는 것도 그리 죄 되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돈이 나올 구멍을 틀어막게 되는 경우에는 자기 딸 아니라 무엇이라도 사생을 결단하고 덤빈다.

영숙의 어머니도 청춘시기를 지내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마음 들고 뜻에 있는 남편허고 일생을 지내는 것이 마땅히 사람으로써 해야할 일들인 것은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 나, 청춘에서 떠나온지 벌써 그 세월이 너무 오래고 감정이 차디찬 바위 같이 식고 무디디 무딘 그는 영숙의 보고 느끼 고 깨닫는 세상과는 그 거리가 너무 멀다.

영숙은 지금 새로 피어오르는 불길 같은 감정이 뜨거운 핏 속으로 흐르는 중이요, 영숙의 어머니는 퍼다버린 잿더미 속에서 댈그럭거리며 굴러다니는 차디찬 골탄 같은 이지(理 智)가 그의 시들시들한 껍데기와 함께 무덤 길을 재촉할 뿐 이다.

뜨거운 것과 찬것, 무딘것과 연한것이 한꺼번에 융화가 되 고, 뭉텡이가 된다는 것은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이치다.

나지막하게 입속으로만

『애가 오지 않나?』

하던 소리가

『빌어먹을 년, 나가면 집에 돌아 올줄을 모르니, 어디로 그렇게 돌아다니노? 행길귀신이 씨었나?』

하며 욕지거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다시 시계를 치어다보며,

『벌써 여섯시 반이 넘었네.』

일곱시 십분 전이라도 영숙의 어머니는 여섯시 오십분이라 는 소리를 몰라, 여섯시 반이 넘은 것으로 계산을 한다.

『벌써 밥먹으러 들어올 때가 되었는데, 들어오기 전에 오 지 않고 빌어먹을 어디가 퍼더버리고 앉아서 집에 올 생각 은 하지 않노! 또 주인의 성품을 거슬러 놓고 아무일도 안 되게 할 작정이지. 이번에 올라온 길에 달래야 쓸 돈이 이 삼백원 되는데, 계집년이 뻔히 성미를 알면서도 고 모양이 야! 에이, 뱅충 맞은 년, 똑 속이 썩을 대로 썩어.』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면서 전깃불이 들어오니까, 불을 떼 어 창 앞으로 가까이 갔다가 걸어놓고

『얘, 청아 재지 말아라 아버지 상 앞에서 떨어지면 섭섭 히 아는데, 저녁이나 잡숫거든 재고.』

하며 애 보아주는 계집애를 부른다. 그러자, 대문 소리가 삐걱하고 나며 누구인지 마당으로 들어온다.

『인제 오나보다.』

하고 영숙의 어머니는 창 밖으로 내다보았다. 그 들어오는 사람은 영숙이가 아니라, 철수였다.

『에헴.』

두어번 잔기침을 하고 마당에 들어서자, 갑작스럽게 집안 은 쑤근쑤근 하면서 엄숙한 빛이 돈다.

『어서 올라오.』

영숙의 어머니는 마루로 나오면서 철수를 맞아들이면서도 무슨 죄나 지는 사람처럼 공연히 쭈삣쭈삣 하여진다.

철수는 마당에 선채 마루 끝에 서 있는 영숙의 어머니를 보면서,

『애어멈 어디 갔어요.』

하고 엄연한 얼굴로 묻는데, 그의 얼굴에는 숨길수 없는 괴로움과 분노가 은연히 나타나 있다. 영숙의 어머니는 무 엇이라고 말을 해야 좋을는지 몰라서 조금 어름어름 하다가,

『동무집 간다고 갔는데, 거의 올걸……올라와서 옷이나 좀 벗구려. 곧 올 터이니.』

철수는 단장 끝으로 마당을 두어 번 파보더니 고개를 들어 서 하늘을 한번 치어다보고나서는

『네, 괜찮습니다. 그런데, 언제쯤 나갔어요.』

하고 묻자 영숙의 어머니는 또 한참이나

『저……』

하고 생각을 하는 체 하더니,

『다섯시 쯤 해서 나갔어.』

여기에 거짓말이 나왔다.

