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우(李春雨)가 시골서 돌아온지 사흘이 지났다. 그는 자 기 집 건넛방 자리 속에 누워서 두눈을 깜작깜작 하며 담배 만 피우고 있다.
아침 해가 동향한 미닫이에 뜨겁게 쬐는데, 벌써 먼 곳에 서는 이슬 흐르는 잎사귀 밑에서 시원히 노래하는 매미 소 리가 들리게 부엌에서는 아침밥을 짓는지, 솥뚜껑 열었다 닫는 소리와 소반위에서 떨어지는 숟가락의 울리는 소리가 춘우의 귀에 다시 가정에 돌아온 맛을 느끼게 한다.
춘우는 담배를 재떨이에 아무렇게 비비고, 팔로 깍지를 껴 서 그 위에 머리를 얹고, 천장위만 물끄러미 처어다보고 있 다가, 다시, 오지도 않는 잠을 청하는 듯이 눈을 감았다. 춘 우의 조그만 눈속은 얇은 눈껍질 사이로 스미어드는 광선으 로 말미암아 어두려 하는 저녁도 같고, 밝으랴 하는 새벽과 같이 어두움에 약간의 광명이 섞이여 무한대(無限大)의 공간 을 펴놓았다. 모든 환상(幻想)을 지었다가 그리었다 차려 놓 았다. 집어 치었다. 뛰놀게 하다가 사라지게 하기에 아무 거 칠것이 없는 큰 무대이며 끝 없는 마당이며 네 귀퉁이를 헤 아릴 수 없는 캔퍼스(畵布)다. 지금에 그는 지금 그의 머리 속에서 일어나려는 환상의 활동을 거기에 전개시키려 한다.
그믐칠야에 은하(銀河)를 가로질러 흐르는 운성(隕星)과 같 은 별이 찬란한 광채를 내고서 그 복판을 지내가더니, 공중 으로 솟아 올랐다가 한꺼번에 터져 천갈래 만갈래로 헤어지 는 것도 같고, 고요한 푸른 물에 은가루를 뿌린듯한 수만의 별들이 한꺼번에 나타났다. 또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도 같 았다. 그러더니, 동쪽 수평선에서 솟아오는 살림포의 팔구비 같은 둥근 달처럼 영숙의 얼굴이 그 속에서 웃는다. 열대지 방 어두운 밤중에 깜깜한 삼림을 통하여 바라보는 장경성 (長庚星)과 같기도 하고, 성 소피아 사원(寺院) 신단(神壇) 앞에 켜놓은 은은한 두줄기 촛불같은 그의 눈, 동쪽에서 서 쪽으로 몰려가기만 하고 한번도 밝아보지 못한 암흑(暗黑)보 다도 더 까만 기다란 머리, 서산으로 넘으려는 초승달 같이 깜찍하게도 그린듯한 눈섭, 예쁘게 담은것이 도리어 사람의 속태우게 할듯이 성난듯한 입술, 루비 보석을 우유에 갈아 서 찍어 버린듯한 그의 두 뺨이 그 속에 보이더니, 그 무무 한 공간 위로 그의 몸을 일으키기 시작하며, 후리후리한 키 에 윤곽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듯한 것이 천천히 띄워 놓 는 걸음걸이가 이리 주름지었다. 저리 주름지었다. 물결같이 울렁거리는 얇은 옷 속으로 비치며, 반뼘이 오히려 길다할 예쁜 발을 게으른 듯이 띄어 놓는 것이 보인다. 춘우는 눈 을 감고 뜨지 않으려 하였다. 깜박깜박 피의 고동으로 눈꺼 풀이 떨리여 그 환영(幻影)의 극히 미세한 곳이 빛이 얇아지 기도 하고 선(線)이 가늘었다 굵었다 하는 것까지 애석하여, 그는 죽은 사람처럼 터럭끝 하나 꼼작거리지 않고 누워 있 다. 그러고, 속으로
『영숙!……영숙!』
없는 이의 이름을 두어번 불러 보더니, 다시 아무 생각없 이 있었다. 『영숙』이라는 음조가 피아노의 바음을 두 번 울린 것 같이, 온 몸과 영(靈) 속에서 미묘한 선율(旋律)을 일으키더니, 연기 위에 비친 그림처럼 사라졌다.