『왜 마당에 가셨어, 어서 올라와요.』

하며 영숙의 어머니는 다시 철수의 비위를 맞추려고,

『얘, 청아야! 청아야!』

하며 청아를 찾는다.

『얘 어디갔니? 이뿐아!』

하고 마루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왔다갔다 하며 어린애 업 어주는 애를 불러댄다.

『얘 이뿐이더러 아기 데리고 들어오라고 해라.』

이번에는 하인에게 하는 말이다.

『고 배라먹을 년이 어디로 갔노! 해가 저물었으면 돌아 올 줄을 모르고, 그렇게 일러도 말을 들어먹어 주어야 지……』

하다가 계집 하인이 문밖으로 나가니까,

『얘, 나으리 들어오셨다고 청아 얼핏 데리고 들어오래라.』

『네.』

하고 하인은 젖퉁이를 디룩디룩하며 문밖으로 나아간다.

철수는 마지못해 방으로 들어가서 옷을 벗고 앉아서 당초 에 말이 없다.

『얘, 상 가져 오너라.』

영숙의 어머니는 부엌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조금있다가 하인이 들어오더니,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요.』

하고 댓돌 위에가 서있다. 영숙 어머니는 이 소리를 듣더 니, 비단을 찢는 듯한 소리로

『무어냐. 그럼, 어디를 갔단 말이냐. 어서 더 자세히 찾아봐.』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는 걸 어떻게 합니까? 저 큰길에까 지 나가보고 갈만한 곳은 다 가보았는데요.』

『그럼 어디를 갔단 말이냐? 다시 한번 나가 보아라 어 서!』

다시 부엌을 향하여

『어서 상 가져와! 그러고 숭늉 좀 따근히 데고.』

하니까, 여태까지 양미간에 가릴 수 없는 내천자를 그리고 있던 철수는

『고만 두셔요. 있다 먹겠습니다.』

하니까, 영숙 어머니는 펄쩍 뛰면서,

『왜 고만 두기는! 조금 들어요, 점심도 일즉 자셨는데.』

하며, 미안하고 또는 죄송스러운 듯이 어쩔 줄을 모르고 서있다가,

『얘는 무엇하러 여태까지 있노. 얼핏 올 생각을 하지 않 고. 얘! 이뿐이 여태까지 찾아오지 못했니? 청아도 밥을 먹 어야 할 터인데.』

할 즈음 철수는 무슨 생각을 한 듯이 모자를 쓰며 일어서서

『애어멈 보고 할 말이 있는데요.』

하고 무슨 궁리하는 사람처럼 가만히 있다가

『오늘 밤차로 집엘 내려가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고 가방을 끄집어낸다. 영숙 어머니는 속으로

『에쿠 큰일났구나.』

하고서

『그게 웬일요. 왜 그렇게 내려가우. 그렇게 급한 일에 아 니거던, 하루 쉬고 내일이나 떠나지. 애어멈도 보지 않고!』

영숙 어머니의 머리 속에서는 영숙과 철수 사이의 이어있 는 그 무슨 줄이 끊어지는 것보다도 이번에 청구하려던 몇 백원 돈이 없어질 것이 더 애석하였다.

철수는 문밖으로 나왔다.

영숙의 어머니는 문밖까지 쫓아 나오면서 철수를 만류하였 으나, 영숙의 어머니는 철수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기에 아 무 힘도 없었다.

『그 애가 곧 올터이니, 들어와 앉았다가 보고 가요. 하인 을 보내서 불어올 터이니.』

애걸을 하다시피 하였으나 철수는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아네요. 급해요. 며칠 있다가 올라와서 만나보지요.』

하고 초연히 가버리려 한다. 너무 철수의 결심이 굳은 것 을 안 영숙 어머니는 더 다시 철수를 붙잡을 수가 없어 말 이 없이 서서 문앞 골목으로 나아가는 철수의 뒷 모양만 바 라보고 서 있었다. 철수는 골목을 돌아서 사라지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안으로 들어온 영숙 어머니는 제 화에 못 이 기어 집안사람이 조금만 무엇하면 트집을 잡아서 화풀이를 하려고, 집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의 먹고 입는 것이 주인 공인 철수가 저녁도 먹지 않고 떠난 것을 볼 때 공연히 죄 지은 사람들 모양으로 전전긍긍할 뿐이다.

이런 일이 있는 줄 모르는 어린애 업은 애는 작난으로 피 곤한 몸에 청아를 업고서 저녁을 먹으려고 집으로 들어왔다 가, 집안 사람들이 수군수군 허둥지둥하는 것을 보고 이상 한 생각이 나서 눈치만 살피려고 부엌문간 앞으로 가서, 계 집하인에게

『아씨 오셨소?』

하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계집하인은 아까 찾으러 다니던 생각을 하고 마님께 꾸지람 들었던 일이 분하여 가자미눈을 해가지고 흘겨보면서,

『』이런 경칠년! 옳지 이게 마님께 야단만났다. 어서 마님 께 가봐라. 아까 나리가 들어오셔서 아기를 불러 오라셔서 찾다못해 나리께서 역정이 나셔서 저녁도 안 잡숫고 시골로 가셨어. 어서 가봐! 마님께.

가슴이 덜렁한 이뿐이는 갑자기 겁이 나서 어쩔 줄을 모르 나, 본래 성미가 다라진 애라 겉으로는 그런 기색이 조금도 없이

『왜 옆의 집에서 놀았는데.』

하고 자기 변명을 시작한다.

『옆집이 무슨 옆의 집야. 내가 두 번이나 가 봤는데.』

『두번이나 왔었으면 왜 나를 보지 못해.』

『없으니까 못 보았지.』

『누가 없어, 와보지를 않았으니까 못 봤지.』

하인도 여기에는 불복이다.

『누가 안 가봐, 네가 없었지 내가 안 갔어!』

『그럼, 왜 안방에서 내려놓고 놀았는데.』

하고 서로 변명하느라고 목소리가 높았을 때 계집하인은 소리를 버럭질러서,

『없었거든, 없었다고 그래. 다른데 가서 실컷 장난치고 와 서 옆의 집에 있었다고……』

『다른데서 노는 것을 봤어. 찾아보지도 않고 그러거든.』

하니까, 계집하인은 손에 들었던 부지깽이로 이뿐이를 탁 치며,

『내가 안 찾아봤어!』

하니까, 이뿐이는 분이 난데다가 얻어맞고서,

『왜 때려 왜 왜 어린애니까 만만해.』

하고 옆에 있던 쪽박을 계집하인에게 내던졌다. 계집하인 은 이것을 피하며,

『요것 좀 보게. 누구를 때린다.』

하고 그 쪽박을 다시 집어던진다는게 마당 가운데가 떨어 지며, 반에 쩍 쪼개졌다.

이뿐이는 분한 생각이 툭 터지면서 그대로 소리를 질러 울 음이 나오며,

『왜 때려, 이 육시를 할 년. 어디 또 때려봐라.』

하고 울며 덤빈다. 소리를 들은 영숙의 어머니가 안방 미 닫이를 벼락치듯 열면서,

『이년들 웬 야단이냐.』

하며 호령이 나린다. 이 때 계집하인이 먼저 나서면서,

『아니랍니다. 어디 갔다 인제 오느냐니까 그런답니다.』

하고 변명이요, 이뿐이는 눈물을 씻으면서,

『그렇지 않답니다. 부지깽이로 사람을 막 때린답니다.』

하나 동정은 어린 이뿐이에로 가지 아니하고 나먹은 어멈 에게로 간다.

『이년 어디 갔다 인제 와서 울기는 왜 쪽쪽 우니. 아기 이리로 가져 오너라. 너는 네 생각만 하지 아기 배고파 할 생각은 하지 않니, 이리와!』

어린애로 받더니 닷자곳자로 손에 들었던 담뱃대로 이뿐이 를 후려갈기며,

『요 배라먹을년! 어디 갔었어!』

하고 갈라지는 소리로 소리를 지르니 이뿐이는 애개개 소 리를 지르며 그대로 꼬꾸러져 운다.

『말 안할터이냐!』

하며 두어 번 더 힘을 주어 갈기자.