머릿속은 혼탁하여 졌다. 영숙의 그림자는 안개속으로 보 이는 동상처럼 희미한 윤곽만 보이더니, 동에서 모여 들었 다 서로 사라지고 천리 밖에서 달려 왔다. 만리 저쪽으로 달려가는 천가지 만가지의 뜻하지 않든 연상(聯想)이 번개와 같이 꼬리를 잇고 인화(燐火)와 같이 사라지는 것이 밀리고 휩싸이어 간 곳 모르게 없어지었다.
춘우는 다시 영숙의 환영을 찾아 내려고 안공(眼孔)에 펼쳐 있는 무한한 황야를 방황하듯 한 생각으로써 헤매였으나 다 시는 찾아낼 수가 없고 구름을 손가락으로 잡으려는 것처럼 잡힐 듯 하고도 자세히 보면 아무것도 없었다.
『일어나우.』
하는 동생의 소리에 그의 눈은 번쩍 떠지었다. 선명한 광 선이 안공으로 기어들고, 찬란한 세계가 다시 눈 앞에 있으 나, 감았던 그 속에 비하여 거북할만치 좁고, 영숙의 환영이 꿈같이 사라지고 놓여있는 세간과 걸려있는 옷이 눈 앞에 있어 똑똑한 반영을 그의 눈속에 비출때 그의 마음을 섭섭 과 무미함으로 찼었다.
『으응.』
대답은 하였으나, 일어나지는 않았다. 아직까지도 생각의 나머지가 그의 몸을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실로 잡아때 놓 은 것 같았다.
춘우는 다시 어제 저녁이 눈에 보인다. 어제 저녁 자기 친 구 박창하(朴昌夏)의 집에 갔을 때, 그는 십년이나 잊어버렸 던 영숙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가 주인과 작별을 하고 일 어서려 할 때 누군인지 마침 사랑으로 들어서는 사람 둘이 있었다. 산뜻한 양복에 채프린 수염을 기르고 자랑스러운 어조로 주인에게 농담 비슷하게 인사를 붙이는 젊은 신사의 뒤를 이어 들어오는 사람이 십년 전에 자기와 함께 소학교 에 다니던 영숙이었다. 머리를 쪽 지어 비취 옥 비녀를 꽂 고, 발에는 반쯤 지루 신은듯한 버선에 미색 마른신을 신었 다. 힐끗 이것을 바라보는 춘우의 머리 속에는 십년이나 끊 어졌던 기억이 다시 이어지는 듯하여, 한참이나 영숙을 바 라보았다. 영숙은 춘우가 쳐다 보는 얼굴에 기억이 있는지 잠깐 곁눈으로 유난히 살피려다가 춘우의 시선과 자기의 시 선이 마주칠 때에 그는 얼굴을 돌리었었다.
춘우는 주인과 문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인사를 하고 집으 로 오려다가, 다시 돌아서서 물었다.
『그게 누군가?』
『웨 그러나?』
『글세 말일세.』
『미인이지?』
『괜찮아, 대관절 누구야?』
『남자는 우리 친척되는 사람인데, 전라도 부자지, 그 여자 는 그의 첩이라네.
『그런데 어찌 왔나?』
『응, 그것은 오늘 저녁에 나하고 활동사진 구경을 가자고 약속을 하여놓기 때문에 그래 왔나보이.』
『활동사진? 무슨 좋은 사진이 왔나? 나도 한몫 끼세 그 려?』
춘우는 실없는 말로 물었다.