『옆에 집에 있었어요, 에구구.』

하자 영숙 어머니는

『옆에 있는 년이 찾으러가도 없었어. 바로 대! 바로 대지 않을 테야.』

하며 이번에는 얼르기만 한다. 이뿐이는 울음이 섞이어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정말에요. 응응.』

할제, 계집하인은 옆에 섰다가, 잘쿠선이라는 듯한 눈으로 흘겨보며,

『뭐 정말야. 딴데가서 놀았지.』

할제, 문밖에서 영숙이가 황망히 들어오다가, 이 꼴을 보고 서 눈이 뚱그래지며

『이게 웬일들이야.』

하며 어머니를 보았다.

영숙의 어머니가 영숙과 춘우 사이를 알기로 오래고 또는 묵인을 하여주기는 주었지만, 이번에는 그대로 둘수가 없는 지 막 내놓고 야단이다.

영숙의 어머니는 영숙이가 들어오는 것을 보더니, 어안이 벙벙한 사람 모양으로 한참이나 아무 말없이 서 있다.

집안은 잠간 무슨 파란이 일어나려는 것 같이 엄숙하고 고 요하다.

『어린애를 왜 이렇게 때려 주시우. 말로 이르거나 그러시지.』

하고 영숙은 모녀싸움의 단서를 끄집어내었다. 이 말을 들 은 영숙의 어머니는 당장에 왜가리 같은 목소리로

『무엇이야? 이년 어린애가 잘못하니까, 꾸짓느라고 그러 는 것이지. 내가 그래 때리고싶어 때린다드냐. 이년 네 어미 는 네 눈갈 속에는 눈꼽만도 있지 않니?』

영숙은 어머니의 소리 지르는 것이 너무 송구스러워서

『웬 소리를 그리 지르시우, 그 말 한번 했기로 남 듣기에 는 무슨 일이나 난 것 같게.』

하고 방안으로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으려 하니까 청아가 어머니를 보고서,

『엄마 엄마.』

하면서 따라온다.

『가만 있거라. 옷 갈아 입고……』

하며 치마를 벗으려할 때,

『무엇이 네가 소리를 질렀니. 계집년이 제 남편은 생각지 도 아니하고, 온종일 나가 있다가, 남편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는 것은 그것이 정당한 옳은 일이고, 내가 어린애를 좀 잘못했다고, 때려준 것이 잘못한 일이야.』

영숙은 그 말 가운데 무슨 뜻이 포함된 것을 알아채고,

『누가 남편이 가고 오는 것을 몰라요?』

『누군 누구야. 네가 집안을 잘되게 하는 수작이냐. 못되는 하는 수작이냐. 너는 할 것이 네 남편 섬기는 일 밖에 없지.』

『누가 남편을 섬기지 않는댔어요?』

『그럼, 네가 남편을 무엇으로 섬기는 모양이냐? 남편이 저녁을 먹으러 들어왔다가, 도루 나가게 만드는 것이 남편 섬기는 법이라고 누가 하든!』

『어머니는 공연히 생트집을 잡아가지고 그렇게 크게 떠들 것이 무엇이란 말요.』

하고, 영숙도 맞서기를 시작한다.

『무엇이 어째! 네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무슨 일이 그렇 게 바쁘냐, 이 화냥년 같으니.』

영숙의 어머니는 홧김에 이 말 한마디를 내어놓더니,

『이년! 그래 너 날마다 가는 곳을 내가 모르는 줄 아느냐.

동무의 집 갑네 하고서 재동을 날마다 무슨 까닭으로 가 니?』

『내가 재동을 가거나 어디를 가거나 어머니가 알아 무엇 하시료. 나 갈 일이 있으니까 가는 것이지.』

『알아서 무엇하시료? 응 이년, 내 춘우인지 빌어먹다 턱 이 떨어질 녀석인지 그 녀석을 날로 삼켜버릴 터이다. 그 녀석 때문에 될 일도 안돼.』

영숙은 갑작스럽게 입끝이 쫑긋하여지며 두 눈에 독이 오 르더니,

『무엇이 어째요. 춘우가 어쨌단 말요? 춘우가 어머니더러 밥을 달랍디까. 옷을 달랍디까. 춘우가 될 일을 못되게 한 것이 무엇이오. 왜 걸핏하면 애꿎은 춘우를 쳐들어 가지고 야단요. 야단을 알 수가 없으니!』

『무엇이야. 춘우가 그럼 네게 무엇이 그렇게 긴해서 꽁무 니를 따라다니니. 네 밥을 주니, 옷을 주니, 네가 춘우를 따 라다녀서 네게 이로울 것이 무엇이냐?』

『해로울 것은 무엇이오. 따라다니는 것도 내가 좋아서 따 라다니고 싫은 것도 내가 따라 다니기 싫은 것이니까. 어머 니가 간섭할 것이 못돼요.』

『어째 내가 간섭을 할 수가 없니! 어미가 간섭을 하지 않 고 어떤 빌어먹을 년이 간섭을 한단 말이냐?』

『어머니가 간섭해서 되는 일 하나 없습디다.』

『무엇이 안 된 일이냐? 어미가 간섭해서 안 된 일이 무엇 이냐?』

이 소리를 듣던 영숙은 어머니를 눈이 뚫어지도록 들여다 보더니,

『어머니는 생각도 못하셔요.』

하고 무섭게 바라보고 서 있다.

『모른다. 무엇이냐? 어디 말 좀 해봐라.』

『몰라요. 나를 이렇게 만들어준 사람이 누구요. 나를 이렇 게 만들어준 사람이 어머니가 아니고 누구얘요. 어디 어머 니도 입이 있었거든 말을 좀 해봐요.』

어머니의 가슴속에도 양심의 찔림이 있었든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한참이나 입만 벌리고 서 있었다. 이 말 한마 디는 언제든지 영숙의 최후 무기다. 모녀간에 무슨 일로 다 투든지 이 말 한마디만 하면, 영숙의 어머니는 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양심으로는 자기의 잘못으로 영숙의 비운(悲 運)을 가엾게는 생각 한다하더라도 다시 한번 둘러 생각을 할 때에는 자기가 그렇게 하지 않았든들, 오늘날에 이 편하 고 걱정없음이 있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는 영숙의 어머니는 다시 말대꾸를 시작하여,

『무엇야! 내가 잘못해서 요 모양을 만들었어. 그래, 네가 나 아니면 꿈에나 이렇게 살아볼 줄 알았드냐? 네가 무엇이 부족하냐! 네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지! 그 래 내가 간섭을 해서 너를 못된 구덩이로 쓸어넣었다 하면, 너는 하는 짓이 무엇이냐. 그저 들어온 복도 박차 던져내지 를 못해서 애쓰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어미가 아무리 도 척 같다 하더라도, 그래 너를 조금이라도 잘되라 할 터이지, 못되라고 할 빌어먹을 년이 있드란 말이냐. 다 너 좋고 너 편하자고 한 일이지.』

『나 좋게 한 일이 무엇이요. 나는 아무것도 싫어요. 당장 에 쌍가마를 탄다 해도 나는 싫으니, 어머니 혼자 그렇게 좋거든 이 집이나 지키고 있소. 그렇게 편하고 좋은 집을 내버릴 수가 있단 말이요. 나는 나 혼자 갈데로 갈 터이니, 어머니 혼자 가고 싶거든, 가고 싶은 대로 맘대로 가고, 있 고 싶거든 있고 싶은 대로 맘대로 있어요. 나는 나갈데로 갈터이니, 아무러기로 사람이 살아가는데 산 입에 거미줄 칠 터이오. 하루 세끼 먹기는 사람마다 매일반이지.』

하고 다시 벗었던 옷을 주섬주섬 집어 입는다.

어느덧 한옆에 쓰러져 잠이 들었던 청아가 눈을 부스스 뜨 더니 칭얼대고 울기를 시작한다.

『엄마.』

하고 보챈다. 이 소리를 듣던 영숙의 어머니는 눈만 흘겨 서 슬그머니 청아를 보더니

『흥, 으아.』

하고, 소리를 더 높여 우니까,

『요 배라먹을년 같으니, 왜 자지 않고 울어.』

하고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자, 청아는 그 소리에 놀라서 더 높이 소리를 지르며 운다.

『너도 팔자가 사나워서 태나기를 잘못 태났다. 고생은 잔 등이에다 새기고 나왔지.』

하고 다시

『울지 말아 요년, 울기는 왜 빽빽 우니.』

하고 청아에게로 달려들어 누워있는 애를 자기 쪽으로 굴 려서 두 겨드랑이를 쳐들으니까, 청아는 어머니가 아니라고, 억지를 쓰며 몸에 목을 놓고 두 다리를 버르적거리며 목구 멍이 찢어지는 듯이 운다.