『그러게 그려, 어려울 것 무엇 있나.』
『하지만, 그만두겠네. 여자 꽁무니를 쫓아 가는것 같아서, 그 남편도 좀 미안히 생각할 터이고 내 인격에 관계가 되 네. 미인 아내 가진 사람의 불안한 심리라니……』
『하하, 그렇지만, 자기는 누구에게던지 자랑을 하려고 애 를 쓴다네, 같이다니면 어깨가 으쓱하여지는 모양야.』
『집은 어디라노?』
『관철동 ○○번지에다가 치가를 하였지.』
『언제든지 동거를 하나?』
창하는 춘우가 너무 자세히 묻는 것이 의외의 일이요, 여 자의 본성을 구지여 알고 싶어 하는 것도 남자의 특성인 것 을 알기는 알지마는, 별로 남의 일을 길게 물어보지 않던 춘우가 이상하게도 길게 물어보는 것이 이상하여,
『그것은 왜 그렇게 자세히 묻나.』
하며 수상히 여기는 눈으로 춘우를 보자, 춘우도 샅샅히 묻고는 싶지마는, 너무 길게 물으면 창하에게도 쓸데없는 의심을 받을가 해서
『글세 말야.』
하고 슬쩍 말을 모호하게 얼버무려 버리고, 다시 모자 챙 을 만지는 체 하며,
『자 그러면, 내일이라도 또 만나세.』
인사를 한 뒤, 집으로 향하여 온다.
여름 밤, 후틋한 바람이 이슬에 젖어, 온 종일 뜨거운 볕에 탈듯하던 길에 깔린 모래를 적시고, 멀고 가까운 곳에 우뚝 우뚝 서 있는 높다란 나무들은 은가루를 뿌린듯 한 푸른 하 늘의 별들을 비질하듯이,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한다. 그는 안동의 별궁 앞 넓은 뜰에 나섰다. 그가 영숙을 본 뒤부터 웬일인지 세상이 또다시 꿈같다. 생각하면, 지금으로부터 십 여년이란 긴 세월이 그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가 소 학교 삼년급에 다닐 때 영숙은 같은 학교 여자부 이학년에 다니었었다. 지금은 자기 남편과 같이 내지로 유학을 가고 있지 아니한 자기 누님과 함께 날마다 학교에 갈 때면 언제 든지 같이 가고, 또 학교에서 돌아올 때에도 같이 오는 사 람은 영숙이었다. 그리고, 일요일이나 혹은 경축일에도 빠지 지 않고 자기집을 찾아오는 사람도 영숙이었다.
춘우는 토막토막으로 생각나던 옛 기억을 눈앞 허공에다 그리면서, 전동 길로 나려 간다.
춘우는 어느때든가 외조모가 오시었다가 춘우와 영숙이가 방안에서 노는 것을 보시고, 자애스러운 웃음을 띄우시고, 가만히 춘우 곁으로 오시더니, 춘우의 귀에다 대시고 『너 영숙이에게 장가가련』하시던 말이 생각나고 그 말을 듣고 는, 웬일인지 온 전신에 피가 끓는 것도 같고, 모두 한꺼번 에 식어 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 얼굴이 술취한 사람 같이 화끈화끈 하여지며, 부끄러워서 그대로 할머니 무릎 아래 아무말 없이 어리광처럼 딩구던 생각이 난다.
또 그러다가는 어떤 날 영숙이가 누님을 찾아 왔다가, 셋 이서 뒷동산에 돋자리를 펴놓고서, 놀 때 영숙이가 누님을 바라 보며, 댕기가 풀어진 머리를 땋느라고 불처럼 빨간 제 비부리 새댕기를 매면서,
『그런데, 저 우리 어머니가 어저께 저녁에 우리 아주머니 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나를 공부나 잘 시켜서, 돈 많은 집 으로 시집을 보낸대?』
하고, 철없는 생각에 말은 하였으나, 그래도 시집가는 것이 부끄럽던지 얼굴빛이 조금 불그레 하여지든것이 생각난다.
그때의 춘우 마음은 이상하게 비어지는듯 하였다. 그 말 한 마디에 자기 가슴 속에 있던 무엇을 영숙 어머니가 뺏어가 는것 같고 자기 가슴 속에 찼던 영숙의 무엇이 도루 영숙에 게로 가는 듯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영숙이가 누님더러
『나는 공부는 더 했으면 좋겠지마는, 다른데로 시집가기 는 싫여.』
하고, 수연한 얼굴로 한참 있다가, 다시 말을 이어
『나는 언제든지 나의 집에서 살고 싶드라, 너의 집에는 돈이 없니?』
하던 말이 지금 춘우의 가슴을 새삼스럽게 찌리는 듯 하는 옛날 기억이다.