한참이나 추슬려고 애를 쓰던 영숙의 어머니는 가뜩이나 화가 나고 분한데다가, 어린애까지 야단이니까, 그대로 방바 닥에 홱 내던지면서,

『에, 나는 모르겠다. 울거나 말거나.』

하는데는, 늙은 할머니와 젊은 어머니 사이에는 어린 아이 를 가운데다 두고서 일종의 질투가 일어났다. 더구나 늙은 할머니는 젊은 어머니를 질투하는 경향이 있다.

방바닥에 곤두라진 청아는 바늘로 찌르는 듯이 운다. 이것 을 본 영숙은 쏜살같이 달려들어 어린애를 끼어안으며, 마 치 고양이가 잡아먹으려는 쥐새끼를 노려보는 듯한 눈으로 자기 어머니를 노려보더니,

『어린애가 무어라고 그랬소. 방바닥에다 내던지게. 화가 났으면 났지 화풀이를 왜 어린애에게다 한단 말이오.』

하고 목줄띠에 핏줄이 서도록 소리를 지른다. 그러고,

『우지 마, 우지 마.』

하고 청아를 달래는데, 다른 때 같으면 청아가 울기를 시 작하면 반드시 자기 어머니에게다, 떼어맡기던 것이, 오늘은 모녀 싸움 끝이라, 그전보다도 더 애정이 있어서 그리한 것 은 아니지만 어머니를 더욱 윽쥐어박으려고 청아에게 전에 없이 인정을 보인다.

가슴에 안기더니, 말이 없이 눈을 감고 편안히 잠이 드는 청아를 들여다보는 영숙의 마음은 공연히 처량하여진다.

인생의 무상이라는 문자는 모르더라도, 한없는 무상을 느 끼었다. 자기가 지금의 자기 팔에 안고 앉아있는 것이 자기 의 딸이요, 또는 철수의 딸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거기에는 무슨 위대한 힘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을 끊으려하면, 끊을 수도 있지만, 자기의 힘을 가지고는 끊을 수는 없는 무슨 큰 힘이 청아를 통하여 철수와 자기를 얽어놓은 것 같았다.

마치 유리통 속에 갇혀 있는 날벌레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그것을 꾀뚫으려하면 이마를 부딪쳐 나갈 수가 없는 큰 무 슨 장벽이 자기의 청아와 철수를 가두어 놓은 듯하였다.

청아는 가끔가끔 떨리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손으로 어머니의 젖을 만지었다.

영숙의 품이 천당이나 낙원 모양으로 절대(絶對)의 안식(安 息)을 한다.

영숙은 한참이나 이 잠자는 청아를 내려다 볼 때 이 청아 를 자기 품에 안았을 때는 언제든지 맛보는 것이나 마찬가 지로 모녀의 따뜻한 애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왈칵 분한 기운에 발길을 돌리어 자기 집에서 나가려던 마 음이 다시 주저앉게 한 이가 그 누구이냐?

그것은 자기의 어머니도 아니요, 자기의 남편도 아니요, 자 기의 세간도 아니요, 그것은 자기가 어머니 노릇을 하는 말 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청아이다.

이 세상에 절대(絶對)의 사랑이 어느 것이냐 하면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이다. 남녀간 부부간의 사랑은 현대인으로 반 드시 상대적(相對的)이나 더 싫으면 나도 싫고 네가 사랑하 지 아니하면 나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소위 연애이지만 어머니의 모든 사랑은 그렇지가 않다. 자기 자식이 아무렇 게나 괴롭게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일 것이다.

영숙의 가슴에는 또 다시 번민이 일기 시작하여 얼굴빛이 푸르러지기를 비롯한다. 그리고 말이 없이 앉아 있자, 구곡 간장에 새어나오는 원통한 듯한 비애가 마디마디를 녹이는 듯하여지고 두 눈에서 눈물이 핑 돈다. 그리고, 그것이 방울 이 되어 뚝뚝 낙수 떨어지듯이 두 뺨에 떨어지는 것은 마치 두어개 점을 찍어놓은 듯 하였다.

눈물이 나오자, 한숨이 나온다. 그러더니, 눈물이 다시 비 오듯 한다.

이에 영숙은 또 다시 결심을 하였다. 모든 것을 당장 결단 하고 튀어나가리라. 모든 것을 잊으리라. 그리고 새로운 생 활을 하여 보리라.

그러나 영숙의 몸은 무거운 무엇이 누르는 듯 하였다. 그 것은 산도 아니요, 집도 아니요, 돈도 아니라 석자 혀에 되 지 않는 청아이다.

청아야말로 두 사람 사랑의 결정이냐, 그렇지 않으면 죄악 의 씨냐, 또 그렇지 않으면 업원이냐, 그것은 어떻게 된지를 영숙은 모른다. 그것을 알려고 할 것도 없다. 그러나, 자기 남편은 버릴 수가 있으나, 청아는 차마 버릴 수가 없는데, 어찌하랴?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무슨 힘이 가련한 인생을 꼭꼭 동여매 놓았다.

영숙의 마음에는 차라리 청아가 아주 죽어 없어서 영원한 단념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모르거니와 살아있는 동안에 나 가고 너 가거라, 떨어질 수는 없는 일이다.

영숙의 속에는 몽글몽글한 청아의 살이 따뜻하게 만져지고 편안히 잠이 들어 쌔근쌔근하는 콧소리는 마치 향기를 토하 는 듯하다.

그 때 영숙의 마음은 괴로웠다. 어찌해야 옳으냐, 청아를 두고 가랴, 데리고 가랴. 데리고 갈 수도 없고, 내버릴 수도 없고, 다만 답답한 것은 가슴 뿐 이다.

그는 울음소리를 내어 울었다. 고요한 밤중에 젊은 여자의 울음 소리는 가늘고 곱게 떨려서 캄캄한 밤중을 처량하게 흔들어 놓는다.

『듣기 싫다. 울기는 왜 우니.』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영숙의 어머니의 눈에도 눈물이 괴 였다.

입으로 소리는 지르나 그의 가슴도 쓰리지 않는 것은 아니 었다.

자기도 안다, 영숙의 눈물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세상이라는 것 에 지금까지 질질 끌려와, 얼마 아니 있으면 무덤이란 것에 자기 몸이 툭 집어던져지고 뚜껑을 턱 덮어버릴 날이 멀지 않은 그는 다만 보지 않고 느끼지 않고, 생각지 않고, 백지 (白紙)같이 있다가 백지 같이 죽고 싶은 마음 뿐 이었다.

그래서, 영숙을 볼 때마다 보지 말고, 생각지 말고, 느끼지 않으리라, 하고 다만 소리만 지르고 야단만 칠 뿐 이다.

『우지 말어.』

소리를 지르는 것은 실상은 영숙이가 불쌍해서 나오는 것 이지마는 그것이 곱고 부드럽게 타이르는 말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귀찮고 보기 싫은 생각에 소리만 꽥꽥 지르게 되는 것이다.

영숙은 대답도 없이 한참 앉아 울다가, 무릎이 저려서 청 아를 내려뉘고, 다시 옷장의 문을 열고 한참이나 문앞에 서 있다가 옷을 주섬주섬 주어입고 문 밖으로 나가려 하자,

『어디를 가?』

하며 어머니가 내다본다.

『어디 가는 것은 알아 무엇하셔요. 나 가고 싶는데, 내 발 가지고 나가는데……』

하며 홱 나가버렸다.

어디까지 쥐 죽은듯이 가만히 있던 찻집, 하인, 침모할 것 없이 모두 안방으로 기어들면서

『이 밤중에 어디를 가실까요. 제가 좀 따라가 볼까요.』

계집하인이 엉거주춤하고 엎드려 물어본다.

『고만 두어라. 고 성미에 하고 싶은 것은 하고 마니 까……그러나, 나으리가 정말 갔나?』

하고 눈을 끔벅끔벅하고 있다.

『글세 올시다. 가시기야 했겠습니까. 인제 들어오시겠지요.』

그러나, 밤이 새도록 영숙도 돌아오지 않고, 철수도 들어오 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