그것도 벌써 십년이라는 옛날로 돌아가고 말았다. 지금 그 것을 붙잡으려는 것도 바닷가에서 무지개를 쫓는 어린애와 같고, 벼개 위에 꿈을 따라가려는 것과 같이 허무하다. 옛날 은 시간을 타고 무한한 영겁으로 돌아가고 오늘에 있는 것 은 몽롱한 옛 기억이 조그마한 뇌막(腦膜)에서 비치었다 살 아졌다 할뿐이다.
춘우는 다시 종로 네거리를 가로질러 황금정 통으로 내려 왔다. 더위를 못 이기여, 교의들을 길거리에 놓고서, 부채질 을 하고 앉았는 사람, 길거리 위에는 이쪽에서 저쪽, 저쪽에 서 이쪽으로 흘러갔다. 흘러오는 길가는 무리들이 여름의 환락장인 경성 시가에 찼다. 공중에서 공중으로 물 묻은 왕 굴을 아기를 매어 놓은듯한 전기선 줄은 불빛에 번쩍거리 며, 왔다가는 가고 갔다가는 오는 전차는 그 입으로 사람의 무리를 삼키었다 뱉았다 한다. 황금정 모퉁이에는 새로이 카페가 생기었다. 얼굴에 분칠을 하고, 앞에다 하얀 앞치마 를 입은 여자뽀이들이 문간에 나와서 유행하는 노래를 부르 고 있다. 춘우는 더위를 못이겨 갑갑한 가슴을 식혀 불가 하여, 그 카페로 들어가서, 맥주를 청하였다.
춘우는 두어병을 혼자 마시었다. 뱃속에서 혈관으로 스며 드는 술기운은 춘우의 마음을 짜르르 하게 하는 듯 하기도 하고, 눈 같이 녹이는 듯 하기도 하다가, 갑자기 정신이 나 게 꽉 찌리는 것 같기도 하였다. 눈앞에 있는 것이 모두 아 지랑이가 끼어 보이고 공중에는 오색 무지개가 서서 모든 것을 아롱지게 한다. 그 눈앞에는 다시 영숙이가 보인다. 몸 에 찬란한 보석으로 꾸민 얇은 옷을 입고, 창부와 같이 사 람을 미혹시키는 듯한 웃음을 생긋생긋 웃으면서, 자기를 보는 영숙이가 눈앞에 보였다가 다시 가까이 와, 그의 몸에 보들보들한 살과 자기 살 사이에서 구김살지었다. 사근거리 였다 하는 얇은 옷 하나만 가린 두 육체를 서로 대는듯 하 기도 하였다. 그는 갑자기 분개한 생각이 난 듯이 입술로만 비쭉 웃고,
『남의 첩이 되었다?』
하며, 손을 테블위에 탁 놓으면서
『첩! 돈만 주면 딸도 팔고 부모도 팔만치, 세상은 타락을 하였다!』
하고는, 사방을 돌아다보며, 누가 자기의 혼자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사람이 있나 하였다. 그는 다시 벌떡 일어나, 셈 을 하여 주고, 문밖으로 나왔다. 그는 오던 길을 다시 종로 로 향해갔다. 종로 네거리에는 야시로 법석이요, 휘황하게 켜있는 전등불 빛이 암흑한 공기를 울리면서 멀리멀리 연극 장의 초객하는 군악 소리가 들려온다.
센티멘탈한 그라리넷 소리가 유난히 자기의 술기운 서린 가슴 속에 애상의 정서를 스며들게 하는 듯 하고, 분으로 탈들을 쓰고, 먹으로 그린듯한 얼굴에 힘없이 흐늑거리는 몸들이 정처없이 밀려 다니는 듯한 무리 틈에 섞인 자기도 끝없는 침륜(沈淪)으로 흘러가는 듯하였다. 그의 발은 자기 도 모르게 자기를 이끌어 단성사(團成社) 문 앞까지 갔다 놓 았다. 광고를 써붙인 현판과 그림을 그리어 놓은 간판이 서 있는 앞에 자기가 섰을 때, 입장권을 사는 무리틈을 끼여, 저쪽 정문속 깜깜한 극장 안에서는 길을 찾고, 얌전하게 새 여나오는 영숙의 향기가 자기의 혼을 이끌어다가, 어디인지 는 알 수 없으나, 자기 머리 속에서 추상되는 그 영숙의 앉 은 자리로 끌어다 놓은듯 하였다. 그는 입장권을 사가지고 문앞에 앉은 문지키는 이에게 그 표를 내어줄 때 그의 입 가장자리에는 알 수 없는 웃음이 나타났다. 그의 웃음은 자 기를 비웃는 듯한 웃음이었다. 그는 속으로
『부끄러움 모르는 놈.』
이라는 생각이 나며,
『내가 아까 창하더라 무엇이라 하였나? 여자 꽁무니를 쫓 아다니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 하였지.』
그러나, 그는 들어갔다. 벌써 사진을 영사하는 중이었다.
자리를 정하지 못하고 이리갔다 저리 갔다 하며 얼핏 사진 이 끝나기만 기다릴 때 한번 나타났다 한번 바꾸이는 사진 의 마디와 마딧 사이 몇분 안되는것이 말할 수 없이 지루하 여지는 듯 하였다. 그는 사진은 보지도 않으면서 다만 머릿 속으로 수 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변하였을까? 지금 자기가 얼마나 만족을 가지고 있고 어떠한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갈까.』
하다가, 갑자기 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흔들며,
『내가 미친 사람이지, 인생관이 다 무엇이냐. 그에게 허영 과 또는 음일(淫逸)을 만족하게 하는데 제일 무기(武器)인 돈이 자기를 지배할 뿐이다. 우리 인생이 모두 그런것 같이 자기가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돈이 자기를 부리는 것이다.
그에게 무슨 진실이 있고 정의감(正義感)이 있고 뜻이 있고 기운이 있으랴. 취생, 몽사, 타락의 저 밑에서 가는 생명의 꼼지락 거릴 뿐이겠지?』
할 때, 초인종이 요란히 울면서, 넷째권과 다섯째권이 갈리 었다. 춘우는 또다시 생각하였다.
『돈은 결코 전능한건 아니다. 우리 사람에게 불완전한 곳 이 있기에 돈에게 노예가 되는 것이다. 옛날 영숙은 반드시 오늘이 있었을 것을 아지 못하였을 것과 같이 또한 장래에 닥쳐올 것이 어떠한 것을 아지 못하리라.』
그는 활동사진 한가지가 끝이 나고 불이 켜지며 암흑이 끊 어지고 광명이 이어질 때 수백의 머리가 눈앞에서 움즉거리 며 기침 소리, 웅얼대는 소리가 담배 연기 자욱한 극장에 가득히 찬 것을 들었다. 그는 기둥을 가려 서서 이등에 앉 아 있는 영숙을 보았다. 영숙은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처럼 고개를 조금도 움직거리지 아니하고, 무대위에 켜 있는 굳 센 광선이 비추이는 전깃불 하나만 내려다 보고 앉았다가, 때때 그의 둘째 손가락과 셋째 손가락에 끼었던 담배만 한 모금씩 피울뿐이다.
춘우는 유심히 영숙을 쳐다보다가, 다시 안보는 척 고개를 돌리고서 발로 땅을 파면서,
『재가 여태까지 기억할까? 물론 나를 기억하기는 어려울 일일테지. 그러나, 어디 한번 만나 보고 말을 들어보는 것도 좋기는 좋은 일이야?』
할 때, 다 시종이 울며 불이 꺼지고 사진이 비치었다. 그때 그는 그 곳에 들어와 선것이 우습게 무미한 것을 깨닫고서, 얼른 밖으로 나가지 하고, 집으로 향하여 왔다.